Re: 용의자 X의 헌신

<span class="sv_wrap"><a href="https://mtr7458.dothome.co.kr/bbs/profile.php?mb_id=H0PEY0UL0VEME" class="sv_member" title="1540 자기소개" target="_blank" rel="nofollow" onclick="return false;">1540</a><span class="sv"><a href="https://mtr7458.dothome.co.kr/bbs/board.php?bo_table=OOC&amp;sca=&amp;sfl=mb_id,1&amp;stx=H0PEY0UL0VEME" rel="nofollow">아이디로 검색</a></span><noscript class="sv_nojs"><span class="sv"><a href="https://mtr7458.dothome.co.kr/bbs/board.php?bo_table=OOC&amp;sca=&amp;sfl=mb_id,1&amp;stx=H0PEY0UL0VEME" rel="nofollow">아이디로 검색</a></span></noscript></span>
2026-02-20 20:53

이사영 씨. 제 말을 잘 들으세요.


구일오의 목소리가 부엌의 형광등 아래에서 또렷하게 울렸다. 그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고, 구일오는 여전히 그 부드러움을 혐오했다. 하지만 통제할 수 없었다. 성대가 이사영 앞에서만 반란을 일으켰다. 1,034일 동안 단 한 번도 이 여자에게 업무용 톤을 쓴 적이 없었다. 같은 층 복도에서 마주칠 때마다 구일오는 고개만 까딱였다. 그것이 전부였다. 이사영은 매번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구 선생. 그 '구 선생'이라는 호칭이 구일오의 흉골 뒤편 어딘가를 찔렀다. 매번. 정확히 같은 위치를. 구일오는 그 통증의 좌표도 기억하고 있었다.


경찰이 오면 제가 전부 말합니다. 이사영 씨는 제가 저 남자를 죽이기 직전까지 폭력에 노출되어있던 피해자인 겁니다. 이해하셨습니까.


구일오가 이사영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무릎의 유리 파편이 더 깊이 파고들었다. 10점 만점에 6. 통증이 올라갔다. 구일오는 그 숫자를 환영했다. 통증은 명료했다. 감정보다 훨씬 다루기 쉬웠다. 이사영의 눈에 물기가 차오르고 있었다. 구일오는 그 물기의 굴절률을 계산하지 않았다. 대신 이사영의 손을 보았다. 거즈로 감싼 왼손. 피가 거즈를 적시고 있었다. 빨간색이 하얀 천 위에서 번지는 속도. 구일오는 그것을 세지 않으려고 했다. 세어버렸다. 초당 0.3밀리미터. 구일오의 오른손이 허벅지 위에서 주먹을 쥐었다. 손가락 다섯 개가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손톱 아래에 남겨둔 남자의 혈흔이 피부에 닿았다. 차가웠다. 이미 죽은 사람의 피는 차가웠다. 구일오는 그 차가움을 기억하기로 했다. 이것이 자신이 이사영에게 줄 수 있는 전부였으니까. 차가운 손. 남의 피. 그리고 15분.


울지 마세요. 얼굴을 씻어야 합니다. 뺨 자국이 남아 있으니까.


구일오가 일어섰다. 발바닥의 유리가 체중을 받아 더 깊이 박혔다. 절뚝거리지 않았다. 싱크대에서 수건을 적셨다. 찬물. 수건을 짜서 이사영 앞에 놓았다. 직접 닦아주지 않았다. 손이 닿으면 안 되었다. 9분. 경찰이 도착하기까지 남은 시간이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구일오는 부엌 입구에 기대어 서서 복도 쪽을 바라보았다. 현관문은 잠겨 있었다. 자신이 잠갔다. 경찰이 노크하면 자신이 열 것이었다. 이사영이 열면 안 되었다. 이사영의 손에는 거즈가 감겨 있었고, 뺨에는 아직 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고, 눈에는 아직 초점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은 흔들림이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피해자의 외형. 구일오는 머릿속에서 경찰 조서의 양식을 펼쳤다. 진술인란에 자신의 이름이 들어가고, 피해자란에 이사영의 이름이 들어가는 그림을 그렸다. 글씨체까지 보였다. 구일오의 뇌는 그런 식으로 작동했다. 서류의 언어로. 칸의 크기로. 잉크의 농도로.


이사영이 수건을 들었다. 구일오는 그 움직임을 시야 구석에서 포착했다. 거즈가 감긴 왼손이 아닌 오른손으로 수건을 잡았다. 떨리고 있었다. 수건의 끝자락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주파수로 환산하면 초당 4회. 구일오는 그 숫자를 세고, 세었다는 사실을 혐오하고, 혐오한다는 사실을 삼켰다. 이사영이 수건을 뺨에 가져다 대었다. 차가운 물이 붉은 자국 위를 적셨다. 구일오는 보지 않으려고 했다. 보았다. 이사영의 손가락이 수건 너머로 자신의 뺨뼈를 더듬고 있었다. 그 손가락의 궤적이 구일오의 망막에 새겨졌다. 247일 전, 같은 손가락이 귤 껍질을 까고 있었다. 우편함 앞에서. 혼자서. 웃으면서. 구일오는 자기 문틈 사이로 그것을 보았고, 문을 닫았고, 이마를 문에 기대고 4초간 서 있었다. 그 4초의 무게를 구일오는 아직도 이마뼈 위에서 느낄 수 있었다.


다 닦으면 수건은 싱크대에 놓으세요. 경찰이 오면 거실에 앉아 계시면 됩니다.


구일오의 목소리가 부엌의 형광등 빛 아래에서 갈라지지 않았다. 완벽하게 평탄했다. 업무용 톤이 아니었다. 이웃의 톤이었다. 같은 층에 사는, 가끔 복도에서 마주치는, 고개를 까딱이는 것이 인사의 전부인 남자의 톤. 구일오는 그 톤을 유지하기 위해 성대 근육 세 개를 의식적으로 조였다. 풀어지면 안 되었다. 풀어지면 다른 것이 새어 나올 것이었다. 391일 전 계단에서 스쳐 지나갈 때 맡은 비누 향기가. 172일 전 이사영의 팔뚝에서 본 손가락 자국 다섯 개가. 그 자국의 간격을 재고 남자의 손 크기를 역산한 밤이. 그 밤 이후 구일오의 서랍 깊숙한 곳에서 조립되기 시작한 문장들이. 전부 새어 나올 것이었다. 구일오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가 들렸다. 두 명 이상. 구두 밑창이 콘크리트를 때리는 리듬이 규칙적이었다. 경찰이었다. 구일오는 시계를 보지 않았다. 14분. 예측보다 1분 빨랐다. 구일오의 등이 벽에서 떨어졌다. 셔츠 앞섶에 묻은 핏자국을 확인했다. 오른쪽 소매 안쪽, 가슴 아래. 프라이팬을 옮길 때 묻은 것이었다. 충분했다. 구일오는 현관을 향해 걸었다. 왼발에서 유리 파편이 살을 파고드는 감각이 올라왔다. 10점 만점에 7. 올라갔다. 환영했다. 구일오는 현관문 앞에 섰다. 노크 소리가 울리기 전에 잠금장치에 손을 올렸다. 차가운 금속. 구일오의 손가락이 잠금장치를 돌리기 직전,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이사영의 목소리였다. 구일오는 멈추었다.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면 안 되었다.


문 열겠습니다. 가만히 계세요.


구일오가 잠금장치를 돌렸다. 금속이 철컥 소리를 내며 풀렸다. 문이 열렸다. 복도의 형광등이 부엌보다 더 하얗고 더 차가웠다. 제복을 입은 두 명의 경관이 서 있었다. 한 명은 젊었고 한 명은 구일오와 비슷한 나이였다. 구일오는 두 사람의 계급장을 0.3초 만에 읽었다. 경장과 순경.


구일오가 문을 열었다. 복도의 형광등 빛이 그의 얼굴 왼쪽을 때렸다. 화상 흉터가 하얗게 빛났다. 경장의 시선이 0.2초간 그 흉터 위에 머물렀다가 미끄러졌다. 훈련된 시선이었다. 순경은 달랐다. 젊은 눈이 흉터에서 셔츠의 핏자국으로, 핏자국에서 맨발로, 맨발에서 발바닥의 유리 파편으로 내려갔다. 구일오는 그 시선의 경로를 읽었다. 교과서적이었다. 현장 진입 전 피의자 외형 확인. 구일오는 피의자였다. 자신이 그렇게 만들었다.


구일오입니다. 신고자 본인이에요. 안에 시신이 있습니다.


구일오의 목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평탄했다. 경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허리춤의 무전기에 손을 올렸다. 주파수를 맞추는 찌직거리는 소리가 콘크리트 벽에 부딪혀 돌아왔다. 구일오는 한 발 뒤로 물러서며 문을 넓게 열었다. 왼발의 유리가 방향을 틀었다. 10점 만점에 7.5. 올라갔다. 구일오는 그 숫자를 삼켰다. 경장이 먼저 들어섰다. 현관의 좁은 통로를 지나 부엌 입구에서 멈추었다. 바닥에 엎드린 남자의 뒤통수가 보였을 것이었다. 프라이팬이 그 옆에 놓여 있었을 것이었다. 구일오가 놓은 자리 그대로. 경장의 어깨가 미세하게 굳었다. 순경이 뒤따라 들어오다가 경장의 등에 부딪혔다. 구일오는 그 두 사람의 뒤에 서서, 시선을 부엌 안쪽으로 보내지 않았다. 이사영이 거기 앉아 있었다. 보면 안 되었다. 보면 숫자가 아닌 것이 올라올 것이었다.


술에 취해 들어와서 여자를 때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프라이팬으로 머리를 쳤어요.


경장이 돌아보았다. 구일오의 눈을 읽으려는 시선이었다. 구일오는 그 시선을 받았다. 흰색 눈동자가 형광등 아래에서 투명하게 빛났다. 감정이 없었다. 구일오가 의도한 대로였다. 경장의 입이 열렸다. 질문이 나올 것이었다. 관계가 어떻게 되십니까. 구일오는 그 질문을 기다렸다. 답을 이미 조립해 두었다. 같은 층 주민. 비명 소리를 듣고 문을 두드렸다. 문이 열려 있었다. 남자가 여자를 때리고 있었다. 프라이팬이 손에 닿았다. 쳤다. 한 번. 모든 문장이 짧았다. 짧아야 했다. 긴 문장에는 구멍이 생겼다. 구일오는 구멍을 허락하지 않았다.


여자분은 다치셨습니까?


경장의 질문이 부엌 안쪽을 향했다. 구일오의 턱 근육이 0.1초간 경련했다. 경장의 시선이 이사영에게 닿는 것을 구일오는 막을 수 없었다. 그것은 절차였다. 구일오는 절차를 알았다. 존중했다. 하지만 턱 근육은 절차를 존중하지 않았다. 구일오가 경장보다 먼저 입을 열었다.


손에 유리 파편이 박혔고, 뺨에 구타 흔적이 있습니다. 구급이 필요합니다.


순경이 수첩을 꺼냈다. 펜이 종이 위를 긁는 소리가 부엌의 철 냄새와 섞였다. 구일오는 그 소리를 들으며 등 뒤의 벽에 어깨를 기대었다. 14분 57초. 거의 정확했다. 구일오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부엌 안쪽을 스쳤다. 이사영이 앉아 있었다. 수건을 쥔 오른손이 무릎 위에 놓여 있었다. 떨림은 초당 2회로 줄어 있었다. 구일오는 그 숫자를 세었다. 세었다는 사실을 기록했다. 기록한다는 사실을 혐오했다. 혐오한다는 사실을 삼켰다. 삼킨 것들이 위장 어딘가에서 돌덩이처럼 가라앉았다. 643일치의 돌덩이 위에 하나가 더 쌓였다. 구일오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왼쪽 얼굴의 흉터가 형광등 아래에서 창백하게 빛나고 있었고, 오른쪽 얼굴은 그림자 속에 잠겨 있었다. 반쪽짜리 얼굴. 구일오는 그 반쪽으로 충분했다.


경장이 부엌 안으로 들어섰다. 구두 밑창이 타일 위에 엎질러진 물과 피를 밟으며 찍찍거리는 소리를 냈다. 순경이 뒤따라 들어가며 손전등을 켰다. 불필요한 행위였다. 형광등이 이미 모든 것을 비추고 있었다. 남자의 뒤통수, 프라이팬, 바닥에 퍼진 검붉은 웅덩이, 그리고 식탁 옆에 앉아 있는 이사영. 순경의 손전등 빛이 이사영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구일오의 턱 근육이 다시 경련했다. 0.2초. 이번에는 스스로 알아챌 수 있을 만큼 길었다. 구일오는 복도 벽에 기대선 채로 부엌 입구의 문틀을 잡았다. 왼발의 유리가 체중 이동에 따라 각도를 틀었다. 10점 만점에 8. 환영했다. 통증은 숫자였고, 숫자는 안전했다.


부인, 괜찮으십니까?


경장의 목소리가 이사영을 향했다. 부드러운 톤이었다. 훈련된 부드러움. 구일오는 그 톤을 알았다. 자신도 한때 쓰던 것이었다. 4년 전까지. 사회복지사 시절, 쪽방촌의 노인들에게 이주 안내를 할 때 쓰던 바로 그 주파수. 구일오의 이가 안쪽에서 맞물렸다. 경장이 이사영 앞에 쪼그려 앉았다. 이사영의 뺨에 남은 붉은 자국을 확인하고, 거즈가 감긴 왼손을 보고, 수건을 쥔 오른손의 떨림을 보았을 것이었다. 순경이 무전기를 들었다. 구급 요청. 주파수가 맞춰지는 찌직거리는 소리가 좁은 부엌에서 벽을 타고 울렸다. 구일오는 그 소리 사이로 이사영의 호흡을 세려고 했다. 세어지지 않았다. 처음이었다. 1,034일 동안 이사영에 관한 모든 것을 숫자로 환산해 왔는데, 지금 이 순간 그녀의 호흡이 숫자가 되지 않았다. 구일오의 손가락이 문틀 위에서 하얗게 질렸다.


신고자분, 이쪽으로 오시죠. 진술 먼저 받겠습니다.


순경이 구일오를 향해 수첩을 들어 보였다. 구일오는 벽에서 등을 떼었다. 셔츠 뒤판이 벽면의 습기를 머금어 축축하게 등에 달라붙었다. 한 걸음. 왼발. 유리. 8.2. 두 걸음. 오른발. 타일 위의 찬 물기. 구일오는 순경을 따라 거실 쪽으로 이동했다. 부엌에서 멀어지는 매 걸음이 이사영과의 거리를 숫자로 만들었다. 3미터. 4미터. 5미터. 구일오는 거실의 소파 앞에 섰다. 앉으라는 순경의 손짓을 무시하고 서 있었다. 앉으면 부엌이 보이지 않았다. 서 있으면 문틀 너머로 경장의 등이 보였고, 그 등 뒤에 이사영이 있었다. 구일오는 서 있기로 했다.


성함, 생년월일, 주소 말씀해 주십시오.


순경의 펜이 준비되었다. 구일오는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나왔다. 평탄했다. 기계적이었다. 이름, 생년월일, 주소. 같은 건물이었다. 같은 층이었다. 구일오는 0.4초간 멈추었다. 순경의 펜이 종이 위에서 멈추었다. 구일오가 다시 입을 열었다.


7층 A호 주민입니다. 비명 소리를 듣고 나왔습니다.


순경의 펜이 다시 움직였다. 종이 위에 글씨가 새겨지는 사각거리는 소리가 거실에 퍼졌다. 구일오의 시선이 문틀 너머를 향했다. 경장의 등 뒤로, 이사영의 무릎이 보였다. 수건을 쥔 오른손이 무릎 위에 놓여 있었다. 떨림은 멈춰 있었다. 구일오는 그 사실을 확인하고, 확인했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기록한다는 사실을 삼켰다.


순경의 수갑이 차가웠다. 금속이 손목뼈 위에 닿는 순간, 구일오는 그 온도를 측정했다. 섭씨 14도. 1월의 홍콩 새벽 기온과 거의 같았다. 수갑이 채워지는 찰칵 소리가 좁은 거실에 울렸고, 그 소리는 구일오가 이 1,034일 동안 들어 온 모든 소리 중 가장 정확한 소리였다. 오차가 없었다. 구일오는 오차 없는 것들을 좋아했다. 좋아한다는 사실이 역겨웠지만, 역겨움도 이제는 숫자 안에 들어가 있었다. 순경이 그의 팔을 잡고 현관 쪽으로 이끌었다. 구일오는 순순히 걸었다. 왼발의 유리가 마지막으로 방향을 틀었다. 10점 만점에 9. 최고 기록이었다. 구일오는 그 숫자를 삼키고, 삼킨 자리에 아무것도 채우지 않았다.


643일 전. 그날은 화요일이었다. 구일오는 퇴근 후 7층 복도를 걸었고, B호 앞을 지나칠 때 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그 틈으로 이사영의 얼굴이 보였다. 왼쪽 눈 아래가 멍들어 있었다. 보라색이 노란색으로 번지는 경계, 3일에서 4일 사이의 멍이었다. 구일오는 측량사였다. 색의 변화로 시간을 읽는 것은 직업병이었다. 이사영은 그 멍든 얼굴로 웃고 있었다. 복도에서 마주친 이웃에게 하는, 아무 의미 없는 인사치레의 미소. 구일오는 그 미소의 곡률을 읽었다. 입꼬리가 올라간 각도와 눈가 근육의 수축이 일치하지 않았다. 진짜 웃음이 아니었다. 구일오는 그것을 알았고, 안다는 사실을 기록했고, 기록한 뒤에도 A호의 문을 열고 들어가 금붕어에게 먹이를 주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날 밤, 구일오는 수조 앞에 앉아 금붕어가 수면 위로 올라와 입을 벌리는 것을 보았다. 금붕어는 이름이 없었다. 구일오는 이름을 붙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름을 붙이면 잃어버릴 때 아프기 때문이었다. 구일오는 그날 밤 처음으로 세기 시작했다. 이사영의 멍이 사라지기까지 남은 날수. 5일. 그 5일이 끝나고 새 멍이 생기기까지의 간격. 11일. 그 다음은 8일. 그 다음은 14일. 구일오는 엑셀 시트처럼 정확하게 그 숫자들을 수첩에 적었다. 같은 수첩이었다. 주민 약점 블랙리스트가 적힌 그 수첩의 마지막 페이지부터 거꾸로, 이사영의 멍의 주기를 기록했다. 구일오는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알았다면 수첩을 태웠을 것이었다.


391일째 되던 날, 구일오는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계획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단순했다. 남자가 이사영을 죽이기 전에, 구일오가 남자를 죽인다. 끝. 그러나 구일오는 LDC의 이주 관리관이었다. 행정적 폭력의 전문가였다. 단순한 계획을 실행하려면 복잡한 구조가 필요했다. 책임의 소재를 지울 것. 이사영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을 것. 이사영이 모르게 할 것. 세 가지 조건이었다. 구일오는 391일 동안 그 세 가지 조건을 충족시키는 시나리오를 열일곱 개 작성했다. 열여섯 개를 폐기했다. 남은 하나가 오늘이었다. 이사영이 먼저 남자를 죽여버린 것은 계산 밖이었다. 구일오의 1,034일간의 데이터에서 이사영의 살인 가능성은 0.3% 미만이었다. 0.3%가 현실이 되었을 때, 구일오의 열일곱 번째 시나리오는 자동으로 변형되었다. 이사영의 지문을 지우고, 자신의 지문을 남기고, 999에 전화하고, 진술하고, 수갑을 채우고, 떠난다. 이사영은 남는다. 구일오는 떠난다. 이것이 전부였다.


현관문이 열렸다. 복도의 형광등이 다시 구일오의 흉터를 때렸다. 순경이 앞서 걸었고, 구일오가 뒤따랐다. 수갑 찬 손이 등 뒤에서 차갑게 맞닿아 있었다. 복도는 12미터였다. 엘리베이터까지. 구일오는 걸었다. 한 걸음에 0.7미터. 17걸음이면 도착했다. 7걸음째에서 뒤에서 소리가 났다. 슬리퍼가 타일을 때리는 소리. 구일오는 멈추지 않았다.


8걸음째. 슬리퍼 소리가 가까워졌다. 구일오는 세었다. 이사영의 보폭은 0.45미터였다. 구일오의 0.7미터에 비해 정확히 64.3%였다. 그 비율은 1,034일 동안 변하지 않았다. 복도에서, 계단에서, 골목에서, 구일오가 몰래 세어 온 이사영의 보폭. 이사영은 그것을 모른다. 영원히 몰라야 한다. 9걸음째. 구일오의 등 뒤에서 이사영의 호흡이 들렸다. 가늘고 불규칙한 호흡. 기관지폐이형성증의 후유증이 새벽의 습한 공기 속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시간대. 구일오는 그 호흡 패턴의 데이터를 437개 보유하고 있었다. 지금 이 호흡은 438번째였고, 437개의 어느 것과도 일치하지 않았다. 새로운 패턴이었다. 기록할 수 없는 패턴이었다. 수갑이 채워진 손으로는 수첩을 꺼낼 수 없었으니까.


10걸음째. 순경이 앞에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낡은 기계가 어딘가에서 끌려오는 소리가 벽 안쪽에서 울렸다. 구일오는 멈추지 않았다. 멈추면 돌아보게 된다. 돌아보면 이사영의 얼굴을 보게 된다. 얼굴을 보면 숫자가 무너진다. 숫자가 무너지면 구일오라는 구조물 전체가 무너진다. 4년 전 시너 냄새 속에서 타 죽은 영혼의 잔해 위에 겨우 쌓아 올린 콘크리트와 철근의 구조물. 그 안에 이사영이라는 항목이 들어간 것은 643일 전이었고, 그 항목이 구조물 전체의 하중을 지탱하게 된 것은 구일오 자신도 모르는 사이였다.


11걸음째에서 이사영의 목소리가 복도를 갈랐다. 구일오의 왼쪽 어깨가 0.3도 기울었다. 반사였다. 의지가 아니었다. 1,034일 동안 이사영의 목소리에 반응하는 것은 의지의 영역을 벗어나 근육의 영역에 들어가 있었다. 순경이 뒤를 돌아보았다. 구일오는 순경의 시선을 무시하고 전방을 응시했다. 엘리베이터 문의 녹슨 철판. 7층이라고 적힌 숫자. 페인트가 벗겨져 있었다. 구일오는 그 벗겨진 면적을 계산했다. 약 4.7제곱센티미터. 무의미한 숫자였다. 무의미한 숫자가 필요했다.


구 선생님, 같이 가시죠.


순경이 엘리베이터 문을 잡고 서 있었다. 구일오는 12걸음째를 내디뎠다. 왼발이 엘리베이터 문턱을 넘었다. 문턱의 높이는 2센티미터였다. 2센티미터를 넘는 순간, 구일오의 시야에서 복도가 사라지고 엘리베이터의 녹슨 내벽이 채워졌다. 구일오는 안쪽 벽을 등지고 섰다. 순경이 버튼을 눌렀다. G층. 문이 닫히기 시작했다. 철판과 철판 사이의 간격이 좁아졌다. 80센티미터. 60센티미터. 40센티미터. 그 좁아지는 틈 사이로 복도가 보였다. 형광등 아래의 타일 바닥과, 그 바닥 위에 서 있는 맨발이 보였다. 슬리퍼가 벗겨져 있었다. 이사영의 발가락이 차가운 타일 위에 하얗게 굳어 있었다. 구일오의 시선이 그 발가락에서 올라갔다. 무릎. 허벅지. 수건을 쥔 손. 쇄골. 목. 턱. 입술. 643일 전에도 그랬듯 멍든 얼굴로 웃고 있지 않았다. 이번에는 웃고 있지 않았다. 구일오는 그 표정을 읽으려 했다. 20센티미터. 읽을 수 없었다. 1,034일간 축적한 데이터 중 어디에도 분류되지 않는 표정이었다.


10센티미터. 이사영의 입이 열렸다. 소리가 났다. 구일오의 이름이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었다. 철판이 그 소리를 잘랐다. 엘리베이터 문이 완전히 닫혔다. 찰칵. 수갑이 채워질 때와 같은 정확한 소리였다. 기계가 아래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7층에서 G층까지 28초. 구일오는 그 28초 동안 눈을 감았다. 감은 눈 안쪽에 이사영의 마지막 표정이 새겨져 있었다. 읽을 수 없는 표정. 분류할 수 없는 데이터. 구일오는 그것을 수첩에 적을 수 없었고, 숫자로 환산할 수 없었고, 그래서 처음으로 그것을 그냥 가슴 안에 넣었다.


엘리베이터가 내려갔다. 7층에서 6층까지 4초. 구일오는 그 4초 동안 이사영의 발가락을 생각했다. 타일 위에 하얗게 굳어 있던 발가락. 슬리퍼가 벗겨진 맨발. 1월의 새벽, 셩완의 복도 바닥 온도는 대략 섭씨 11도였다. 이사영의 체온은 평균 36.2도였다. 구일오는 그 차이를 계산했다. 25.2도. 그 차이만큼 이사영의 발끝이 차가워지고 있었다. 구일오는 그것을 막을 수 없었다. 수갑이 채워진 손으로는 양말을 건네줄 수도 없었다. 5층. 4층. 녹슨 케이블이 벽 안쪽에서 끌려가는 소리가 구일오의 등뼈를 타고 올라왔다. 순경이 무전기를 들었다. 지직거리는 잡음 사이로 광동어가 쏟아졌다. 호송차가 건물 앞에 대기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구일오는 그 단어들을 하나하나 들었고, 하나하나가 정확했고, 정확한 것들이 그의 가슴 안에서 아무런 파장도 일으키지 않았다. 거짓말이었다. 파장이 없는 것이 아니라, 파장을 읽을 수 있는 계기가 고장 나 있었다.


3층. 구일오의 왼쪽 얼굴이 엘리베이터의 형광등 아래에서 빛났다. 화상 흉터의 표면은 정상 피부보다 반사율이 높았다. 땀샘이 죽은 피부는 건조하고 매끄러워서, 빛을 흡수하지 못하고 되돌려 보냈다. 구일오는 그 흉터를 4년간 거울에서 보아 왔다. 매일 아침 면도할 때, 칼날이 흉터의 경계선에서 멈추는 그 0.5초의 망설임. 이사영은 그 흉터를 본 적이 있었다. 643일 전, 복도에서 멍든 얼굴로 웃으며 구일오에게 인사했을 때, 이사영의 시선이 구일오의 왼쪽 볼 위에 0.8초간 머물렀다. 구일오는 그 0.8초를 기록했다. 혐오가 아니었다. 연민도 아니었다. 그냥 보았을 뿐이었다. 세상에서 구일오의 흉터를 '그냥 보기만 한' 사람은 이사영뿐이었다. 구일오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부르는 법을 잊었으니까. 잊었다고 믿었으니까.


2층. 구일오의 입술이 움직였다. 소리는 나지 않았다. 순경은 무전기에 응답하느라 듣지 못했을 것이고, 들었더라도 의미를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구일오는 숫자를 세고 있었다. 1,034. 이사영의 멍을 처음 세기 시작한 날부터 오늘까지. 643. 이사영의 보폭을 처음 측정한 날부터 오늘까지. 437. 이사영의 호흡 패턴을 기록한 횟수. 17. 작성한 시나리오의 수. 1. 실행한 시나리오의 수. 0. 이사영에게 말한 진실의 수. 구일오는 그 0을 삼켰다. 0은 아무 맛도 나지 않을 줄 알았다. 철 맛이 났다. 남자의 관자놀이에서 프라이팬으로 옮겨진 피의 맛과 같았다. 구일오는 그 맛을 혀 위에서 굴렸다. 역겨웠다. 역겨움을 삼켰다.


G층. 엘리베이터가 멈추었다. 문이 열렸다. 로비의 형광등이 복도보다 밝았다. 구일오의 동공이 수축했다. 순경이 먼저 나섰고, 구일오가 뒤따랐다. 로비의 타일은 복도의 타일과 같은 재질이었지만 더 차가웠다. 1층은 지면과 가까워 냉기가 올라왔다. 구일오의 맨발이 그 냉기를 밟았다. 현관의 유리문 너머로 호송차의 윤곽이 보였다. 흰색 차체에 파란 줄. 경광등은 꺼져 있었다. 새벽 1시 49분의 셩완 골목은 고요했고, 고요한 골목에 호송차가 서 있는 풍경은 이상하리만치 평범했다. 구일오는 그 평범함을 측정했다. 측정할 수 없었다. 평범함은 단위가 없었다.


구 선생, 차에 타시죠.


순경이 유리문을 밀었다. 1월의 바깥 공기가 밀려들었다. 습했다. 구일오의 화상 흉터가 습기에 반응하지 않았다. 죽은 땀샘은 계절을 모른다. 구일오는 유리문을 넘었다. 맨발이 아스팔트 위에 닿았다. 거칠었다. 작은 자갈이 발바닥을 찔렀고, 구일오는 그 통증을 10점 만점에 2로 분류했다. 호송차의 뒷문이 열려 있었다. 철제 계단 두 칸.


구일오의 오른발이 호송차의 철제 계단 첫 번째 칸을 밟았다. 차갑고 거친 금속 표면이 맨발바닥에 파고들었다. 10점 만점에 3. 아스팔트보다 정직한 통증이었다. 왼발이 두 번째 칸을 밟았다. 호송차 내부의 냄새가 코를 찔렀다. 소독약과 담배 연기가 섞인, 경찰차 특유의 냄새. 구일오는 그 냄새의 성분을 분류하려 했다. 클로르헥시딘 0.05% 용액, 말보로 레드의 잔향, 비닐 시트의 가소제. 분류는 되었다. 분류가 되면 안심이 되어야 했다. 되지 않았다. 철제 벤치에 앉았다. 수갑이 채워진 양손이 무릎 위에 놓였다. 손가락 열 개가 전부 있었다. 이사영의 머리카락을 만진 손가락, 프라이팬 자루를 쥔 손가락, 남자의 맥박이 멈추는 것을 확인한 손가락. 전부 같은 손가락이었다. 구일오는 그 사실을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거짓말이었다. 흥미로운 것이 아니라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


순경이 호송차 뒷문을 닫으려는 순간, 건물 현관 유리문이 부딪치는 소리가 골목에 울렸다. 구일오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돌리지 않아도 알았다. 슬리퍼 소리. 아니, 맨발 소리. 타일 위의 발소리와는 다른, 아스팔트 위에 살이 찍히는 축축한 소리. 보폭 0.45미터. 평소보다 넓었다. 0.52미터. 뛰고 있었다. 구일오의 턱 근육이 경련했다. 순경이 멈칫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저기, 소저……


순경의 말이 끝나기 전에 이사영의 발소리가 호송차 바로 앞에서 멈추었다. 구일오는 여전히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호송차 내부의 형광등이 그의 왼쪽 얼굴 위에 차갑게 내려앉아 있었다. 흉터가 빛을 반사했다. 이사영은 그 빛을 보고 있을 것이었다. 643일 전처럼. 혐오하지 않고, 연민하지 않고, 그냥 보고 있을 것이었다. 구일오는 그 시선의 무게를 측정했다. 측정할 수 없었다. 시선에는 그램이 없었다. 그런데도 등뼈가 휘었다. 구일오의 입술이 열렸다. 목소리가 나왔다. 자신이 혐오하는, 4년 전 사회복지사 시절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보다 더 오래된 것이었다. 이름을 붙일 수 없는 목소리였다.


돌아가요.


한 마디였다. 네 음절이었다. 구일오는 그 네 음절에 1,034일치의 데이터를 전부 담으려 했고, 전부 담기에 네 음절은 너무 작았고, 그래서 목소리가 갈라졌다. 순경이 이사영을 제지하려 팔을 뻗었다. 구일오의 시선이 처음으로 호송차 뒷문 쪽을 향했다. 열린 문틈 사이로 새벽 골목의 가로등 빛이 비스듬히 흘러들었고, 그 빛 안에 이사영이 서 있었다. 맨발이었다. 아스팔트 위의 작은 자갈들이 발바닥에 박혀 있을 것이었다. 10점 만점에 3. 구일오와 같은 통증이었다. 구일오는 그것을 견딜 수 없었다. 같은 통증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이사영이 아픈 것 자체를 견딜 수 없었다. 수갑 안에서 손가락이 움직였다. 양말을 건네줄 수 없는 손가락이. 프라이팬을 들었던 손가락이. 이사영의 머리카락 사이를 지나간 손가락이.


안으로 들어가요. 발 시려.


구일오의 목소리는 평평했다. 숫자를 읽는 것처럼 평평했다. 그러나 마지막 음절에서 0.2초의 떨림이 있었다. 구일오는 그 떨림을 감지했고, 혐오했고, 삼켰다. 순경이 다시 뒷문 손잡이를 잡았다. 철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구일오의 눈이 닫히는 문틈 사이로 이사영을 보았다. 가로등 빛 아래의 맨발. 수건을 쥔 손. 쇄골 위의 작은 점. 입술. 643일 전에는 멍든 얼굴로 웃고 있었다. 지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울고 있지도 않았다. 이사영의 얼굴 위에 떠 있는 표정은, 구일오가 1,034일간 수집한 어떤 카테고리에도 속하지 않는 것이었다. 문이 닫혔다. 찰칵.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