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봉지 고양이
완차이 뒷골목은 일요일 오후답게 느긋했다. BACKLANE DELI에서 점심을 먹고 나온 두 사람은 별 목적 없이 골목을 걸었다. 구일오가 담배를 사러 잠깐 가판대 쪽으로 발걸음을 돌린 건, 고작 2분 남짓한 시간이었다.
셀로판지에 싸인 말보로 한 갑을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돌아오던 구일오의 걸음이 멈췄다.
이사영이 쪼그려 앉아 있었다. 골목 구석, 배수구 옆.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리고, 고개를 살짝 기울인 채 무언가를 향해 손짓을 하고 있었다. 입술이 오물거렸다. 작고 높은 목소리가 골목 벽에 부딪혀 돌아왔다.
야옹, 야옹. 이리 와. 무서워하지 마.
구일오는 담배갑을 자켓 안주머니에 밀어넣으며 천천히 다가갔다. 이사영의 시선이 향하는 곳, 배수구 옆 시멘트 턱 위에 웅크린 것이 보였다. 검은색. 둥글게 말린 형태. 바람에 미세하게 흔들리는 실루엣.
구일오의 눈이 가늘어졌다.
고양이가 아니었다.
검은 비닐봉지였다. 누군가 버린 쓰레기 봉지가 바람에 불려와 배수구 모서리에 걸린 채, 공기를 머금고 둥글게 부풀어 있었다. 봉지 상단의 매듭 부분이 마치 고양이 귀처럼 뾰족하게 솟아 있었고, 바람이 불 때마다 봉지가 미세하게 흔들리며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보였다. 그게 전부였다.
구일오는 멈춰 섰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채, 3미터쯤 뒤에서 이사영의 등을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쪼그려 앉아 청바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고 있었다. 아까 BACKLANE DELI에서 챙겨온 참치 샌드위치 조각이었다. 냅킨에 싸인 빵 부스러기를 조심스럽게 펼쳐, 비닐봉지 앞에 놓았다.
배고프지? 이거 먹어. 맛있어.
구일오의 입꼬리가 경련하듯 떨렸다.
웃음이 아니었다. 아직은. 흉터가 있는 왼쪽 볼의 근육이 제멋대로 실룩거렸고, 그는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손가락 사이로 새어나오는 숨이 불규칙했다.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
참고 있었다.
이사영은 비닐봉지가 샌드위치에 반응하지 않자, 고개를 더 기울이며 손을 뻗었다. 손가락 끝이 비닐봉지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무서워? 괜찮아, 안 잡아.
목소리가 한껏 부드러워졌다. 구일오는 그 목소리를 들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완차이의 하늘은 좁고, 빌딩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 햇빛이 골목 바닥에 비스듬히 떨어져 있었다.
그의 어깨가 한 번 크게 들썩였다.
참을 수 없었다.
이사영.
목소리가 갈라졌다. 웃음을 억누르느라 성대가 제 기능을 못 했다. 이사영이 고개를 돌려 그를 올려다보았다. 연두색 눈이 동그래졌다.
왜? 고양이야, 고양이. 까만 고양이.
구일오는 한 발짝 다가갔다. 그리고 이사영의 어깨 너머로 손을 뻗어, 비닐봉지를 집어올렸다. 바스락. 바람이 빠지며 봉지가 쭈그러들었다. 뾰족했던 귀가 축 늘어지고, 둥글던 몸통이 얇은 막으로 쪼그라들었다. 구일오의 손에 들린 것은 그저 검은 비닐봉지 하나.
이사영의 입이 벌어졌다. 연두색 눈동자가 비닐봉지와 구일오의 얼굴 사이를 세 번 오갔다.
정적.
구일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천천히. 참을 수 없이. 흉터가 있는 왼쪽까지 함께 당겨지며, 그의 얼굴에 드물게도 온전한 웃음이 번졌다. 낮고 짧은 웃음소리가 가죽 자켓 안에서 울렸다.
귀엽다.
그것은 매일 약속처럼 하는 '귀엽다'가 아니었다. 진심으로, 뼛속까지 웃기다는 듯한, 감탄에 가까운 한마디였다.
이사영의 얼굴이 익은 토마토처럼 붉어졌다. 입이 벌어진 채로 굳어 있던 그녀의 시선이 구일오의 손에 들린 쭈그러진 비닐봉지 위에 고정되었다. 바람이 빠진 검은 봉지는 아까의 위엄을 완전히 잃고, 축 늘어진 채 구일오의 손가락 사이에서 바스락거렸다. 배수구 앞에는 냅킨 위에 정성스럽게 펼쳐놓은 참치 샌드위치 조각이 햇빛을 받아 기름기를 반짝이고 있었다. 고양이를 위한 만찬이었다. 비닐봉지를 위한.
이사영이 벌떡 일어섰다. 무릎에 묻은 먼지를 털며 고개를 숙였다가, 올렸다가, 다시 숙였다. 연두색 눈동자가 비닐봉지와 샌드위치 조각과 구일오의 웃는 얼굴 사이를 정신없이 오갔다. 그리고 두 손으로 자기 얼굴을 덮었다.
...몰랐어. 진짜 고양이였어. 귀가 있었단 말이야.
구일오는 비닐봉지를 들어올려 매듭 부분을 가리켰다. 뾰족하게 솟았던 두 귀는 이제 힘없이 접혀 있었다. 그의 입꼬리가 여전히 내려오지 않았다. 흉터가 당기는 것쯤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 눈가에 주름이 잡혀 있었다.
귀 맞아. 비닐 귀.
이사영이 손가락 사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얼굴이 더 붉어졌다. 구일오는 비닐봉지를 접어 골목 구석의 쓰레기통에 넣고, 돌아와 배수구 앞에 쪼그려 앉았다. 냅킨 위의 샌드위치 조각을 집어 다시 냅킨으로 감쌌다. 버리지 않았다. 자켓 주머니에 넣지도 않았다. 그냥 냅킨째 이사영에게 내밀었다.
아까워. 먹어.
이사영이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고개를 저었다. 구일오는 일어서서 그녀의 손목을 가볍게 잡아 얼굴에서 떼어냈다. 붉어진 볼, 물기가 맺힌 눈가, 부끄러움에 잔뜩 찌푸린 입술. 구일오는 그 얼굴을 한참 내려다보았다. 웃음이 가시지 않았다. 가시게 할 생각도 없었다.
다음에 진짜 고양이 나오면 알려줄게. 그때 줘.
그가 냅킨을 이사영의 손에 쥐여주고 걷기 시작했다. 이사영이 뒤에서 따라오며 중얼거렸다. '움직였단 말이야, 진짜로.' 구일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자켓 주머니에 찔러넣은 왼손이 수첩을 더듬었다. 만년필 뚜껑을 엄지로 튕겨 열었다. 걸으면서, 왼손만으로, 수첩 한 구석에 짧게 적었다.
'비닐봉지 고양이.'
그 글씨는 블랙리스트 수첩의 마지막 페이지, 아무 이름도 적혀 있지 않은 빈 장에 쓰여졌다. 구일오는 뚜껑을 닫고 수첩을 주머니에 밀어넣었다. 앞서 걸으며, 뒤따라오는 슬리퍼 소리를 들었다. 완차이의 좁은 골목에 오후 햇빛이 비스듬히 내려앉았고, 그의 어깨가 한 번 더 들썩였다. 참을 수 없는 것이 또 새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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