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이프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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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18 18:27

이사영이 고개를 돌렸다. 구일오는 그 움직임을 프로젝터 빛의 궤적으로 읽었다. 스크린의 흰색이 이사영의 턱선을 훑고 지나가며 목의 윤곽을 드러냈고, 왼쪽 쇄골 위의 작은 점이 그림자 속에서 잠깐 반짝였다가 사라졌다. 이사영의 연두색 눈이 아래에서 위로 올라왔다. 구일오의 턱, 입술, 코, 그리고 흉터. 그 시선이 흉터 위에서 멈추지 않고 미끄러져 올라가 눈과 마주쳤다. 연민이 없는 시선. 구일오는 그 시선의 부재가 만들어내는 무게를 허벅지 위의 깍지에서 느꼈다. 이사영의 손가락이 그의 손가락 사이에서 미세하게 조여들었다. 대답이었다. 이름을 불렀으니 대답한 것이었다. 말 대신 관절의 압력으로.


구일오의 왼손이 움직였다. 깍지를 풀지 않은 채, 오른손은 이사영의 손을 허벅지 위에 고정한 상태로, 왼손만 들어올려 이사영의 얼굴 쪽으로 뻗었다. 손가락 끝이 이사영의 관자놀이 옆에 흘러내린 머리카락 한 줄기를 건드렸다. 귀 뒤로 넘기는 동작. 그러나 구일오의 손가락은 머리카락을 넘긴 뒤에도 돌아오지 않았다. 검지와 중지가 이사영의 귀 뒤쪽 피부 위에 머물렀다. 귓불 바로 아래, 턱뼈와 목이 만나는 경계. 맥박이 뛰는 자리. 이사영의 심박수가 손끝에 전해졌다. 분당 82회. 아까 완탕을 먹을 때보다 12회 빨라져 있었다.


왜 빨라.


구일오가 물었다. 입꼬리가 올라가지 않았다. 그러나 눈이 웃고 있었다. 흰 눈동자 안에 프로젝터 빛이 작은 사각형으로 박혀 있었고, 그 사각형 안에서 영화 속 인물이 움직이고 있었다. 구일오는 이사영의 맥박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은 채 고개를 기울였다. 이마가 이사영의 이마에 닿기 직전에 멈추었다. 1센티미터. 이사영의 숨결이 그의 입술 아래쪽, 턱 끝에 닿았다. 따뜻하고 불규칙한 호흡. 구일오는 그 온도를 측정하지 않았다. 대신 들이마셨다. 비누 냄새와 귤 향기가 섞인 이사영의 냄새가 폐 안쪽까지 내려갔다. 그의 눈이 이사영의 입술 위에 머물렀다. 스크린 빛이 지나갈 때마다 색이 변하는 입술. 파랑, 흰색, 다시 파랑.


심장 소리 들려.


거짓말이었다. 손가락으로 맥박을 세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구일오는 거짓말을 진실처럼 말하는 데 능숙한 남자였고,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기술을 이사영에게 쓰는 것이 불쾌하지 않았다. 그의 왼손이 이사영의 턱 아래로 미끄러졌다. 엄지가 턱 끝에 닿았고, 나머지 손가락이 턱선을 감쌌다. 이사영의 얼굴을 들어올리는 동작이었다. 부드러웠지만 방향이 분명했다. 위로. 자기 쪽으로. 구일오의 입술이 이사영의 이마 위에 내려앉았다. 입술이 아닌 입술 바로 아래, 턱의 피부가 이사영의 이마에 닿는 각도. 키스가 아니었다. 키스 직전의 좌표에 머무르는 것이었다. 그의 입술이 이사영의 이마 피부 위 0.5밀리미터 상공에서 숨을 내쉬었다. 따뜻한 공기가 이사영의 머리카락 사이로 스며들었다.


가만히 있으라고 했지.


구일오가 속삭였다. 이사영의 손가락이 허벅지 위에서 다시 꿈틀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크린에서 비가 내리는 장면이 시작되었고, 빗소리가 상영관 스피커를 타고 천장에서 쏟아졌다. 구일오는 그 소리 아래에서 이사영의 이마를 입술로 쓸었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한 번. 피부의 결을 따라가는 느린 동작. 이사영의 머리카락에서 비누 냄새가 올라왔고, 구일오의 코끝이 그 냄새 속에 잠겼다. 그는 눈을 감았다. 프로젝터 빛이 두 사람의 그림자를 벽 위에 겹쳐놓았다. 하나의 윤곽.


영화가 끝났다. 스크린이 검게 죽고, 상영관 조명이 천장에서 주황색으로 떨어졌을 때, 구일오는 움직이지 않았다. 이사영의 손가락이 아직 그의 손가락 사이에 끼어 있었기 때문이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동안 상영관의 다섯 명이 하나둘 일어나 나갔다. 의자 접히는 소리, 슬리퍼 끌리는 소리, 출구 쪽 커튼이 찰랑거리는 소리. 구일오는 그 소리들을 세었다. 다섯 번째 발소리가 사라지자 상영관은 완전히 비었다. 프로젝터가 돌아가는 릴 소리만 천장 위에서 덜컹거렸고, 스크린 위로 필름 끝자락의 흰 빛이 무의미하게 깜빡였다. 구일오의 엄지가 이사영의 손등 위를 쓸었다. 한 번. 두 번. 뼈의 능선을 따라가는 느린 동작.


그는 알고 있었다.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숫자로 환원할 수 없는 형태로, 이 하루가 마지막이라는 것을.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천장의 금이 어제와 같은 각도로 갈라져 있었고, 수조 안의 금붕어 두 마리가 같은 방향으로 헤엄치고 있었고, 무선호출기의 날짜 표시가 1월 14일을 가리키고 있었다. 같은 날. 같은 햇빛. 같은 습도. 그러나 구일오의 폐 안쪽 어딘가에서, 시너 냄새가 아닌 다른 종류의 화상이 타오르고 있었다. 이사영이 사라진다는 확신. 그것은 숫자가 아니라 체온이었다. 이사영의 손등에서 올라오는 36.2도의 열기가 자정이 지나면 영원히 식는다는, 측량할 수 없는 공포.


구일오는 이사영을 데리고 상영관을 나왔다. 코즈웨이 베이의 저녁은 네온과 매연으로 물들어 있었다. 트램이 궤도 위를 삐걱거리며 지나갔고, 노점상들이 어묵 꼬치와 계란빵을 팔며 소리를 질렀다. 1월의 습기가 셔츠 안쪽까지 스며들었지만 구일오는 자켓이 없었다. 이사영이 입고 있었으니까. 갈색 가죽 자켓의 소매가 이사영의 손목을 넘어 손가락 끝까지 덮고 있었다. 구일오는 그 소매 끝에서 삐져나온 이사영의 손가락을 잡아 주머니 안에 넣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손바닥 안에 감쌌다. 걸었다. 보폭을 줄였다. 이사영의 슬리퍼가 보도블록을 치는 소리에 맞추어.


배고파?


구일오가 물었다. 완탕면을 먹은 지 네 시간이 지나 있었다. 이사영의 위장이 그 시간 안에 소화를 마쳤을 것이라는 계산. 그러나 그 질문은 배고픔을 묻는 것이 아니었다. 시간을 묻는 것이었다. 남은 시간을 어디에서 쓸 것인지. 구일오는 이사영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방향을 틀었다. 완차이 쪽이 아니라 셩완 쪽으로. 이사영의 집이 있는 방향. 싱와 빌딩. 7층 B호. 등기 미완료. 철거 예정 D-17. 그 숫자들이 구일오의 뇌리에서 칼날처럼 회전했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삼켰다. 오늘은 숫자의 날이 아니었다.


---

셩완의 골목은 좁고 어두웠다. 가로등 하나가 전봇대 위에서 깜빡이며 노란 빛을 흘렸고, 건물 사이의 틈새로 빨래가 줄지어 걸려 있었다. 이사영의 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는 늘 그렇듯 삐걱거렸다. 구일오는 이사영보다 먼저 들어가 7층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 안의 형광등이 그의 얼굴을 비추었다. 왼쪽의 화상 흉터가 하얀 빛 아래에서 지형도처럼 드러났다. 구일오는 피하지 않았다. 이사영 앞에서는 피하지 않았다. 이사영의 연두색 눈이 그의 흉터 위를 지나가도 멈추지 않고 미끄러져 내려가 입술에 닿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이사영의 집 안은 좁았다. 방 두 칸. 할머니가 남긴 가구들. 낡은 소파와 작은 식탁. 구일오는 이사영의 냉장고를 열었다. 귤 세 개, 물 한 병, 반찬통 하나. 구일오는 냉장고 문을 닫지 않은 채 귤 세 개를 꺼내 식탁 위에 놓았다. 하나, 둘, 셋. 주황색이 낡은 나무 식탁 위에서 형광등 빛을 받아 둥글게 빛났다. 그의 손가락이 첫 번째 귤의 꼭지를 잡고 비틀었다. 껍질이 갈라지며 시트러스 향이 좁은 부엌을 채웠다. 이사영의 냄새. 구일오의 손톱 밑으로 귤즙이 스며들었고, 그는 그 끈적임을 닦지 않았다. 껍질을 한 조각씩 벗겨내는 동작이 느렸다. 평소 서류를 넘기는 속도의 3분의 1. 의도적인 감속이었다. 시간을 늘리는 유일한 방법이 속도를 줄이는 것뿐이라는, 측량사답지 않은 비합리적 계산.


이사영이 어디에 있는지 등 뒤의 공기로 알 수 있었다. 슬리퍼가 바닥을 스치는 소리, 청바지 원단이 허벅지에 마찰하는 미세한 바스락거림, 비누 냄새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궤적. 구일오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대신 귤을 반으로 갈라 한쪽을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이사영의 자리. 이사영이 항상 앉는 의자 앞.


씻지 마.


구일오가 말했다. 이사영이 욕실 쪽으로 움직이려는 기척이 발끝에서 읽혔기 때문이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고, 명령이 아닌 부탁에 가까운 톤이었다. 그러나 구일오는 부탁하는 법을 모르는 남자였으므로, 그것은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부드러운 형태의 명령이었다. 그는 귤 한 쪽을 입에 넣고 씹었다. 신맛이 혀 안쪽을 찔렀다. 삼키지 않고 과즙을 입안에 머금은 채 돌아섰다.


이사영이 거기 있었다. 자켓 소매가 손목을 넘어 늘어져 있었고, 갈색 가죽이 이사영의 어깨에서 흘러내릴 듯 걸쳐져 있었다. 구일오의 자켓. 구일오의 냄새가 배어 있을 가죽. 이사영의 연두색 눈이 귤을 들고 서 있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형광등 빛이 이사영의 얼굴 위에서 하얗게 부서졌고, 왼쪽 쇄골 위의 작은 점이 티셔츠 목선 아래에서 반쯤 드러나 있었다. 구일오는 그 점까지의 거리를 눈으로 쟀다. 세 걸음. 그는 두 걸음만 걸었다. 나머지 한 걸음은 이사영의 것으로 남겨두었다.


이리 와.


구일오의 손이 뻗었다. 귤즙이 묻은 손가락이 이사영의 턱 아래에 닿았다. 엄지가 턱 끝을 잡았고, 나머지 손가락은 턱선을 따라 귀 아래까지 미끄러졌다. 귤의 시트러스 향과 이사영의 비누 냄새가 그의 손가락 위에서 섞였다. 구일오는 이사영의 얼굴을 자기 쪽으로 들어올렸다. 천천히. 그의 흰 눈동자가 이사영의 연두색 눈 위에 고정되었다. 형광등 빛이 그의 왼쪽 흉터를 가차없이 비추었지만 구일오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이 여자 앞에서는 돌리지 않았다. 그의 입술이 이사영의 이마 위에 내려앉았다. 길게. 3초. 5초. 입술 아래로 이사영의 피부 온도가 전해졌고, 그 온도가 자정이 되면 사라진다는 사실이 구일오의 턱 근육을 경련시켰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가 풀었다. 이마에서 입술을 떼지 않은 채.


오늘 여기 있을 거야.


구일오가 이사영의 이마 위에 대고 말했다. 숨결이 머리카락 사이로 스며들었다. 허락을 구하는 문장이 아니었다. 통보였다. 그러나 그 통보 안에는 구일오가 평생 입 밖에 꺼내지 못한 단어가 접혀 있었다. 제발. 그의 왼손이 이사영의 허리 뒤로 돌아갔다. 자켓 위로. 가죽의 질감이 손바닥에 닿았고, 그 아래에서 이사영의 체온이 올라왔다. 구일오는 이사영을 자기 쪽으로 당겼다. 셔츠 앞섶에 이사영의 이마가 닿을 때까지. 이사영의 머리카락에서 올라오는 비누 냄새가 그의 폐를 채웠다. 구일오는 눈을 감았다.


구일오의 팔 안에서 이사영의 심장이 뛰고 있었다. 셔츠 원단을 통과해 전해지는 그 진동은 측량 가능한 것이었다. 분당 78회. 아니, 80회. 약간 빨랐다. 구일오는 이사영의 머리카락에 턱을 묻은 채 그 숫자를 세다가 멈추었다. 오늘은 세지 않기로 했다. 세면 끝이 오니까. 끝에 숫자를 붙이면 그것은 측량 가능한 것이 되고, 측량 가능한 것은 소멸 가능한 것이 되니까. 그의 왼손이 이사영의 허리 위에서 미세하게 조여들었다. 가죽 자켓 아래의 체온이 손바닥을 데웠다. 형광등이 부엌을 하얗게 채우고 있었고, 식탁 위의 귤 세 개 중 하나는 껍질이 벗겨진 채 반으로 갈라져 있었다. 나머지 둘은 온전했다. 구일오는 그 둘이 오늘 밤 안에 전부 이사영의 입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밥 해줄까.


구일오가 이사영의 머리카락 위에 대고 말했다. 목소리가 두개골을 울렸을 것이다. 그는 이사영을 놓지 않은 채 냉장고 쪽으로 고개만 돌렸다. 반찬통 하나, 물 한 병. 재료가 없었다. 구일오는 요리를 할 줄 몰랐다. 클럽 샌드위치를 주문하는 것과 금붕어에게 사료를 주는 것이 그의 식생활 전부였다. 그러나 오늘은 이사영에게 무언가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 욕구가 흉골 아래에서 둔하게 울렸다. 설명할 수 없는 충동. 숫자로 환원할 수 없는 종류의 것. 구일오는 이사영의 이마에서 입술을 떼고 한 발 물러나, 이사영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흰 눈동자가 연두색 눈동자 위에 고정되었다. 형광등 빛이 이사영의 왼쪽 쇄골 위의 점을 비추고 있었다.


뭐 먹고 싶어.


질문이 아니었다. 마침표였다. 구일오는 이사영이 대답하는 동안 그녀의 턱선을 엄지로 쓸었다. 귤즙이 마르며 끈적해진 손가락이 이사영의 피부 위에서 미끄러졌다. 시트러스와 비누. 두 냄새가 그의 손가락 끝에서 뒤엉켰다. 구일오의 시선이 이사영의 입술 위에 머물렀다. 이사영이 멍할 때 입술을 만지는 습관을 가진 여자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지금은 만지지 않고 있었다. 대신 이사영의 입술이 미세하게 벌어져 있었고, 그 사이로 따뜻한 숨이 새어 나왔다. 구일오의 턱 근육이 한 번 경련했다. 입맞춤하고 싶었다. 지금. 여기서. 이 형광등 아래서. 그러나 구일오는 그 충동을 삼켰다. 아직이었다. 아직은 시간이 있었다. 그는 이사영의 턱에서 손을 떼고 소매를 걷어올리며 냉장고를 다시 열었다.


반찬통을 꺼냈다. 뚜껑을 열자 멸치볶음이었다. 작은 은빛 물고기들이 간장색으로 엉겨 있었다. 구일오는 그것을 식탁 위에 놓고, 쌀통을 찾아 싱크대 아래를 뒤졌다. 이사영의 부엌은 좁았다. 두 사람이 서면 어깨가 닿을 만큼. 구일오의 팔꿈치가 벽에 부딪혔고, 그는 혀를 찼지만 얼굴에는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았다. 쌀통을 찾아냈다. 반 정도 차 있었다. 구일오는 밥솥을 꺼내 쌀을 씻기 시작했다. 찬물이 손가락 사이로 흘렀다. 쌀알이 부딪히는 사각거림. 물이 뿌옇게 흐려졌다가 맑아지기를 세 번. 그의 손놀림은 서툴렀으나 정확했다. 매뉴얼을 읽듯이. 수량 계산은 할 줄 알았으니까.


앉아 있어. 건드리면 못 해.


구일오가 등을 돌린 채 말했다. 그의 목덜미가 셔츠 칼라 위로 드러나 있었다. 형광등 빛이 목 뒤의 힘줄을 비추었고, 소매를 걷어올린 팔뚝의 근육이 쌀을 씻는 동작에 따라 움직였다. 구일오는 밥솥 버튼을 누르고 돌아서서, 식탁 의자를 당겨 이사영 맞은편에 앉았다. 구일오는 의자에 앉자마자 다리를 벌려 무릎 사이로 공간을 만들었다. 식탁이 좁았다. 이사영의 무릎과 자신의 무릎 사이에 주먹 하나 들어갈 거리. 밥솥에서 물이 끓기 시작하는 소리가 부엌을 채웠다. 보글보글. 일정한 간격의 기포음. 구일오는 그 소리를 들으며 귤 두 번째 것의 꼭지를 잡았다. 손톱이 껍질 아래로 파고들었고, 시트러스 향이 다시 피어올랐다. 이번에는 천천히 벗기지 않았다. 한 번에 크게 찢었다. 껍질 조각이 식탁 위에 떨어졌고, 하얀 속껍질이 드러난 귤알이 형광등 아래서 축축하게 빛났다. 구일오는 한 쪽을 떼어 이사영 앞으로 밀었다. 손가락 끝에서 과즙이 번들거렸다.


먹어.


짧았다. 구일오의 시선은 이사영의 손 위에 머물러 있었다. 자켓 소매에 파묻힌 작은 손. 자기 자켓이 저렇게 작은 몸 위에 걸쳐져 있다는 사실이 흉골 아래를 눌렀다. 설명할 수 없었다. 보호욕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이기적이고, 소유욕이라고 부르기엔 그 단어를 구일오 자신이 혐오했다. 그냥. 이사영이 자기 옷을 입고 자기 앞에 앉아 자기가 깐 귤을 먹는 장면을 보고 싶었다. 그것뿐이었다. 구일오는 자기 몫의 귤 한 쪽을 입에 넣고, 터뜨리지 않은 채 어금니 사이에 끼워두었다. 신맛이 침샘을 자극했고, 그는 그 감각을 오래 붙잡아두었다.


밥솥의 보글거림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증기가 뚜껑 틈새로 새어 나와 좁은 부엌의 습도를 끌어올렸다. 구일오의 셔츠 가슴팍이 축축해졌다. 그는 단추 두 번째까지 풀어헤친 셔츠 사이로 올라오는 열기를 느끼며, 이사영을 바라보았다. 정면으로. 형광등이 그의 얼굴 양쪽을 균등하게 비추고 있었다. 오른쪽의 매끈한 피부와 왼쪽의 울퉁불퉁한 화상 자국이 동시에 드러나 있었다. 구일오는 피하지 않았다. 이 여자 앞에서는 피하지 않았다. 피하지 않아도 되는 얼굴이 세상에 하나 있다는 사실이, 귤보다 셌다.


폐.


구일오가 말했다. 뜬금없이. 그러나 그의 눈은 이사영의 가슴 쪽을 향해 있었다. 가슴이 아니라 그 안의 폐. 기관지폐이형성증. 1월 9일, 이사영이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의 심장이 뛴 기억이 손끝에 남아 있었다. 구일오는 귤 껍질을 손가락으로 접으며 입을 열었다.


요즘 기침 안 해?


목소리가 낮았다. 관심을 위장하지 않은, 날것의 질문이었다. 구일오는 이사영의 대답을 기다리며 세 번째 귤에 손을 뻗었다. 이것도 까야 했다. 이사영의 입 안으로 넣어야 했다. 오늘 밤이 끝나기 전에. 그의 손가락이 귤 표면의 울퉁불퉁한 기공 위를 더듬었다. 밥솥에서 김이 빠지는 소리가 쉿, 하고 길게 울렸다. 좁은 부엌에 쌀 익는 냄새가 번졌다. 구일오는 그 냄새를 들이마시며, 자기가 지금 누군가를 위해 밥을 짓고 있다는 사실을 한 박자 늦게 인지했다. 턱 근육이 한 번 경련했다. 그리고 풀렸다.


세 번째 귤의 껍질이 벗겨지는 동안 밥솥의 증기가 멈췄다. 뚜껑 안쪽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만 남았다. 똑. 똑. 구일오는 귤알을 한 쪽씩 분리하며 이사영의 대답을 기다렸다. 기침. 폐. 기관지폐이형성증이라는 여섯 글자가 그의 두개골 안에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1월의 홍콩은 습했다. 습한 공기는 기관지를 자극했다. 구일오는 그 정도의 의학 상식은 갖고 있었다. 사회복지를 전공한 사람이 몰랐으면 그게 더 이상했다. 그는 이사영의 가슴이 오르내리는 리듬을 눈으로 쫓았다. 셔츠 위로 희미하게 드러나는 흉곽의 윤곽. 숨을 들이쉴 때 어깨가 미세하게 올라가는 각도. 정상이었다. 지금은. 구일오의 턱 근육이 한 번 움직였다가 풀렸다.


대답.


구일오가 귤 한 쪽을 이사영의 입 앞으로 가져갔다. 손가락 두 개 사이에 낀 귤알이 형광등 아래서 반투명하게 빛났다. 과즙이 손가락 관절을 타고 흘러내렸다. 시트러스 냄새가 좁은 부엌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그 아래로 쌀 익는 냄새가 깔려 있었다. 두 냄새의 조합이 구일오에게는 완전히 낯선 것이었다. 그의 집에서는 나지 않는 냄새. 사이잉푼의 차가운 조명 아래, 금붕어 수조의 모터 소리만 있는 원룸에서는 절대 발생할 수 없는 종류의 공기. 구일오는 그 냄새를 폐 깊숙이 밀어넣었다. 의식적으로. 기억해두려는 것처럼.


이사영이 귤을 받아먹는 동안 구일오는 일어서서 밥솥 뚜껑을 열었다. 증기가 얼굴을 때렸다. 왼쪽 뺨의 화상 자국 위로 뜨거운 수증기가 지나갔고, 땀샘이 죽은 피부는 반응하지 않았다. 오른쪽 뺨에만 습기가 맺혔다. 구일오는 주걱을 찾아 서랍을 뒤졌다. 두 번째 서랍. 이사영의 부엌 배치를 이미 외우고 있었다. 밥을 퍼서 그릇 두 개에 나눴다. 한쪽에는 많이, 한쪽에는 적게. 많은 쪽을 이사영 앞에 놓았다. 멸치볶음 반찬통의 뚜껑을 열고 그 옆에 나란히 배치했다. 숟가락 두 개. 젓가락 두 벌. 구일오는 이사영 맞은편에 다시 앉으며 자기 그릇의 밥 위에 멸치 몇 마리를 올렸다.


많이 먹어. 마른 거 싫어.


거짓말이었다. 마른 것이 싫은 게 아니라, 이사영이 더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160센티미터, 마르고 작은 몸. 그 몸 안에 성능이 떨어지는 폐가 들어 있었다. 구일오는 밥을 한 숟갈 떠서 입에 넣었다. 약간 질었다. 물 조절을 실패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씹었다. 삼켰다. 멸치를 하나 집어 씹었다. 짠맛이 혀 위에 퍼졌다. 구일오는 밥을 씹으며 이사영을 바라보았다. 자기 자켓을 입고 자기가 지은 밥을 먹는 여자. 형광등이 이사영의 갈색 머리카락 위에 하얀 빛을 쏟고 있었고, 연두색 눈동자가 밥그릇 위로 숙여져 있었다. 구일오의 숟가락이 그릇 가장자리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딸깍. 그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턱을 괴었다. 이사영이 밥을 먹는 모습을 보는 것이 밥을 먹는 것보다 나았다. 그 사실이 구일오를 당혹스럽게 했고, 당혹감은 턱 근육의 미세한 경련으로만 표현되었다.


천천히.


구일오의 목소리가 낮게 내려앉았다. 부엌의 형광등이 지직거리며 한 번 깜빡였다. 낡은 건물이었다. 철거 예정 구역의 낡은 건물. D-17. 구일오는 그 숫자를 머릿속에서 지웠다. 오늘은 세지 않기로 했으니까. 그의 시선이 이사영의 입술 위에 머물렀다. 밥알이 묻어 있었다. 구일오의 엄지가 식탁 위에서 미세하게 움직였다.


설거지를 마친 구일오의 손이 젖어 있었다. 행주로 닦는 동안 등 뒤에서 이사영이 식탁에 턱을 괴고 앉아 있는 기척이 느껴졌다. 형광등이 또 한 번 지직거렸다. 낡은 배선. 철거 예정 건물의 배선이 내는 마지막 비명 같은 소리. 구일오는 행주를 개어 싱크대 옆에 걸었다. 손가락 사이에 남은 물기가 공기 중에서 식었다. 그는 돌아서서 이사영을 보았다. 형광등 아래, 갈색 머리카락이 어깨를 타고 흘러내린 여자. 연두색 눈동자가 자기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구일오의 턱 근육이 한 번 움직였다. 그리고 풀렸다. 그는 식탁으로 돌아와 이사영의 맞은편이 아닌 옆에 앉았다. 의자를 끌어 무릎과 무릎이 닿을 만큼 가까이. 슬랙스 천 위로 이사영의 청바지 천이 스쳤다. 구일오는 젖은 손으로 이사영의 손목을 잡았다. 차가웠다. 자기 손이. 이사영의 손목은 따뜻했다. 맥박이 손가락 끝에 닿았다. 일정하고, 작고, 확실한 박동.


이리 와.


구일오가 이사영의 손목을 잡아 끌었다. 가볍게. 그러나 거부를 허용하지 않는 힘으로. 이사영의 몸이 의자에서 일어나 그의 무릎 위로 옮겨졌다. 양 다리가 그의 허벅지 양옆으로 걸쳐졌고, 구일오는 한 손으로 이사영의 허리를, 다른 손으로 뒷머리를 감쌌다. 이사영의 머리카락이 손가락 사이로 흘렀다. 비누 냄새. 귤 향. 멸치볶음의 짠 기름 냄새. 전부 이사영에게서 났다. 구일오는 이사영의 이마에 턱을 대고 눈을 감았다. 형광등이 지직거렸다. 밥솥의 보온등이 주황색으로 부엌 한쪽을 물들이고 있었다. 1월의 습한 공기가 창틈으로 스며들었고, 맞은편 건물의 벽이 창문 너머로 보였다. 전망 없는 창문. 이사영의 집에도, 자기 집에도 전망은 없었다. 그러나 지금 구일오의 시야에는 이사영의 머리카락 꼭대기만 있었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시계가 없었다. 이사영의 부엌에는 시계가 없었다. 구일오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자기 손목에도 시계가 없었다. 오늘은 차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시간을 세지 않기로 한 날에 시계는 필요 없었다. 그러나 구일오의 몸은 시계보다 정확했다. 31년간 길들여진 체내 시계가 자정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공기의 밀도가 달라졌다. 이사영의 머리카락 사이로 내쉬는 숨이 한 번 길어졌다. 구일오의 손이 이사영의 등을 쓸어내렸다. 척추의 굴곡을 따라. 손바닥 아래로 갈비뼈가 느껴졌다. 얇았다. 너무 얇았다. 그 안에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폐가 들어 있었다. 구일오의 손이 멈췄다. 갈비뼈 위에서.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그 떨림을 힘으로 눌러 멈추려 했으나 실패했다.


이사영.


구일오가 이름을 불렀다. 이. 사. 영. 세 음절이 혀끝에서 굴러 떨어졌다. 그는 이사영의 머리카락에서 턱을 떼고, 양손으로 이사영의 얼굴을 감쌌다. 엄지가 광대뼈 위에 얹혔다. 연두색 눈동자가 가까이 있었다. 형광등이 그 안에서 하얗게 반사되고 있었다. 구일오는 이사영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오래. 눈썹의 각도, 속눈썹의 그림자, 코끝의 미세한 각질, 입술 위의 밥알 자국. 전부. 구일오의 시선이 이사영의 왼쪽 쇄골로 내려갔다. 작은 점. 그는 엄지로 그 점을 짚지 않았다. 대신 눈으로 찍었다. 좌표처럼. 그의 입술이 열렸다가, 닫혔다가, 다시 열렸다.


내일.


그 한 마디가 부엌의 습한 공기 속에 떨어졌다. 내일. 구일오는 그 단어의 무게를 알고 있었다. 내일은 월요일이었다. 내일. 그 단어가 형광등의 지직거림 속에 녹아들었다. 구일오의 입술이 닫혔다. 열리지 않았다. 그는 이사영의 얼굴을 감싼 양손을 거두지 않은 채 엄지로 광대뼈 아래의 살을 쓸었다. 느리게. 피부의 온도를 재듯이. 이사영의 연두색 눈동자가 가까이 있었고, 그 안에 자기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 왼쪽의 화상 흉터까지 전부. 구일오는 그 사실을 인지했으나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오늘은 숨기지 않기로 했으니까. 그의 엄지가 이사영의 입술 아래 턱선에 닿았다. 밥알 자국이 지워진 자리. 부드러웠다. 구일오의 목 안에서 무언가가 올라왔다가 삼켜졌다.


내일 아침에 샌드위치 가게 가야지.


구일오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반 톤 낮았다. 일상적인 말이었다. 의도적으로 일상적인 말이었다. 내일은 월요일이고, 월요일 아침 7시에 BACKLANE DELI에 가면 이사영이 앞치마를 매고 서 있을 것이고, 대니가 말없이 토마토 뺀 클럽 샌드위치와 블랙커피를 내놓을 것이다. 구일오는 그 루틴을 말하고 있었다. 루틴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것. 반복. 지속. 내일도, 모레도, 그 다음에도. 구일오의 손가락이 이사영의 턱선을 따라 귓불 아래로 내려갔다. 맥박이 뛰고 있었다. 72. 아니, 지금은 조금 더 빠를 것이다. 구일오는 세지 않았다. 오늘은 세지 않기로 했으니까. 대신 맥박의 진동을 손끝으로 느꼈다. 살아 있다는 증거. 따뜻하고, 작고, 확실한.


구일오가 이사영의 이마에 입술을 대었다. 길게. 눈을 감았다. 이사영의 머리카락에서 비누 냄새가 올라왔고, 그 아래로 귤 향이 깔려 있었다. 구일오의 폐가 그 공기를 빨아들였다. 천천히. 기억하려는 것처럼. 아니, 기억해야 하는 것처럼. 그의 입술이 이마에서 떨어졌다. 1밀리미터. 숨결이 이사영의 피부 위에 닿았다. 구일오의 입술이 다시 열렸다. 이번에는 소리가 거의 없었다. 이사영의 이마 위에 대고 내뱉는, 숨결에 가까운 목소리.


출근 늦지 마.


그것은 내일을 전제한 문장이었다. 내일 아침 7시, BACKLANE DELI. 앞치마를 맨 이사영. 토마토 뺀 클럽 샌드위치. 블랙커피. 구일오는 그 풍경을 머릿속에 그렸다. 선명하게. 좌표처럼 정확하게. 그리고 이사영의 머리카락 위에 턱을 올렸다. 무릎 위의 이사영이 가벼웠다. 너무 가벼웠다. 구일오의 팔이 이사영의 허리를 감싸는 힘이 미세하게 강해졌다. 놓치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었다. 여기 있다는 것을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형광등이 마지막으로 한 번 지직거리고, 부엌이 0.5초간 어두워졌다가 다시 밝아졌다. 밥솥의 보온등이 주황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맞은편 건물의 벽이 창문 너머로 검었다. 1월 14일이 끝나가고 있었다. 구일오는 눈을 감은 채 이사영의 심장 박동을 세기 시작했다. 세지 않기로 했으면서. 그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한쪽만 올라갔다.


이사영.


그가 이름을 한 번 더 불렀다. 이유는 없었다. 아니, 이유가 있었다. 혀끝에서 세 음절이 굴러가는 감각이 좋았다. 그것뿐이었다. 구일오의 턱이 이사영의 머리카락 위에서 미세하게 움직였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한 동작. 부엌의 습한 공기가 두 사람을 감싸고 있었고, 귤 껍질의 시트러스 향이 아직 손가락 사이에 남아 있었다. 구일오는 그 냄새를 맡으며 생각했다. 내일 아침, 이 손으로 커피잔을 들면 아직 귤 냄새가 날까. 날 것이다. 비누로 씻어도 귤 껍질의 기름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구일오는 그 사실이 싫지 않았다.


시계가 없는 부엌이었다. 구일오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체내의 초침이 째깍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11시 58분. 아마. 이사영의 머리카락 위에 올린 턱이 미세하게 떨렸다. 귤 껍질의 시트러스 기름이 손가락 사이에서 마르고 있었다. 구일오의 팔이 이사영의 허리를 감싼 채 조여들었다. 의식적인 동작이 아니었다. 갈비뼈의 윤곽이 셔츠 천 너머로 손바닥에 닿았다. 얇았다. 여전히 너무 얇았다. 구일오의 입술이 이사영의 머리카락 꼭대기에서 열렸다. 비누 냄새가 코끝을 적셨다. 형광등이 지직. 부엌의 빛이 0.3초 동안 사라졌다가 돌아왔다. 밥솥의 보온등만 주황색으로, 꺼지지 않고 있었다.


이사영.


세 번째. 오늘 세 번째로 그 이름을 불렀다. 혀끝에서 굴러가는 감각이 닳지 않았다. 이. 사. 영. 구일오는 이사영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 올렸다. 엄지가 광대뼈 위의 솜털에 닿았다. 연두색 눈동자가 올려다보고 있었다. 형광등의 하얀 빛이 그 안에서 부서지고 있었고, 그 빛 속에 구일오의 얼굴이 비쳤다. 왼쪽의 화상 흉터. 오른쪽의 멀쩡한 피부. 그 경계선이 이사영의 눈동자 안에서 하나로 합쳐져 있었다. 구일오는 그 사실을 보았다. 보았고, 삼켰다. 목 안의 근육이 한 번 경련했다.


귤 냄새 아직 나?


쓸데없는 질문이었다. 이사영의 손가락에서 귤즙이 마르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구일오는 이사영의 손을 잡아 자기 코 앞으로 가져왔다. 손가락 끝에서 시트러스 향이 올라왔다. 그 아래로 비누. 그 아래로 이사영의 피부 냄새. 구일오는 이사영의 손가락 끝에 입술을 대었다. 키스가 아니었다. 확인이었다. 여기 있다는 것의. 따뜻하다는 것의. 이사영의 맥박이 손목 안쪽에서 뛰고 있었다. 구일오의 입술이 손가락 끝에서 떨어졌다. 1밀리미터. 숨결이 이사영의 피부 위에 닿았다. 습한 공기. 1월의 습기가 창틈 사이로 기어들어와 두 사람의 사이를 적시고 있었다. 맞은편 건물의 벽이 검은 직사각형으로 창문을 메우고 있었다. 전망 없는 창문. 그러나 구일오의 시야에는 이사영의 손가락 끝만 있었다.


11시 59분. 구일오의 체내 시계가 찰칵 소리를 냈다. 그의 손이 이사영의 손을 감쌌다. 단단하게. 손가락과 손가락이 맞물렸다. 귤즙과 설거지 물이 뒤섞인 손. 구일오는 이사영을 무릎 위에 앉힌 채 이마를 이사영의 이마에 대었다. 코끝이 닿았다. 숨이 섞였다. 이사영의 호흡이 그의 입술 위로 흘러왔다. 따뜻하고, 얕고, 약간 불규칙했다. 폐.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폐가 내뱉는 숨. 구일오의 눈이 감겼다. 연두색이 사라졌다. 대신 이마의 온도와 코끝의 접촉과 섞이는 숨결만 남았다. 구일오의 입술이 열렸다. 이번에는 속삭임도 아니었다. 이사영의 입술 위에 떨어뜨리는, 진동에 가까운 목소리.


좋아합니다.


같은 말이었다. 유엔롱 영화관에서 돌아오는 길에 했던 말. 구일오는 그때 한 번 말했고, 지금 한 번 더 말했다. 두 번. 구일오에게 두 번은 과분한 숫자였다. 그러나 이사영에게는 부족한 숫자일 것이다. 구일오는 알고 있었다. 매일, 한 번으로는 부족하다고 자기가 말했으니까. 그의 입술이 이사영의 입술에 닿았다. 가볍게. 자기가 깬 규칙. 입술 접촉 절대 불가. 그 규칙은 이미 유엔롱에서 산산조각이 났고, 파편은 이사영의 입술 위에 박혀 있었다. 구일오는 눈을 감은 채 이사영의 입술을 느꼈다. 부드럽고, 마르지 않았고, 귤 향이 났다. 형광등이 지직. 그리고 꺼졌다. 이번에는 돌아오지 않았다.


형광등이 꺼진 부엌에서 구일오의 입술이 허공을 더듬었다. 이사영의 입술이 있던 자리. 귤 향이 묻어 있던 자리. 0.5초 전까지 따뜻했던 자리. 그의 양손이 감싸고 있던 얼굴의 윤곽이 손바닥 안에서 증발했다. 연두색 눈동자도, 광대뼈 위의 솜털도, 불규칙한 호흡도. 구일오의 손가락이 허공에서 오므라들었다. 주먹이 되지 못하고, 반쯤 접힌 채 멈췄다. 무릎 위의 무게가 사라졌다. 47킬로그램. 아니, 그보다 적었을 것이다. 그 가벼운 무게가 빠져나간 자리에 1월의 습한 공기가 차올랐다. 차가웠다. 구일오의 허벅지 위에 이사영의 체온이 아직 남아 있었다. 잔열. 밥솥의 보온등이 주황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유일한 광원. 그 빛 아래에서 구일오의 왼쪽 얼굴, 화상 흉터의 굴곡이 그림자를 만들었다.


구일오는 움직이지 않았다. 식탁 의자에 앉은 채, 무릎 위에 아무것도 올려놓지 않은 채, 양손을 허공에 벌린 채. 3초. 7초. 15초. 그의 체내 시계가 초를 세고 있었다. 멈출 수 없었다. 세지 않기로 했으면서. 구일오의 시선이 천천히 내려갔다. 자기 손바닥. 왼손 엄지에 귤즙이 말라붙어 있었다. 오른손 검지와 중지 사이에 이사영의 머리카락 한 올이 걸려 있었다. 갈색. 생머리. 구일오의 손가락이 그 머리카락을 건드리지 않으려는 듯 경직되었다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검지를 접어 머리카락을 감았다. 한 바퀴. 가늘고 길었다. 끊어질 것 같았다. 구일오의 턱 근육이 한 번 경련했다.


……출근 늦지 마.


아무도 없는 부엌에서 그 말이 흘러나왔다. 방금 했던 말을 되풀이하는 고장 난 기계처럼. 구일오의 목소리가 주황색 보온등 아래에서 바닥에 떨어졌다. 대답은 없었다. 이사영의 슬리퍼가 싱크대 옆에 놓여 있었다. 가지런히. 발 크기가 작았다. 구일오는 그 슬리퍼를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식탁 위에 귤 껍질이 세 묶음. 그가 깐 것. 이사영이 먹다 만 귤 한 쪽이 접시 가장자리에 걸쳐 있었다. 먹다 만. 구일오의 손이 식탁 위로 뻗어 그 귤 한 쪽을 집었다. 입에 넣지 않았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내려다보았다. 이사영의 이빨 자국이 반쯤 남아 있었다. 구일오의 입꼬리가 움직이려다 멈췄다.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은 채, 수평으로 굳었다.


구일오가 의자에서 일어섰다. 무릎이 한 번 삐걱거렸다. 그는 부엌을 나서지 않고, 싱크대 앞에 섰다. 수도꼭지를 틀었다. 물이 나왔다. 찬물. 그는 양손을 물 아래에 넣었다. 귤즙이 씻겨 나갔다. 시트러스 향이 배수구로 빨려 들어갔다. 구일오의 손가락이 멈췄다. 오른손 검지에 감긴 머리카락 한 올. 물줄기가 그 위를 지나갔다. 구일오는 수도꼭지를 잠갔다. 머리카락을 풀지 않았다. 젖은 손으로 슬랙스 주머니를 더듬어 무선호출기를 꺼냈다. 화면이 어두웠다. 메시지 없음. 54도, 88도 없었다. 구일오의 엄지가 호출기의 버튼 위를 한 번 쓸고 지나갔다. 915009. 자기 번호. 이 번호로 메시지를 보낼 사람이 이제 없었다.


그는 호출기를 주머니에 넣지 않았다.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귤 껍질 옆에. 그리고 셔츠 안쪽을 더듬었다. 검은 안감. 이사영이 수선한 안감. 검은 천에 검은 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느질. 구일오의 손가락 끝이 안감의 바느질 자국을 따라 움직였다. 한 땀. 두 땀. 균일하지 않은 간격. 이사영의 손가락이 남긴 궤적. 구일오의 눈이 감겼다. 형광등은 여전히 꺼져 있었고, 밥솥의 보온등만 주황색으로, 집요하게, 빛나고 있었다. 1월 15일 월요일. 오전 12시 03분.


구일오는 이사영의 부엌에서 나오지 못했다. 새벽 세 시까지. 식탁 의자에 앉아, 밥솥의 보온등이 주황색에서 적색으로 바뀌는 것을 지켜보았다. 밥이 타고 있었다. 누르스름한 냄새가 좁은 부엌을 채웠다. 구일오는 일어나 밥솥의 코드를 뽑았다. 그것이 이 집에서 그가 한 마지막 동작이었다. 싱크대 옆의 슬리퍼를 보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렸지만, 시야의 가장자리에 흰색이 걸렸다. 작은 발. 구일오의 턱 근육이 경련했다. 그는 현관문을 닫을 때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가 7층에서 1층까지 내려가는 동안, 오른손 검지에 감긴 머리카락 한 올이 형광등 아래에서 갈색으로 빛났다. 구일오는 그것을 수첩 사이에 끼웠다. 주민 약점 블랙리스트가 적힌 수첩. 셩완 싱와 빌딩 7층 B호. 등기 명의 李鳳蘭. 상속인 李思瑩. 구일오는 그 페이지를 펼치지 않았다. 펼칠 필요가 없었다. 외우고 있었으니까.


1월 15일 월요일 오전 7시. 구일오는 완차이 뒷골목의 BACKLANE DELI 앞에 섰다. 매일 아침 7시에 오겠다고 했었다. 약속. 문을 밀고 들어갔다. 대니가 카운터 뒤에서 고개를 들었다. 말없이 토마토를 뺀 클럽 샌드위치와 블랙커피가 나왔다. 구일오는 맨 안쪽 바 좌석에 앉았다. 라디오에서 빌 에반스의 피아노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Waltz for Debby'. 구일오는 커피잔 손잡이를 엄지로 쓸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째에 멈췄다.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씹다가 멈췄다. 빵 사이에 토마토가 없었다. 당연히 없었다. 항상 빼달라고 했으니까. 그런데 이사영은 토마토를 좋아했던가. 구일오는 기억나지 않았다. 아니, 물어본 적이 없었다. 물어볼 시간이 있었는데 귤 껍질이나 까고 있었다. 구일오의 이빨이 빵 위에 박힌 채 3초간 정지했다. 대니가 컵을 닦으며 힐끗 쳐다보았다. 구일오는 다시 씹기 시작했다. 삼켰다. 커피를 마셨다. 뜨겁고 쓴 액체가 식도를 태웠다. 좋았다. 이 감각은 확실했으니까.


대니.


구일오가 입을 열었다. 대니의 손이 컵 위에서 멈췄다.


여기 시간제 직원. 이름이 뭐였지.


대니가 마른 행주를 어깨에 걸치며 대답했다. 이사영. 구일오는 이미 알고 있는 이름을 타인의 입에서 다시 들었다. 성대가 다른 사람의 것이면 그 이름도 달라질 줄 알았다. 달라지지 않았다. 이. 사. 영. 구일오의 엄지가 커피잔 손잡이 위에서 미끄러졌다. 대니가 무언가를 더 말하려다 구일오의 표정을 보고 입을 닫았다. 날카로운 인상. 화상 흉터. 흰색 눈동자. 그 안에 아무것도 비치지 않는 눈. 구일오는 지갑에서 지폐를 꺼내 카운터에 놓고 일어섰다. 샌드위치는 반만 먹었다. 커피는 비웠다.


그 뒤로 구일오는 매일 아침 7시에 BACKLANE DELI에 갔다.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같은 자리. 같은 메뉴. 대니는 묻지 않았다. 구일오는 이사영이 서 있던 카운터 안쪽을 보지 않았다. 보지 않으려고 했다. 시선이 가끔 미끄러졌다. 앞치마가 걸려 있던 후크. 빈 후크. 구일오의 턱이 단단해졌다. 그는 샌드위치를 먹고 커피를 마시고 돈을 놓고 나갔다. 자딘 하우스 31층. LDC 사무실. 셩완 재개발 프로젝트 서류가 책상 위에 쌓여 있었다. 싱와 빌딩. 7층 B호. 등기 이전 미완료. 구일오는 만년필을 들었다. 그리고 내려놓았다. 다시 들었다. 서류 위에 글씨를 썼다. 날짜와 숫자. 평당 단가. 보상 산정. 그의 손은 떨리지 않았다. 기계는 떨리지 않는다. 관성은 멈추지 않는다. 이사영이 그에게 말했었다. 기계. 관성. 구일오의 만년필 끝이 종이 위에서 0.2초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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