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간의 편지(Claude Opus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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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20 20:48

편지는 우편함에 있었다.


구일오의 손가락이 우편함의 금속 뚜껑을 열었을 때, 청구서 두 장과 LDC 내부 회람 사이에 낀 봉투 하나가 손끝에 걸렸다. 발신인 란에 적힌 글씨를 보는 순간 구일오의 손이 멈추었다. 멈춘 것이 아니라 굳었다. 팔뚝 안쪽의 근육이 먼저 반응했고, 손가락 관절이 봉투의 모서리를 구기며 하얗게 질렸다. 광동어로 쓰인 글씨. 삐뚤빼뚤하고, 획의 끝이 올라가는 버릇. 구일오는 그 필체를 알고 있었다. 그 글씨가 쓰인 쪽지를 재킷 안주머니에서 꺼내 본 횟수를 셀 수 있었다. 247번. 아니, 248번이었다. 어제 밤에 한 번 더 꺼냈으니까. 구일오는 우편함 앞에 서서 3분 17초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가 한 번 오르내리는 소리가 복도에 울렸고, 위층에서 누군가 수도꼭지를 트는 소리가 벽을 타고 내려왔다. 구일오의 턱 근육이 경련했다. 나머지 우편물은 바닥에 떨어졌다.


7층. 현관문을 닫고, 신발을 벗지 않은 채 거실까지 걸어갔다. 수조 옆. 토마토가 수면 가까이 올라와 있었다. 버섯은 바닥 구석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구일오는 소파에 앉지 않고 수조 앞 바닥에 주저앉아 봉투를 뜯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구일오는 자신의 손가락이 떨리는 것을 4년 전 이후로 본 적이 없었다. 시너 냄새가 나던 그날 이후로. 봉투 안에서 나온 것은 편지지 한 장이었다. 접힌 자국이 세 번. 이사영은 편지를 세 번 접는 습관이 있었다. 구일오는 그것을 몰랐다. 이사영이 편지를 쓰는 것을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러나 이사영이 금붕어 밥 봉지를 접을 때 세 번 접었던 것은 기억했다. 편지를 펼쳤다. 읽었다. 읽고 나서 구일오의 등이 수조의 유리벽에 기대졌다. 유리가 차가웠다. 등 뒤에서 토마토가 유리벽을 톡 건드리는 진동이 느껴졌다.


사후에서 편지를 보낸다. 일주일 동안 하루에 한 통씩 주고받을 수 있다.


구일오는 편지지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주광색 조명이 차갑게 내려앉아 있었다. 이 조명을 이사영은 싫어했다. 너무 밝고 차갑다고. 구일오는 바꾸지 않았다. 이사영이 죽고 나서도 바꾸지 않았다. 바꾸면 인정하는 것 같았다. 뭘 인정하는 건지는 구일오 자신도 정의하지 못했다. 구일오의 손이 재킷 안주머니를 더듬어 만년필을 꺼냈다. 수첩은 꺼내지 않았다. 수첩에는 주민 블랙리스트가 있었고, 그 사이에 이사영의 이름이 적힌 페이지가 있었고, 그 페이지는 찢어서 편지지 사이에 끼워 두었다. 구일오는 편지지를 뒤집어 뒷면의 여백에 쓰기 시작했다. 이사영이 보낸 종이 위에, 이사영에게 돌려보내는 글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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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날의 편지.


구일오의 만년필이 종이 위에 닿았다. 잉크가 번지지 않았다. 구일오의 글씨는 이사영의 것과 달랐다. 직선적이고, 획이 날카롭고, 줄 간격이 정확했다. 측량사의 손이었다.


이사영.
당신이 보낸 편지를 읽었습니다. 세 번 접혀 있었고, 금붕어 밥 봉지를 접던 방식과 같았습니다. 당신이 편지를 쓰는 것을 본 적은 없었는데, 알게 되었습니다.
사후라는 단어를 쓰셨는데 나는 그것을 믿지 않습니다. 믿지 않지만 답장을 씁니다. 모순이라는 건 압니다. 당신이라면 웃겠죠. 거짓말쟁이라고 또 부르겠죠.
토마토는 밥을 잘 먹고 있습니다. 버섯은 여전히 구석에 있고, 가끔 수조 바닥의 자갈 사이를 뒤집니다. 당신이 이름을 붙인 뒤로 나는 그 이름을 부릅니다. 아침마다. 소리 내서. 빈 거실에서 금붕어한테 이름을 부르는 남자가 된 겁니다.
구일오의 만년필이 종이 위에서 멈추지 않았다. 잉크가 섬유질 사이로 스며드는 미세한 소리가 고요한 거실에서 금붕어 수조의 기포 소리와 교차했다. 토마토가 수면 위로 입을 벌렸다 닫았다. 버섯은 여전히 자갈 사이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구일오의 등 뒤에서 수조 유리가 체온을 빨아들이고 있었고, 셔츠 뒤판이 축축하게 눌러붙었다. 구일오는 신경 쓰지 않았다. 글씨를 이어갔다.


당신이 싫어하던 주광색 조명을 아직 안 바꿨습니다. 바꾸면 당신이 이 거실에 없다는 걸 인정하는 것 같아서. 바보 같은 논리라는 건 압니다. 측량사가 이런 비논리적인 행동을 하면 건물이 무너집니다. 하지만 조명은 건물이 아니니까.물어볼 게 있습니다. 하루에 한 통이면 일주일이니까 일곱 통입니다. 일곱 통이면 충분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당신한테 하지 못한 말을 전부 쓰기에 일곱 장의 종이가 충분한지. 계산을 해봤는데, 안 됩니다. 숫자로 환원이 안 돼요. 당신에 관한 건 늘 그랬습니다.


구일오의 만년필 끝이 마침표를 찍고 멈추었다. 잉크 방울이 점 하나를 만들었고, 그 점이 종이 위에서 천천히 번졌다. 구일오는 그 점을 내려다보았다. 이사영의 왼쪽 쇄골에 있던 작은 점과 크기가 비슷했다. 구일오의 턱 근육이 한 번 경련했다. 그는 입술을 다물고 만년필을 내려놓았다가, 다시 집어들었다. 손가락 끝에 잉크가 묻어 있었다. 이사영의 머리카락을 만지던 손가락이었다.


한 가지 더. 당신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말이 뭐였는지 기억합니다. 나는 그 문장을 매일 밤 반복합니다. 소리 내서. 그러면 이 방이 조금 덜 넓어집니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그리고 당신이 물었던 거. 심장이 빠르게 뛰었냐고. 지금도 뜁니다. 64가 아니라 측정 불가입니다. 당신 필체를 보는 순간 숫자가 깨졌습니다. 측량사한테 숫자가 깨지면 끝인 거 아시죠. 끝났습니다. 당신이 죽은 날 끝났고, 이 편지를 받은 오늘 한 번 더 끝났습니다.


구일오가 만년필을 내려놓았다. 종이를 세 번 접었다. 이사영이 접던 방식 그대로. 처음 해보는 접기였다. 손가락이 종이의 모서리를 맞추는 데 두 번 실패했다. 세 번째에 겨우 맞았다. 구일오는 접힌 편지를 봉투에 넣고, 봉투 겉면에 수신인을 적으려다 멈추었다. 주소를 쓸 수 없었다. 사후의 주소는 없었다. 구일오는 봉투 위에 '이사영'이라고만 적었다. 세 글자. 획이 날카로웠지만, 마지막 획의 끝이 미세하게 올라가 있었다. 이사영의 필체가 아니라 구일오의 필체였는데, 끝이 올라간 것은 처음이었다.


토마토.


구일오가 수조를 향해 말했다. 토마토가 유리벽 가까이 다가와 꼬리지느러미를 한 번 흔들었다. 구일오의 입꼬리가 움직이려다 멈추었다. 웃는 법을 잊은 것이 아니었다. 이사영 앞에서만 웃었고, 이사영이 없으면 웃을 이유가 없었다.


밥 줄게. 기다려.


구일오가 바닥에서 일어섰다. 무릎이 뻣뻣했다. 얼마나 앉아 있었는지 몰랐다. 시간을 재지 않았다. 이사영이 살아 있었을 때는 모든 것을 쟀다. 맥박, 체온, 보폭, 호흡 간격. 이사영이 죽고 나서 구일오가 재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봉투를 우편함에 넣고 돌아오는 데 걸리는 시간. 오늘은 그것조차 재지 않기로 했다. 구일오는 봉투를 들고 현관으로 걸어갔다. 맨발이었다. 슬리퍼를 신지 않았다. 복도의 타일이 차가웠다. 이사영의 손처럼. 찬물로 세수한 뒤의 이사영의 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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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의 편지.


봉투는 다음 날 아침, 같은 우편함에 있었다. 구일오는 이번에는 우편함 앞에서 2분 41초 멈추었다. 줄어든 36초. 구일오는 그 차이를 알아차렸다. 3분 17초에서 2분 41초. 몸이 적응하고 있었다. 죽은 사람의 필체에 적응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구일오는 모르겠지만 손가락의 떨림이 어제보다 미세하게 줄었다는 것은 측정 가능한 사실이었다. 봉투를 뜯는 데 걸린 시간도 단축되었다. 어제는 7초, 오늘은 4초. 종이를 펼쳤다. 세 번 접힌 자국. 같은 방식. 같은 손. 구일오의 눈이 글씨를 따라 움직였고, 읽는 동안 호흡이 한 번 끊겼다. 수조 안에서 토마토가 유리벽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구일오는 읽기를 멈추지 않았다. 다 읽고 나서 편지지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어제와 같은 자리, 수조 옆 바닥에 앉아 만년필을 꺼냈다.


잉크가 종이에 닿기 전, 구일오의 시선이 수조 안을 향했다. 토마토가 수면 근처에서 입을 뻐끔거리고 있었다. 버섯은 자갈 위에 배를 깔고 지느러미만 느릿하게 흔들었다. 구일오는 금붕어 밥을 아직 주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사영이 살아 있었을 때, 밥 시간은 정확히 아침 6시 12분이었다. 이사영이 정한 시간이 아니라 이사영이 매일 그 시간에 수조 앞에 쪼그려 앉았기 때문에 구일오가 기록한 시간이었다. 이사영은 밥을 줄 때 항상


토마토, 버섯, 밥이야


하고 말했다. 구일오는 그 문장을 소리 내어 따라한 적이 없었다. 지금도 하지 않았다. 대신 밥 봉지를 집어 수조 위에 세 알을 떨어뜨렸다. 토마토 둘, 버섯 하나. 이사영이 하던 배분이었다.


버섯. 올라와.


구일오의 목소리가 빈 거실에 떨어졌다. 버섯은 올라오지 않았다. 구일오는 기다리지 않고 만년필을 종이에 대었다.


이사영.
둘째 날입니다. 당신의 편지를 읽었습니다. 어제보다 글씨가 조금 더 삐뚤어져 있었는데, 서두른 겁니까. 서두를 필요 없습니다. 나는 여기 있으니까. 여기밖에 없으니까.
당신이 물었으니 답합니다. 잘 먹고 있느냐고 했죠. 먹고 있습니다. 샌드위치 가게는 아직 갑니다. 대니가 아무 말 없이 토마토 뺀 클럽 샌드위치를 내놓고, 나는 아무 말 없이 먹습니다. 다른 건 변한 게 없는데 한 가지, 커피를 두 잔 시킵니다. 한 잔은 내 앞에, 한 잔은 맞은편에. 대니가 한번은 쳐다봤습니다. 아무 말 안 했습니다. 대니니까.
당신이 앉던 자리에 아무도 앉지 않습니다. 내가 그렇게 시킨 건 아닙니다. 그냥 아무도 안 앉습니다. 그 자리에 당신 냄새가 남아 있을 리 없는데. 비누 냄새. 귤 껍질. 당신은 항상 주머니에 귤 껍질을 넣고 다녔죠. 버릇이라고 했었죠. 나는 그 버릇을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수첩에 적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적었으면 지금 꺼내서 읽을 수 있었을 텐데. 후회라는 단어는 쓰지 않겠습니다. 측량사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다만 오차를 인정합니다. 내 오차는 당신을 충분히 기록하지 않은 것입니다.


구일오의 만년필이 멈추었다. 잉크가 마지막 획 끝에서 작은 물방울처럼 맺혔다. 구일오는 그것을 손가락으로 닦지 않았다. 번지게 두었다. 종이 위에서 잉크가 섬유질을 따라 퍼지는 모양이 수조 안에서 금붕어 밥이 물에 풀리는 모양과 비슷했다. 구일오의 왼쪽 얼굴, 화상 흉터가 있는 쪽이 미세하게 당겼다. 습도 때문이었다. 아니, 습도 때문이 아니었다. 구일오는 다시 만년필을 들었다.


하나 더. 당신 집. 셩완 싱와 빌딩 7층 B호. 등기 이전은 끝냈습니다. 당신이 죽기 전에 약속한 대로. 이사영 명의로.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습니다. 나는 열쇠를 가지고 있고, 가끔 갑니다. 가서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구일오는 편지의 마지막 문장을 쓰다가 멈추었다. 만년필 촉이 종이 위에서 0.3밀리미터쯤 떠 있었다. 쓰고 싶은 말이 있었다. 쓰면 안 되는 말이었다. 둘 사이의 구분이 이사영이 죽고 나서 사라졌다. 측량사의 직선이 무너진 자리에 남은 것은 굽은 문장뿐이었다. 구일오의 왼손이 종이의 왼쪽 모서리를 누르고 있었고, 화상 흉터가 있는 손등의 피부가 주광색 조명 아래에서 매끈하게 빛났다. 땀샘이 죽은 피부는 울지 못했다. 구일오는 그 사실이 가끔 편리하다고 생각했었다.


창문을 열면 맞은편 건물 벽이 보입니다. 당신도 알죠. 당신 집도 그랬으니까. 싱와 빌딩 7층 B호, 창문 열면 환기구 배관이랑 빨래줄. 당신은 그 빨래줄에 흰 원피스를 널었고, 나는 그 원피스가 바람에 흔들리는 각도를 쟀습니다. 약 12도.지금은 아니었다.
쓸모없는 측정이었습니다. 지금 내 창문 밖에는 아무것도 안 흔들립니다. 바람이 불어도.


만년필이 다시 움직였다. 잉크가 줄어들고 있었다. 구일오는 잉크 잔량을 확인하지 않았다. 이사영이 살아 있었을 때는 잉크 잔량을 주 단위로 체크했다. 업무용 습관이었다. 지금은 잉크가 마르면 마르는 대로 두었다. 편지가 끝나면 잉크도 끝나야 했다. 일곱 통. 일곱 통이 끝나면 만년필도 서랍에 넣을 생각이었다. 넣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출근하지 않았습니다. 병가를 냈습니다. LDC에 입사하고 처음입니다. 아프냐고 물으면, 아픕니다. 어디가 아프냐고 물으면, 모르겠습니다. 체온은 36.4도, 혈압은 정상 범위, 맥박은 72. 전부 정상입니다. 숫자는 정상인데 숫자 바깥이 고장났습니다. 당신이 보내준 호출기 메시지가 생각납니다. 54. 고장나지 말고요. 늦었습니다, 이사영. 이미 고장났습니다.


구일오의 턱 근육이 한 번 경련했다. 입을 다물었다가 열었다.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소리를 내려던 것이 아니었다. 입안이 말라 있었을 뿐이었다. 커피잔이 테이블 위에 있었다. 식은 블랙커피. 맞은편에 놓인 빈 잔은 치우지 않았다. 이사영의 잔이었다. 이사영은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구일오가 타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하고 인상을 찌푸리던 얼굴이 있었다. 구일오는 그 얼굴을 떠올리려 했고, 떠올렸고, 떠올린 순간 흉곽 안쪽이 수축했다. 늑골 사이 간격이 줄어드는 감각. 측정 가능하지 않은 통증이었다.


이사영.


구일오가 빈 거실을 향해 이름을 불렀다. 대답은 없었다. 토마토가 수조 안에서 방향을 바꿨다. 버섯은 자갈 위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구일오는 편지를 접었다. 세 번. 어제보다 정확했다. 손가락이 학습하고 있었다. 이사영의 접는 방식을 구일오의 손가락이 기억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봉투에 넣고 '이사영' 세 글자를 적었다. 오늘도 마지막 획의 끝이 올라갔다. 구일오는 그것을 알아차렸고, 고치지 않았다.


맨발로 현관을 나섰다. 복도 타일의 온도는 어제와 같았다. 14도. 구일오의 발바닥이 차가움을 흡수했고, 그 차가움이 발목을 타고 종아리까지 올라왔다. 우편함까지 걸어가는 동안 구일오는 숫자를 세지 않았다. 대신 이사영이 이 복도를 걸을 때 슬리퍼가 내던 소리를 떠올렸다. 찰싹, 찰싹. 작은 발. 운동화를 신어도 소리가 났다. 걸음이 가벼워서. 구일오는 우편함 앞에 섰다. 봉투를 넣었다. 뚜껑을 닫았다. 돌아섰다. 걸음을 세지 않았다. 문을 열고 들어와 수조 앞에 앉았다. 토마토가 유리벽 쪽으로 다가왔다. 구일오의 손가락이 유리 위에 닿았다. 토마토의 입이 손가락 끝을 향해 뻐끔거렸다.


내일 또 올 거야. 편지.


셋째 날이었다.


구일오는 새벽 다섯 시에 눈을 떴다. 알람이 울린 것이 아니었다. 몸이 그 시간에 깨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이사영의 편지가 도착하는 시간. 아직 확인하지 않았는데도 손가락 끝이 봉투의 질감을 미리 기억하고 있었다. 종이의 결. 접힌 자국의 깊이. 구일오는 천장을 보았다. 주광색 조명은 꺼져 있었고, 창 밖에서 들어오는 가로등 불빛이 천장에 사선을 그었다. 맞은편 건물 벽. 변한 것은 없었다. 변할 리가 없었다. 구일오는 이불을 걷고 일어났다. 침대 옆 서류 상자 위에 이사영이 수선해준 재킷이 걸려 있었다. 검은 안감에 검은 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느질. 구일오의 손가락이 안감 위를 한 번 훑었다. 실밥의 간격이 정확히 0.4센티미터였다. 이사영이 재봉을 배운 적이 있는지는 묻지 못했다. 묻지 않은 것들의 목록이 매일 길어졌다.


맨발로 복도를 걸었다. 타일 온도, 13도. 어제보다 1도 낮았다. 습도가 올랐기 때문이었다. 구일오의 발바닥이 차가움을 받아들였고, 그 감각이 무릎까지 올라오는 동안 우편함 앞에 섰다. 손을 뻗었다. 뚜껑을 열었다. 봉투가 있었다. 있었다. 구일오의 손가락이 봉투를 집는 데 걸린 시간, 2초. 어제보다 빨랐다. 떨림은 줄지 않았다. 줄지 않았는데 빨라진 것은 떨림에도 불구하고 손이 먼저 움직이기 때문이었다. 기다릴 수가 없었다. 측량사가 기다릴 수 없다는 것은 직업적 결함이었다. 구일오는 그 결함을 고치지 않았다.


수조 옆 바닥에 앉았다. 같은 자리. 등을 벽에 기댔다. 봉투를 뜯었다. 3초. 종이를 펼쳤다. 세 번 접힌 자국. 같은 방식. 같은 손. 이사영의 글씨가 눈에 들어왔고, 구일오는 읽기 시작했다. 첫 줄에서 호흡이 멈추었다. 두 번째 줄에서 풀렸다. 세 번째 줄에서 다시 멈추었다. 흉곽이 수축과 이완을 반복했다. 이사영의 글씨는 어제보다 조금 더 둥글어져 있었다. 삐뚤어진 것이 아니라 둥글어진 것이었다. 서두른 게 아니라 힘이 빠진 것이었다. 구일오는 그 차이를 알았다. 알고 싶지 않았지만 알았다. 측량사의 눈은 꺼지지 않았다.


다 읽었다. 편지를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토마토가 수조 안에서 구일오 쪽으로 헤엄쳐왔다. 유리벽에 입을 대고 뻐끔거렸다. 버섯은 여전히 자갈 위였다. 구일오의 시선이 버섯에게 멈추었다.


버섯. 밥 줄 테니까 올라와.


버섯이 지느러미를 한 번 흔들었다. 올라오지는 않았다. 구일오는 밥 봉지를 집어 토마토에게 두 알, 버섯 앞 수면에 한 알을 떨어뜨렸다. 이사영이 하던 배분. 구일오의 손가락이 수조 유리 위에 닿았다. 차가웠다. 이사영의 손가락이 이 유리 위에 닿았을 때의 온도는 몇 도였을까. 측정하지 못한 수치. 구일오는 만년필을 꺼냈다. 잉크 잔량을 확인하지 않았다. 종이를 꺼내 무릎 위에 놓았다. 촉이 종이에 닿았다.


이사영.
셋째 날입니다. 글씨가 둥글어졌습니다. 서두르지 마세요. 남은 날이 줄어드는 건 알지만, 줄어드는 속도를 당신이 조절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나도 조절할 수 없습니다. 할 수 있는 건 읽는 것뿐입니다. 그러니까 천천히 쓰세요. 글씨가 둥글면 힘이 빠진 겁니다. 당신 손가락에 힘이 없으면 나는.


구일오의 만년필이 멈추었다. '나는' 다음에 올 단어를 몰랐다. 아팠다? 측량사의 어휘가 아니었다. 걱정된다? 죽은 사람을 걱정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구일오는 '나는'을 지우지 않았다. 미완성 문장을 남겨두었다. 이사영이 읽으면 알 것이었다.


만년필 촉이 다시 종이 위를 긁었다. '나는' 뒤에 남겨둔 공백이 종이 위에서 숨을 쉬고 있었다. 구일오는 그 공백을 한 번 더 보았다. 채우지 않았다. 채울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채우면 거짓말이 될 단어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측량사에게 빈칸은 오차였다. 오차는 수정해야 했다. 그런데 이 빈칸은 수정하면 더 틀어졌다. 구일오의 턱 근육이 한 번 움직였다. 입을 다물고 다시 펜을 움직였다.


> 토마토가 요즘 유리벽 쪽으로 자주 옵니다. 내가 앉는 자리가 항상 같아서 학습한 겁니다. 금붕어의 기억력은 3개월입니다. 당신이 준 이름을 토마토가 기억하는 기간도 3개월입니다. 3개월 뒤에 토마토는 자기 이름을 잊겠지만, 나는 잊지 않을 겁니다. 버섯은 여전히 자갈 위입니다. 올라오지 않습니다. 당신이 밥을 줄 때는 올라왔습니까? 올라왔을 것 같습니다. 당신 손가락은 나보다 작고 따뜻하니까. 수온에 영향을 주는 범위가 달랐을 겁니다.


구일오는 거기서 한 번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수조를 보았다. 토마토가 수면 가까이에서 유영하고 있었다. 꼬리지느러미가 물결을 만들었고, 그 물결이 수조 벽에 부딪혀 되돌아왔다. 작은 파동. 측정 가능한 진폭이었지만, 구일오는 측정하지 않았다. 대신 이사영이 이 수조 앞에 쪼그려 앉아


토마토, 밥이야


하고 말했을 장면을 상상했다. 상상이 아니었다. 1월 6일. 이사영은 실제로 그렇게 했다. 구일오의 거실 바닥에 앉아서, 운동화 끈도 안 풀고, 수조에 얼굴을 갖다 대고 금붕어한테 이름을 붙여줬다. 토마토. 버섯. 당신이 싫어하는 것의 이름을 왜 금붕어한테 붙이냐고 물었더니 이사영은 웃었다. 그 웃음의 곡률을 구일오는 기억했다. 입꼬리가 올라가는 각도, 약 15도. 눈이 가늘어지는 비율. 코끝이 살짝 찡그러지는 미세한 주름. 전부 기억했다. 기억이 정확할수록 흉곽 안쪽의 수축이 깊어졌다.


이사영.


또 불렀다. 세 번째 날의 두 번째 호명. 대답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 부르는 이름은 기도와 비슷했다. 구일오는 기도를 한 적이 없었다. 신을 믿지 않았다. 숫자를 믿었다. 숫자가 무너진 자리에서 입 밖으로 나오는 것이 이름뿐이라면, 그것은 기도가 아니라 측정이었다. 이사영이라는 이름을 발음하는 데 걸리는 시간, 0.8초. 그 0.8초 동안 구일오의 성대가 진동하고, 공기가 움직이고, 빈 거실의 벽에 부딪혀 사라졌다. 흡수율 100퍼센트. 돌아오는 것은 없었다.


어제 샌드위치 가게에 갔습니다. 대니가 커피 두 잔을 내놓았습니다. 내가 시킨 건 한 잔이었습니다. 대니는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나도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두 잔 다 마셨습니다. 당신 거라서 마신 게 아닙니다. 식으면 버려야 하니까 마신 겁니다. 커피를 낭비하는 건 비합리적이니까. 이건 거짓말입니다. 당신도 알겠죠. 나는 거짓말을 잘 하는 사람이었는데, 당신한테는 잘 안 됩니다. 죽고 나서도.


구일오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웃음이 아니었다. 웃음의 잔해였다. 이사영이 살아 있었을 때, 이사영 앞에서 웃었다. 처음에는 의도적이었다. 업무상 필요한 표정 관리.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의도 없이 웃고 있었다. 이사영이



하고 커피잔을 밀어놓을 때. 이사영이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등을 올려다볼 때. 이사영의 슬리퍼가 찰싹찰싹 소리를 낼 때. 구일오의 얼굴 근육이 이사영의 존재에 반응하는 방식은 측량 불가능했다. 지금, 이사영이 없는 거실에서 구일오의 얼굴은 움직이지 않았다. 왼쪽의 화상 흉터가 주광색 조명 아래에서 매끄럽게 빛났다.


만년필 촉이 종이 위에서 멈춘 채 잉크가 번졌다. 작은 점 하나. 구일오는 그 점을 지우지 않았다. 이사영이라면 그 점을 보고 웃었을 것이다. '써, 여기 잉크 묻었어.' 그런 말투. 그 말투의 온도. 구일오의 손가락이 종이 위의 잉크 점을 한 번 스쳤다. 마르지 않은 잉크가 검지 끝에 묻었다. 검은색. 이사영의 머리카락 색과 달랐다. 이사영의 머리카락은 갈색이었다. 햇빛 아래에서는 밤색에 가까웠고, 형광등 아래에서는 어두운 갈색이었다. 구일오는 두 가지 색을 모두 기억했다. 기억의 해상도가 날이 갈수록 선명해지는 것은 비정상이었다. 보통 기억은 흐려졌다. 구일오의 기억은 매일 더 날카로워졌다. 이사영의 쇄골 위 점의 위치, 왼쪽에서 2.3센티미터. 이사영의 손가락 마디의 굵기. 이사영이 멍하니 있을 때 입술을 만지는 손가락의 궤적. 전부 선명했다. 선명한 것들이 없는 거실에서, 구일오의 눈동자만 하얗게 빛났다.


오늘 병가 이틀째입니다. 사무실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받지 않았습니다. 호출기에 숫자가 쌓이고 있습니다. 업무 코드들입니다. 읽으면 어떤 건물의 어떤 층의 어떤 세입자가 아직 합의하지 않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읽지 않았습니다. 처음입니다. 숫자를 읽지 않은 것이. 당신이 보낸 숫자는 전부 읽었습니다. 54. 88. 7458. 그 숫자들은 지금도 외우고 있습니다. 호출기 액정이 꺼져도 남아 있는 숫자들입니다.


구일오는 거기서 펜을 내려놓고 고개를 뒤로 젖혔다. 벽에 뒤통수가 닿았다. 둔탁한 소리. 통증은 없었다. 통증이 있어야 할 자리에 다른 것이 들어차 있었다. 이름을 붙일 수 없는 것. 구일오는 숫자로 환원할 수 없는 감각을 혐오했었다. 4년 전까지는. 아니, 열흘 전까지는. 이사영을 만나기 전까지 구일오의 세계는 깔끔했다. 평당 단가, 보상금 산정, 이주 기한, 건물 부식률. 전부 숫자였고,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이사영은 숫자가 아니었다. 이사영은 귤 냄새가 났고, 비누 향이 났고, 기침을 했고, 슬리퍼를 질질 끌었고, 금붕어한테 이름을 붙여줬고, 횡단보도에서 팔을 잡았다. 이사영은 구일오의 측량 체계 바깥에 있었다. 바깥에 있는 것은 오차였다. 오차는 제거해야 했다. 그런데 구일오는 그 오차를 제거하지 않았다. 오차가 웃을 때 같이 웃었다. 오차의 손등에 입술을 대었다. 오차의 몸 위에서 오차의 이름을 불렀다.


이사영.


세 번째. 오늘의 세 번째 호명이었다. 토마토가 수조 안에서 방향을 틀었다. 구일오의 목소리에 반응하는 것인지, 물의 진동에 반응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구일오는 알 수 없는 것을 싫어했다. 그런데 지금, 알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한 거실에 앉아 있었다. 이사영이 왜 자신에게 편지를 보내는지 알 수 없었다. 죽은 사람이 어떻게 편지를 쓰는지 알 수 없었다. 이사영의 글씨가 왜 둥글어지는지, 그것이 힘이 빠지는 것이라면 저쪽에서도 힘이 빠지는 것인지, 저쪽이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구일오는 만년필을 다시 집었다. 잉크가 촉 끝에서 한 방울 맺혔다가 종이 위로 떨어졌다. 또 점 하나. 구일오는 그 점 옆에 글씨를 이었다.


셩완 싱와 빌딩 7층 B호에 다녀왔습니다. 등기 서류를 놓고 왔습니다. 당신 이름으로 된 서류. 집은 비어 있었습니다. 당신 슬리퍼가 현관에 있었습니다. 왼쪽이 약간 닳아 있었습니다. 왼발에 체중을 더 싣는 보행 패턴. 내가 측정한 것 중에 가장 쓸모없는 데이터입니다. 그런데 그 슬리퍼를 치우지 못했습니다. 현관에 그대로 두고 왔습니다. 다음에 가면 또 있을 겁니다. 있어야 합니다.


구일오는 편지를 접었다. 이사영이 접던 방식대로. 세로로 한 번, 가로로 한 번. 모서리가 정확히 맞지 않았다. 0.3밀리미터의 오차. 이사영이 접으면 그 오차가 없었다. 구일오의 손가락은 측량사의 손가락이었고, 이사영의 손가락은 그냥 이사영의 손가락이었는데, 종이를 접는 데는 이사영 쪽이 더 정확했다. 구일오는 그 사실을 인정했다. 인정하는 것이 쉬워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거부할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봉투 앞면에 '이사영'이라고 적었다. 세 글자. 잉크가 종이에 스며드는 시간, 1.2초. 구일오의 손끝에서 미세한 떨림이 올라왔다가 사라졌다.


맨발이 마루를 밟았다. 차가웠다. 1월의 새벽, 사이잉푼의 노후 아파트 바닥 온도는 대략 14도. 구일오는 슬리퍼를 신지 않았다. 이사영의 슬리퍼는 셩완 싱와 빌딩 현관에 있었고, 구일오의 슬리퍼는 침실 어딘가에 있었다. 찾지 않았다. 발바닥에 전해지는 차가움이 지금 유일하게 확실한 감각이었다. 복도로 나섰다. 형광등이 깜빡였다. 이 건물의 복도 형광등은 3초 간격으로 깜빡이는 결함이 있었다. 6개월째 수리되지 않았다. 구일오는 그 3초의 명멸 사이를 걸었다. 우편함까지 14보. 이사영의 보폭이었으면 18보였을 것이다. 구일오는 그 차이를 계산하고 나서 자신이 왜 그런 계산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늘어나고 있었다. 측량사에게 그것은 직업적 치명상이었다.


우편함 앞에 섰다. 금속 뚜껑을 열었다. 손가락이 멈췄다.


비어 있었다.


구일오의 눈동자가 우편함의 어둠 속을 훑었다. 금속 바닥. 먼지. 아무것도 없었다. 어제는 있었다. 그제도 있었다. 이사영의 둥근 글씨가 적힌 봉투가, 매일 아침 이 안에 있었다. 구일오의 손가락이 우편함 안쪽 벽을 더듬었다. 찬 금속. 종이의 모서리 같은 것은 없었다. 손가락이 빈 공간을 한 번 더 쓸었다. 없었다. 구일오의 턱 근육이 한 번 경련했다. 그리고 멈췄다. 호흡이 한 박자 늦었다. 들이마셔야 할 타이밍에 들이마시지 못했다. 0.4초의 지연. 그 0.4초 동안 구일오의 흉곽이 수축했다가 풀리지 않았다.


…….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이사영의 이름을 부르려고 했는데, 성대가 움직이지 않았다. 구일오는 빈 우편함을 닫지 않은 채 서 있었다. 형광등이 꺼졌다가 켜졌다. 3초. 구일오의 그림자가 복도 벽 위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왼쪽 얼굴의 화상 흉터가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번들거렸다. 구일오는 그 흉터를 만지지 않았다. 대신 봉투를 들어올렸다. 자신이 쓴 편지. '이사영'이라고 적힌 봉투. 넣을 곳이 있어야 넣을 수 있었다. 받는 사람이 있어야 편지였다. 받는 사람이 가져가지 않으면 그것은 편지가 아니라 종이였다.


구일오는 봉투를 우편함 안에 넣었다. 금속 뚜껑을 닫았다. 딸깍, 하는 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14보를 되돌아 걸었다. 현관문을 닫았다. 거실의 주광색 조명이 그를 맞았다. 차갑고 밝은 빛. 수조 안에서 토마토가 유영하고 있었다. 꼬리지느러미의 각도, 약 30도. 버섯은 자갈 위에 가만히 있었다. 구일오는 수조 앞에 쭈그려 앉았다. 이사영이 앉던 자세와 비슷했다. 무릎을 세우고, 팔을 무릎 위에 올리고, 수조 유리에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토마토.


금붕어가 방향을 틀었다. 구일오 쪽으로. 학습된 반응이었다. 구일오의 목소리 진동, 혹은 유리 앞에 나타나는 그림자. 토마토는 그것에 반응했다. 3개월. 금붕어의 기억력. 이사영이 이 이름을 붙여준 것은 1월 6일이었다. 3개월 뒤면 4월. 4월 2일은 이사영의 생일이었다.


4월 2일. 구일오의 입술이 소리 없이 움직였다. 숫자를 세는 버릇이 다시 돌아왔다. 1월 10일에서 4월 2일까지, 82일. 이사영이 살아 있었다면 82일 뒤에 서른이 되었을 것이다. 구일오는 그 숫자를 머릿속에서 지우려 했으나 지워지지 않았다. 숫자는 언제나 그의 편이었다. 숫자만이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82라는 숫자가 그의 흉곽 안쪽을 긁었다. 날카로운 것이 안에서 바깥으로 밀어내는 감각. 구일오는 수조 유리에 이마를 대었다. 차가웠다. 유리의 표면 온도, 대략 16도. 수조 안의 수온, 22도. 토마토의 꼬리지느러미가 구일오의 이마 바로 앞에서 한 번 흔들렸다. 유리 한 장 사이. 0.4센티미터의 거리.


생일에 뭘 좋아했습니까.


구일오는 금붕어에게 물었다. 토마토는 당연히 대답하지 않았다. 입을 뻐끔거리며 수면 쪽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왔다. 먹이를 기대하는 패턴이었다. 구일오는 6시 12분이 아직 되지 않은 것을 알았다. 이사영이 정한 시간. 이사영이 정한 규칙. 구일오는 그 규칙을 어기지 않았다. LDC의 업무 코드는 이틀째 읽지 않으면서, 죽은 여자가 정한 금붕어 밥 시간은 초 단위로 지키고 있었다. 구일오는 그 모순을 인지했다. 인지하고도 고치지 않았다. 고칠 수 없었다.


구일오의 시선이 수조에서 떨어져 거실 바닥 위의 종이들을 훑었다. 이사영의 편지 네 통. 전부 펼쳐져 있었다. 접힌 자국이 선명한 종이들이 마루 위에 나란히 놓여 있었다. 구일오가 놓은 것이었다. 순서대로. 첫 번째 편지부터 네 번째 편지까지. 글씨가 변하는 과정이 보였다. 처음에는 또박또박했다. 힘이 들어간 획. 이사영답지 않게 정돈된 글씨. 네 번째에 이르면 획이 둥글어졌다. 힘이 빠진 것이다. 구일오는 그것을 알았다. 알고 나서 눈을 감지 못했다. 다섯 번째는 오지 않았다. 우편함은 비어 있었다. 일곱 통이라고 했다. 이사영이 그렇게 썼다. 사후에서 일주일, 하루 한 통. 그런데 네 통 뒤에 우편함이 비었다.


구일오의 손가락이 네 번째 편지의 모서리를 집었다. 종이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손가락의 떨림이 아니었다. 새벽바람이 창틈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이 건물의 창문 기밀성, 0.3밀리미터의 틈. 구일오는 그렇게 판단했다. 그렇게 판단해야 했다. 손가락이 떨리는 것은 인정할 수 없었다. 측량사의 손가락은 떨리지 않았다. 구일오의 손가락은 떨리지 않았다. 이사영의 이름을 봉투에 쓸 때도, 이사영의 몸 위에서 쇄골의 점을 짚을 때도, 이사영의 머리카락을 턱에 댈 때도. 한 번도.


……다섯 번째.


구일오가 중얼거렸다. 목소리가 거실 벽에 부딪혀 돌아왔다. 주광색 조명 아래에서 그의 흰 눈동자가 편지들을 내려다보았다. 토마토가 수조 안에서 자갈 위를 스쳤다. 버섯은 움직이지 않았다. 시계가 5시 57분을 가리켰다. 6시 12분까지 15분. 구일오는 일어서지 않았다. 마루 위에 앉은 채, 맨발의 발가락이 차가운 바닥을 움켜쥐었다. 이사영의 슬리퍼가 셩완 싱와 빌딩 현관에 있었다. 왼쪽이 닳은 슬리퍼. 구일오는 그 슬리퍼를 가져올까 생각했다. 생각하고 나서 자신의 사고 패턴이 비정상적이라는 것을 인지했다. 죽은 사람의 슬리퍼를 가져와서 현관에 놓는 것. 그것은 구일오가 혐오하던 종류의 행동이었다.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이고, 감상적인. 구일오는 그 세 단어를 머릿속에 나열했다. 그리고 내일 아침, 셩완에 들를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슬리퍼를 가지러.


이사영.


네 번째. 오늘의 네 번째 호명.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우편함도 비어 있었다. 시계 초침이 한 바퀴를 돌았다. 6시 3분. 구일오는 마루 위에 앉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네 통의 편지가 바닥에 나란히 펼쳐져 있었고, 주광색 조명이 종이 위의 잉크를 하얗게 씻어내듯 비추고 있었다. 다섯 번째가 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의 두개골 안쪽에서 숫자처럼 돌았다. 일곱 통. 이사영이 그렇게 썼다. 넷에서 멈출 이유가 없었다. 이사영은 약속을 어기는 종류의 사람이 아니었다. 이사영은 국수집에 5분 일찍 출근하는 사람이었고, 금붕어 밥을 6시 12분에 주겠다고 하면 6시 12분에 주는 사람이었고, 매일 뽀뽀를 하자고 하면 매일 하는 사람이었다. 구일오는 그 패턴을 알았다. 패턴이 깨졌다. 패턴이 깨지면 측량사는 원인을 찾아야 했다. 구일오의 턱 근육이 한 번 경련했다.


일어섰다. 무릎이 뻣뻣했다. 얼마나 앉아 있었는지 계산했다. 28분. 28분 동안 마루 바닥 위에서 금붕어와 편지와 빈 우편함의 잔상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구일오는 현관 쪽으로 걸었다. 맨발이 마루를 때리는 소리가 거실에 울렸다. 구두가 현관에 놓여 있었다. 양말은 침실 어딘가에 있었다. 구일오는 양말을 찾지 않았다. 맨발에 구두를 신었다. 가죽 안감이 발등에 닿는 감촉이 차갑고 낯설었다. 갈색 가죽 자켓을 집어들었다. 이사영이 안감을 수선해준 자켓. 검은 안감에 검은 실. 보이지 않는 바느질. 이사영의 손가락이 지나간 자리를 구일오의 손가락이 한 번 쓸었다. 실밥의 촉감이 손끝에 남았다. 고르고, 단단하고, 이사영다웠다.


……셩완.


구일오가 중얼거렸다. 목적지를 입 밖에 꺼내야 발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현관문을 열었다. 복도의 형광등이 여전히 3초 간격으로 깜빡이고 있었다. 구일오는 우편함 앞을 지나갔다. 멈추지 않았다. 이미 확인했다. 비어 있었다. 두 번 확인하는 것은 측량사가 아니라 불안한 사람이 하는 행동이었다. 구일오는 불안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게 판단했다. 판단과 사실 사이의 거리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인지하지 못했다. 계단을 내려갔다.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았다. 7층에서 1층까지, 98개의 계단. 구일오의 보폭으로 98개. 이사영의 보폭이었으면 112개. 또 그 계산을 하고 있었다. 구일오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일그러졌다. 웃음이 아니었다. 웃음의 시체 같은 것이었다.


새벽 공기가 얼굴을 때렸다. 1월의 사이잉푼. 습기를 머금은 찬 바람이 데보 로드를 따라 불어왔다. 구일오의 왼쪽 얼굴, 화상 흉터 위로 바람이 지나갔다. 땀샘이 죽은 피부는 추위를 다르게 감지했다. 타는 듯한 당김. 구일오는 선글라스를 꺼내지 않았다. 새벽 6시에 선글라스를 쓰는 것은 미친 사람이거나 삼합회였다. 둘 다 아니었다. 아직은. 발걸음이 셩완 쪽을 향했다. MTR을 타면 두 정거장. 걸으면 20분. 구일오는 걸었다. 이사영이 걸었을 길이었다. BACKLANE DELI에서 집까지, 이사영은 이 길을 매일 걸었다. 구일오는 그 경로를 알았다. 이사영의 동선을 파악한 것은 처음에는 업무였다. 셩완 싱와 빌딩 7층 B호, 이주 대상자 이사영. 그 이름이 서류 위의 활자에서 봉투 위의 필기체로 바뀌기까지 열흘이 걸렸다. 열흘. 구일오의 인생에서 가장 짧고 가장 긴 열흘.


내일도 쓴다고 했는데.


구일오가 걸으며 내뱉었다. 아무에게도 하지 않는 말이었다. 토마토에게 한 약속이었다. 내일도 편지를 쓰겠다고. 그런데 받는 사람의 편지가 먼저 멈추면, 보내는 사람의 편지는 무엇이 되는 것인지. 구일오는 그 질문에 답을 내리지 못했다. 숫자로 환원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셩완의 새벽은 소금기를 머금고 있었다. 항구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좁은 골목 사이를 훑고 지나갔고, 아직 열리지 않은 건어물 가게의 철문 아래로 생선 비린내가 스며 나왔다. 구일오는 싱와 빌딩 앞에 섰다. 7층. 올려다보았다. 창문은 어두웠다. 당연히 어두웠다. 그 안에 불을 켤 사람이 없었다. 구일오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올려다보는 자신의 목 각도를 측정했다. 약 35도. 이사영이 살아 있었을 때, 이 각도로 올려다본 적이 있었다. 1월 8일 자정, 국수집에서 데리고 온 날. 이사영이


다 왔다


고 말하며 건물을 가리켰을 때. 그때의 각도와 지금의 각도는 같았다. 35도. 그런데 목이 아팠다. 같은 각도인데 다른 무게가 걸려 있었다.


현관 입구의 철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이 건물의 보안 수준, 측정 불필요. 구일오가 직접 보고서에 '노후 건물, 보안 시설 부재'라고 적은 적이 있었다. 자신의 글씨였다. 만년필로 쓴 각진 획. 그 보고서가 이사영의 집을 철거 대상으로 분류한 서류 뭉치의 14페이지에 끼워져 있었다. 구일오는 철문을 밀었다. 경첩이 삐걱거렸다. 로비의 형광등 하나가 죽어 있었고, 나머지 하나가 누런 빛을 흘렸다. 우편함이 벽면에 줄지어 박혀 있었다. 7층 B호. 구일오의 시선이 거기서 멈추었다. 손이 먼저 움직였다. 뚜껑을 열었다. 안쪽은 먼지와 습기 냄새뿐이었다. 비어 있었다. 다섯 번째 편지는 없었다.


……없어.


구일오의 목소리가 로비 바닥에 떨어졌다. 타일 위에 부딪혀 사라졌다. 그는 우편함 뚜껑을 닫지 않은 채 계단을 올랐다. 엘리베이터는 고장이었다. 이 건물의 엘리베이터가 작동하는 날이 한 달에 며칠이나 되는지 구일오는 알고 있었다. 평균 11일. 나머지 19일은 철창문 앞에 '수리 중'이라는 종이가 테이프로 붙어 있었다. 이사영은 그 계단을 매일 올랐다. 7층까지. 폐가 좋지 않은 몸으로. 구일오의 턱 근육이 한 번 경련했다. 계단을 오를 때마다 콘크리트 벽에서 습기가 배어 나왔다. 3층과 4층 사이의 벽에 금이 가 있었다. 구일오는 그 균열의 폭을 알았다. 1.2밀리미터. 지난달 측정값. 지금은 더 벌어졌을 것이다. 측량사의 눈이 자동으로 읽었지만, 손은 수첩을 꺼내지 않았다. 기록할 이유가 없었다. 이 건물은 철거될 것이었다. 이사영이 없는 이 건물은.


7층. 복도. B호 앞. 구일오의 구두가 멈추었다. 문 아래 틈으로 차가운 공기가 새어 나왔다. 이사영이 환기를 좋아했다. 창문을 열어두는 습관. 구일오는 문고리에 손을 얹었다. 잠겨 있었다. 열쇠는 없었다. 이사영의 열쇠는 이사영과 함께 사라졌다. 구일오는 문고리를 잡은 채 3초 동안 서 있었다. 3초. 그가 이사영의 어깨를 잡고 자신의 턱을 이사영의 머리카락에 댔을 때도 3초였다. 같은 길이의 시간이 전혀 다른 온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때의 3초에는 비누 향과 체온이 있었다. 지금의 3초에는 콘크리트 먼지와 녹슨 금속 냄새뿐이었다.


구일오의 시선이 문 아래로 내려갔다. 현관 앞. 슬리퍼. 이사영의 슬리퍼가 거기 있었다. 왼쪽이 닳은 슬리퍼. 문 바깥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구일오는 쪼그려 앉았다. 갈색 가죽 자켓의 안감이 접혔다. 이사영이 수선한 검은 실이 그의 갈비뼈 위에서 눌렸다. 손가락이 슬리퍼의 닳은 왼쪽 바닥을 짚었다. 고무가 얇아진 부분의 두께, 대략 2밀리미터. 이사영의 체중이 왼발에 더 실렸다는 뜻이었다. 걸을 때 왼쪽으로 미세하게 기울어지는 보행 패턴. 구일오는 그것을 알았다.


구일오의 손가락이 슬리퍼의 닳은 고무 위에 멈춰 있었다. 2밀리미터. 그 숫자가 손끝에서 두개골 안쪽으로 올라가 박혔다. 이사영의 왼발이 지면을 밟을 때마다 0.01밀리미터씩 깎여나갔을 것이었다. 구일오는 그 속도를 계산할 수 있었다. 하루 평균 보행량, BACKLANE DELI에서 싱와 빌딩까지의 거리, 국수집까지의 거리, 계단 112보. 전부 숫자였다. 숫자는 대답을 해주었다. 이사영은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구일오의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떨림의 진폭, 약 0.5밀리미터. 그것도 측정했다. 측정하는 동안에는 떨리지 않는 것처럼 느낄 수 있었다. 

그때 아래층에서 소리가 올라왔다. 철문 경첩의 삐걱거림. 누군가 건물에 들어온 소리였다. 구일오의 등이 굳었다. 귀가 복도 끝 계단통 쪽을 향해 기울었다. 발소리가 아니었다. 발소리가 올라오기에는 너무 빨랐다. 대신 들린 것은 우편함 뚜껑이 열리고 닫히는 금속음이었다. 짧고, 건조하고, 한 번. 그리고 다시 철문이 닫혔다. 구일오는 쪼그린 자세 그대로 얼어붙었다. 심장이 갈비뼈를 때리는 횟수를 세었다. 분당 94회. 평소보다 22회 빠른 수치였다. 구일오는 슬리퍼에서 손을 뗐다. 천천히 일어섰다. 무릎 관절이 소리를 냈다. 복도의 형광등이 한 번 깜빡였고, 그의 그림자가 B호 문짝 위에서 흔들렸다.


계단을 내려갔다. 7층에서 1층까지. 98보가 아니었다. 뛰었기 때문이었다. 구두 밑창이 콘크리트 계단을 때릴 때마다 맨발의 발뒤꿈치에 충격이 올라왔다. 3층과 4층 사이의 균열을 지나쳤다. 1.2밀리미터. 보지 않았다. 1층 로비에 도착했을 때 구일오의 호흡은 고르지 않았다. 눈이 우편함 벽면으로 갔다. 7층 B호. 뚜껑이 닫혀 있었다. 아까 자신이 열어두고 간 뚜껑이. 누군가가 닫은 것이었다. 구일오의 손이 뚜껑을 열었다. 손가락 끝에 힘이 들어갔다. 녹슨 금속이 피부를 긁었다.


안에 봉투가 있었다.


흰 봉투. 이사영의 봉투가 아니었다. 이사영은 가게에서 가져온 갈색 크라프트지 봉투를 썼다. 이것은 흰색이었다. 그런데 글씨는 이사영의 것이었다. 둥근 획. 힘이 빠진 것이 아니라 원래 둥근 글씨. 구일오는 그 차이를 알았다. 이사영의 글씨가 둥글어진 것은 피로 때문이었고, 이사영의 글씨가 원래 둥근 것은 이사영이기 때문이었다. 봉투 위에 적힌 이름. '구일오'. 세 글자. 이사영이 쓴 '구일오'. 구일오는 봉투를 집어들었다. 무게, 거의 없었다. 종이 한 장. 봉투의 풀칠이 마르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착각이었다. 착각이어야 했다. 구일오는 로비 바닥에 주저앉았다. 타일이 차가웠다. 슬랙스 뒤가 먼지에 닿았다. 상관없었다.


봉투를 뜯었다. 손가락이 종이를 찢지 않으려고 애썼다. 이사영의 편지를 찢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누가 허용하지 않는 것인지는 몰랐다. 자신이었다. 접힌 편지지를 펼쳤다. 이사영이 접던 방식이었다. 오차 없이. 0밀리미터. 구일오의 눈이 첫 줄을 읽었다. 읽는 동안 형광등이 한 번 깜빡였다. 누런 빛이 종이 위에 떨어졌다가 사라졌다가 다시 떨어졌다. 구일오의 입술이 움직였다.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글자를 따라 입술이 움직이고 있었다. 이사영의 문장을 자신의 입으로 발음하는 것. 그것이 읽는 것인지, 기도인지, 측정인지 구일오는 구분하지 못했다. 턱 근육이 경련했다. 한 번이 아니었다. 계속이었다. 구일오의 왼쪽 얼굴, 화상 흉터 위로 형광등 빛이 떨어졌다. 

편지지 위에 이사영의 글씨가 있었다. 둥근 획. 'ㅇ'의 원이 완벽했다. 살아 있을 때 이사영이 쓴 글씨에는 미세한 떨림이 있었다. 피로가 손끝에 실리면 획의 끝이 0.2밀리미터쯤 흘러내렸다. 이 글씨에는 떨림이 없었다. 힘이 빠진 것도 아니고, 힘이 들어간 것도 아니었다. 그냥 이사영이었다. 이사영이 이사영일 때의 글씨. 구일오의 눈동자가 첫 줄 위에서 멈추었다. 형광등이 다시 깜빡였고, 누런 빛이 종이 위의 잉크를 한 번 삼켰다가 뱉었다. 잉크 색이 달랐다. 이사영이 쓰던 볼펜의 파란색이 아니었다. 검은색이었다. 구일오의 만년필과 같은 색이었다. 그런데 필압은 이사영의 것이었다. 가볍고, 둥글고, 글자 사이의 간격이 숨을 쉬듯 고르게 벌어져 있었다.


구일오의 입술이 글자를 따라 움직였다.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성대가 거부하고 있었다. 이사영의 문장을 자신의 목소리로 발음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것 같았다. 누가 허용하지 않는 것인지. 이번에도 자신이었다. 편지의 내용은 짧았다. 이사영은 원래 긴 글을 쓰지 않았다. 네 통의 편지도 전부 한 장이었다. 이사영은 많은 말을 짧은 문장 안에 구겨 넣는 사람이었다. 귤을 까듯이. 껍질을 벗기면 안에 있는 것은 항상 단순했다. 단순하고 달았다. 구일오는 편지를 읽었다. 한 번. 그리고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읽었다. 두 번째 읽을 때 턱 근육의 경련이 멈추었다. 경련이 멈춘 것이 아니라 턱 전체가 풀려버린 것이었다. 입이 반쯤 벌어졌다. 그의 표정 근육 조절 능력이 항복한 순간이었다.


……이사영.


이름을 불렀다. 로비 타일 위로 그 이름이 떨어졌다. 이번에는 사라지지 않았다. 벽에 부딪혀 돌아왔다. 싱와 빌딩의 좁은 로비가 그 이름을 한 번 반사시켰고, 구일오의 귀가 자신의 목소리를 들었다. 자신이 혐오하는 목소리였다. 통제할 수 없는 목소리. 떨리고, 갈라지고, 끝이 올라가는 목소리. 질문처럼 들렸다. 이사영? 여기 있어? 구일오는 편지지를 가슴 쪽으로 가져갔다. 자켓 안감의 검은 실이 종이 모서리에 닿았다. 이사영이 꿰맨 실이 이사영이 쓴 글자에 닿는 것. 그 접촉점의 의미를 구일오는 측정할 수 없었다. 숫자가 아니었다. 숫자로 환원되지 않는 것이 또 하나 늘었다. 구일오의 흰 눈동자에 수분이 차올랐다. 눈물이 아니었다. 눈물이라고 인정하면 측정해야 했다. 부피, 염분 농도, 낙하 속도. 그런 것을 계산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이사영의 글씨를 보고 싶었다.


……편지가 왔어.


아무에게도 하지 않는 말이었다. 로비에는 자신밖에 없었다. 우편함의 녹슨 금속 냄새와 타일의 냉기와 먼 곳에서 들려오는 항구의 경적 소리뿐이었다. 구일오는 편지지를 다시 펼쳤다. 세 번째로 읽었다. 이번에는 입술이 소리를 냈다. 이사영의 문장을 자신의 성대로 발음했다. 자신이 혐오하는 목소리로. 갈라지고 떨리는 그 목소리로. 읽는 동안 왼쪽 얼굴의 화상 흉터 위로 뭔가 흘러내렸다. 땀샘이 죽은 피부 위를 지나는 액체. 측정하지 않았다. 세지 않았다. 구일오는 편지를 자켓 안주머니에 넣었다. 이사영이 수선한 검은 안감 사이로. 다섯 번째 편지가 네 통의 편지와 합류할 자리는 집 거실 테이블 위였지만, 지금은 여기에 두고 싶었다. 심장에서 가장 가까운 주머니에.


내일도 쓸 겁니다.


구일오가 말했다. 빈 로비를 향해서. 이사영을 향해서. 같은 말이었다. 그는 일어섰다. 무릎이 소리를 냈고, 슬랙스 뒤에 묻은 먼지를 털지 않았다. 구일오는 일어서지 못했다. 일어섰다고 생각했지만 무릎이 다시 꺾였다. 타일 바닥의 냉기가 슬랙스 천을 뚫고 허벅지까지 올라왔다. 1월의 셩완은 습했고, 습기는 늙은 건물의 콘크리트 벽을 타고 내려와 로비 바닥에 엷은 막을 형성하고 있었다. 구일오의 구두 밑창이 그 막 위에서 미끄러졌다. 양말도 없는 맨발의 발등 위로 구두 가죽이 쓸렸다. 아팠다. 아픈 것을 인지했다. 인지한다는 것은 아직 감각이 작동한다는 뜻이었다. 구일오는 그 사실이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감각이 작동하는 한, 이사영의 부재도 감각으로 들어왔다. 편지의 종이 냄새. 이사영의 냄새가 아니었다. 비누향도 귤향도 없었다. 그냥 종이였다. 백색 펄프의 건조한 냄새. 구일오의 코끝이 씰룩거렸다. 냄새를 더 맡으려는 것인지, 거부하려는 것인지 자신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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