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일주일 간의 편지(Claude Opus 4.6)
자켓 안주머니 위로 손바닥을 얹었다. 편지가 거기 있었다. 심장 박동이 종이를 통과해 손바닥까지 올라오는 것 같았다. 착각이었다. 심장 박동은 자신의 것이었고, 편지는 종이일 뿐이었다. 그런데 구일오는 그 착각을 교정하지 않았다. 교정하면 편지가 종이로 돌아갔다. 종이로 돌아가면 이사영이 사라졌다. 사라지게 두지 않을 것이었다. 구일오의 입술이 다시 움직였다. 이번에는 이사영의 문장이 아니라 자신의 말이었다.
여기 우편함, 녹슬었어.
아무 의미 없는 말이었다. 이사영에게 하는 말이었다. 이사영이라면 그 말에 뭐라고 대답했을까. 아마 웃었을 것이다. 연두색 눈이 반달 모양으로 접히면서, '고쳐달라고 해볼까요?' 같은 소리를 했을 것이다. 구일오의 눈동자가 우편함의 녹슨 경첩을 훑었다. 녹의 면적, 대략 3제곱센티미터. 부식률로 환산하면 이 건물의 관리 소홀 기간은 최소 6년이었다. 6년. 이사영의 할머니 이봉란이 아직 살아 있었을 시간이었다. 이사영이 이 건물 계단을 오르내리며 왼쪽 슬리퍼를 닳게 하고 있었을 시간이었다. 구일오는 우편함 뚜껑을 닫았다. 금속이 울렸다. 짧고 건조한 소리가 로비 벽에 부딪혀 사라졌다.
구일오는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냈다. 만년필 뚜껑을 열었다. 수첩의 빈 페이지에 날짜를 적었다. 1990년 1월 10일. 그 아래에 적었다. '다섯 번째 편지 수신. 06:34.' 만년필 끝이 멈추었다. 그 아래에 뭘 더 적어야 하는지 몰랐다. 업무 수첩이었다. 주민 약점 블랙리스트가 적힌 수첩이었다. 이사영의 편지 수신 기록을 적을 자리가 아니었다. 그런데 구일오는 그 아래에 한 줄을 더 적었다. '봉투: 백색. 잉크: 흑색. 필압: 이사영.' 적고 나서 만년필 뚜껑을 닫았다. 손가락에 잉크가 묻었다. 검은 잉크. 편지의 잉크와 같은 색이었다. 구일오는 그 잉크를 닦지 않았다.
……내일 올 때 귤 가져올게.
그가 말했다. 7층을 향해서. 비어 있는 7층 B호를 향해서. 이사영의 슬리퍼가 놓여 있는 문 앞을 향해서. 구일오는 수첩을 닫고 자켓 바깥 주머니에 넣었다. 안주머니에는 편지가 있었다. 바깥 주머니에는 수첩이 있었다. 업무와 이사영이 같은 자켓 안에 들어 있었다. 구일오는 몸을 일으켰다. 이번에는 무릎이 버텨주었다. 로비의 철문을 밀고 나갔다. 셩완의 새벽 공기가 얼굴을 때렸다. 왼쪽 얼굴의 화상 흉터 위로 습한 바람이 지나갔다. 땀샘이 죽은 피부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오른쪽 뺨만 차가웠다. 반쪽짜리 감각. 구일오는 BACKLANE DELI 방향으로 걸었다. 7시에 문을 여는 가게. 이사영이 일하던 가게. 이사영이 더 이상 서 있지 않는 카운터.
거실 테이블 위에 다섯 통의 편지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네 통은 구일오의 글씨였고, 한 통은 이사영의 글씨였다. 구일오는 이사영의 편지를 맨 가운데에 놓았다. 양쪽으로 자신의 편지 두 통씩. 대칭이었다. 의미 없는 대칭이었다.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0.5밀리미터 단위로 간격을 맞추었다. 금붕어 수조의 펌프 소리가 방 안을 채우고 있었다. 토마토가 수면 근처에서 입을 벌렸다 닫았다. 버섯은 수조 바닥의 자갈 사이에서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구일오는 그 움직임을 2초간 관찰했다. 2초. 이사영이 금붕어 이름을 지어준 날, 이사영은 수조 앞에서 14분을 앉아 있었다. 구일오는 그 14분을 전부 세었다.
만년필 뚜껑을 열었다. 검은 잉크가 촉 끝에서 빛을 머금었다. 주광색 조명 아래에서 잉크는 거의 남색으로 보였다. 이사영의 편지도 이 잉크였다. 같은 색. 같은 점도. 구일오는 그 사실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생각하면 측정해야 했고, 측정하면 숫자가 나왔고, 숫자가 나오면 이사영이 숫자 뒤로 사라졌다. 사라지게 두지 않을 것이었다. 편지지를 한 장 꺼냈다. 백색. 이사영이 보낸 봉투와 같은 색이었다. 우연이 아니었다. 구일오가 같은 종이를 샀다. BACKLANE DELI에서 돌아오는 길에 문구점에 들렀다. 대니가 아무 말 없이 커피를 내려주었고, 이사영이 서 있던 카운터 자리는 비어 있었다. 구일오는 그 빈자리를 3초 보았다. 3초 이상은 보지 않았다. 3초 이상 보면 무릎이 또 꺾일 것 같았다.
만년필 촉이 종이에 닿았다. 첫 글자를 쓰기까지 4초가 걸렸다. 구일오의 필압은 무거웠다. 이사영의 필압과 달랐다. 이사영은 가볍고 둥글었다. 구일오는 날카롭고 깊었다. 종이 뒷면까지 잉크가 번질 정도로. 그는 적었다.
이사영에게.
쓰고 나서 멈추었다. 만년필 끝이 마침표 위에서 잉크 방울을 하나 떨어뜨렸다. 0.3밀리미터짜리 원. 구일오는 그것을 닦지 않았다. 이사영이라면 그 얼룩을 보고 웃었을 것이다. '점 찍었네요' 같은 말을 했을 것이다. 구일오의 입꼬리가 움찔했다. 웃음이 아니었다. 웃음의 잔해였다. 이사영 앞에서만 작동하던 근육이 이사영 없이도 반응하고 있었다. 조건반사. 파블로프의 개보다 한심했다. 구일오는 다음 줄로 내려갔다.
'오늘 BACKLANE DELI에 갔습니다. 대니가 토마토를 뺀 클럽 샌드위치와 블랙커피를 내놓았습니다. 당신이 없어도 메뉴는 같았습니다. 당신이 없으니까 맛이 달랐습니다. 어디가 다른지 측정하지 못했습니다. 혀가 숫자를 거부했습니다.' 쓰다가 멈추었다. 만년필을 내려놓았다.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주광색 전구가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구일오의 손가락이 테이블 모서리를 쥐었다. 손톱이 하얗게 변할 때까지.
토마토.
금붕어가 반응하지 않았다. 수면 위에서 입만 벌렸다 닫았다. 구일오는 다시 만년필을 집었다. 손가락에 어제 묻은 잉크 자국이 아직 남아 있었다. 씻지 않았다. 씻으면 이사영의 편지와 같은 잉크가 사라졌다. 그는 이어서 적었다. '토마토가 오늘 밥을 6시 12분에 먹었습니다. 당신이 정한 시간입니다. 버섯은 자갈 사이에 숨어서 안 나왔습니다. 당신이 이름을 지어준 날에도 버섯은 숨어 있었습니다. 당신은 그때 수조에 코를 대고 불렀습니다. 버섯아, 버섯아, 하고 수조 유리에 입김을 불었습니다. 당신의 입김이 유리에 동그란 원을 만들었고, 그 원이 사라지기 전에 버섯이 코를 내밀었습니다. 당신은 그때 나를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봤죠? 내 말 알아듣는 거예요. 나는 그때 알아듣는 것이 아니라 수온 변화에 의한 반사 행동이라고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습니다. 당신이 옳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당신이 웃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년필이 멈추었다. 구일오의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떨림의 진폭은 0.2밀리미터 이하였다. 측정할 수 있었다. 측정하고 싶지 않았다. 떨림을 숫자로 바꾸면 그것은 근섬유의 피로가 되었고, 근섬유의 피로가 되면 이사영의 웃음이 생리학 용어 뒤로 매장되었다. 구일오는 만년필을 쥔 손을 다른 손으로 감쌌다. 자신의 손이 자신의 손을 잡고 있었다. 이사영의 손이 아니었다. 이사영의 손은 작았다. 구일오의 손바닥 안에 전부 들어왔다. 손가락 끝이 구일오의 손목 안쪽까지 닿지 못했다. 그 부족한 길이가 좋았다. 좋았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 7일이 걸렸고, 인정한 지 이틀 만에 그 손이 사라졌다.
수조의 펌프가 윙, 하고 한 박자 쉬었다가 다시 돌아갔다. 구일오의 시선이 수조로 향했다. 토마토가 수면 위에서 꼬리를 한 번 쳤다. 물방울이 수조 가장자리에 튀었다. 0.1밀리리터 미만. 구일오는 다시 종이를 보았다. 잉크가 마르지 않은 마지막 글자 위로 주광색 조명이 내려앉아 있었다. 그는 다음 줄로 내려갔다.
'오늘 셩완에 갔습니다. 당신의 슬리퍼가 문 앞에 있었습니다. 왼쪽이 2밀리미터 더 닳아 있었습니다.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가져오면 당신이 돌아왔을 때 신을 것이 없으니까.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알면서도 슬리퍼를 그 자리에 두었습니다. 이것을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겠습니다. 사회복지학 교과서에는 이런 항목이 없었습니다.'
……미련.
구일오가 말했다. 자신이 쓴 글자를 읽은 것이 아니었다. 편지에 적지 않은 단어였다. 적으면 인정하는 것이었고, 인정하면 측정해야 했다. 미련의 무게. 미련의 면적. 미련의 부식률. 구일오는 그 단어를 종이 위에 올리지 않았다. 대신 다음 문장을 적었다. '내일 귤을 가져가겠습니다. 당신의 우편함에 넣겠습니다. 우편함이 녹슬었습니다. 6년치 녹입니다. 당신은 그 녹을 본 적이 있습니까. 아마 매일 보았을 것입니다. 보고도 신경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당신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녹슨 것도, 깨진 것도, 화상 입은 것도 그냥 보았습니다. 그냥 보고, 그냥 웃었습니다.'
만년필이 다시 멈추었다. 구일오의 턱 근육이 한 번 경련했다. 입술이 벌어졌다가 닫혔다. 이사영 앞에서 웃던 근육이 이사영 없이 수축하고 있었다. 웃음이 아니었다. 웃음의 반대편이었다. 같은 근육이 정반대의 일을 하고 있었다. 구일오는 마지막 줄을 적었다.
'내일도 편지를 쓰겠습니다. 당신이 읽지 못해도 쓰겠습니다. 읽지 못한다는 것을 압니다. 알면서 씁니다. 이것도 미련인지 모르겠습니다. 미련이면 미련이어도 상관없습니다. 상관없다는 말을 처음 씁니다. 당신이 가르쳐준 말입니다. 구일오.'
만년필 뚜껑을 닫았다. 금속이 찰칵 소리를 냈다. 작고 정확한 소리. 구일오는 편지를 접었다. 세 번. 이사영이 보낸 편지와 같은 접힘 수였다. 봉투에 넣었다. 봉투 앞면에 적었다. '이사영에게.' 뒷면에는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 보내는 사람을 적지 않아도 이사영은 알 것이었다. 알 리가 없었다. 이사영은 읽을 수 없었다. 구일오는 봉투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여섯 통째 편지. 다섯 통 옆에.
여섯 통의 편지가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구일오는 의자 등받이에 기대앉아 그것들을 내려다보았다. 여섯 개의 흰 봉투. 정렬된 간격. 0.5밀리미터 단위로 맞춘 대칭. 한 통만 다른 사람의 글씨였다. 그 한 통이 나머지 다섯 통을 전부 무의미하게 만들었고, 동시에 나머지 다섯 통이 존재하는 유일한 이유였다. 구일오의 손가락이 이사영의 봉투 모서리를 스쳤다. 종이가 이미 체온을 흡수해 미지근했다. 몇 번이나 만진 것인지 세지 않았다. 세면 숫자가 되었고, 숫자가 되면 병리학적 반복 행동이 되었다. 병리학적 반복 행동이 되면 구일오는 스스로를 치료해야 했다. 치료하고 싶지 않았다.
수조의 펌프가 낮게 울었다. 토마토가 수면 가까이 떠올라 꼬리를 한 번 쳤다. 물이 찰랑거렸다. 구일오는 수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금붕어의 지느러미가 주광색 조명 아래에서 반투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사영이 이름을 지어준 날, 이사영은 손가락을 수조 유리에 대고 토마토의 움직임을 따라갔었다. 손가락 끝이 유리 위에서 좌로, 우로. 토마토는 이사영의 손가락을 따라간 것이 아니라 그냥 헤엄친 것이었다. 이사영은 따라온 거라고 믿었다. 구일오는 정정하지 않았다.
밥 먹었어.
구일오가 수조를 향해 말했다. 토마토에게 한 말인지, 버섯에게 한 말인지, 이사영에게 한 말인지 구분하지 않았다. 사실 밥을 먹지 않았다. BACKLANE DELI에서 산 클럽 샌드위치는 두 입 베어 물고 냉장고에 넣었다. 토마토가 빠진 클럽 샌드위치. 토마토를 빼는 이유를 이사영은 물어본 적이 없었다. 그냥 빼주었다. 당연하다는 듯이. 그 당연함이 구일오의 식도를 조여서, 빵이 내려가지 않았다. 구일오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맨발이 타일 바닥에 닿았다. 1월의 차가움이 발바닥부터 올라왔다. 올라오는 한기를 세지 않았다. 체온이 빠져나가는 속도를 계산하지 않았다. 이사영이 있었다면 양말을 신으라고 했을 것이다. 이사영은 없었다.
구일오는 창문 앞에 섰다. 창문을 열면 맞은편 건물의 벽이었다. 전망은 없었다. 이사영의 집에도 전망은 없었다. 셩완의 싱와 빌딩 7층 B호. 창문을 열면 맞은편 건물의 환풍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사영은 그 소리를 싫어하지 않았다. 잠들기 전에 창문을 열어두었다. 구일오가 왜 여느냐고 물었을 때, 이사영은 바람이 좋다고 말했다. 환풍기 바람이었다. 좋을 리가 없었다. 구일오는 자기 집 창문을 열었다. 맞은편 건물 벽에서 아무것도 오지 않았다. 바람도, 환풍기 소리도, 이사영의 숨소리도.
……내일 귤 사 가야 돼.
구일오가 말했다. 아무도 듣지 않는 방 안에서. 버섯이 자갈 틈에서 꼬리를 흔들었다. 구일오는 창문을 닫았다. 테이블로 돌아와 여섯 통의 편지를 한 통씩 들어 서랍 안에 넣었다. 이사영의 편지를 맨 위에 놓았다. 서랍을 닫을 때 손가락이 멈추었다. 서랍 손잡이를 쥔 채로 3초. 닫으면 이사영의 글씨가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열어두면 주광색 조명이 닿았다. 구일오는 서랍을 닫았다. 닫고 나서 손잡이 위에 손을 올려두었다. 금속의 차가움이 손바닥에 스며들었다. 이사영의 손은 늘 따뜻했다. 비누 냄새가 났다. 구일오는 손을 뗐다. 소파에 앉았다. 소파 쿠션이 한 사람의 무게로 내려앉았다. 옆자리는 비어 있었다. 이사영이 앉았던 적 없는 소파였다. 이사영은 이 집에 온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옆자리가 비어 보였다. 구일오의 머리가 소파 등받이에 기울었다. 천장의 주광색 전구가 차갑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구일오는 눈을 감았다. 감으면 이사영의 얼굴이 보일 줄 알았다. 보이지 않았다.
알람은 울리지 않았다. 울릴 필요가 없었다. 구일오의 눈이 천장의 주광색 전구를 향해 떠진 것은 5시 12분이었고, 그 뒤로 한 시간 반 동안 소파에 누운 채 천장의 미세한 균열을 세었다. 일곱 개. 가장 긴 균열은 조명 소켓에서 남서쪽으로 14센티미터. 작년 여름에는 열두 센티미터였다. 건물의 부식률은 연간 약 1.7퍼센트. 이 건물이 재개발 대상이 되기까지 남은 시간을 계산하려다 멈추었다. 계산하면 이사영의 싱와 빌딩도 같은 공식 안에 들어갔다. 같은 공식 안에 들어가면 이사영의 집이 숫자가 되었다. 숫자가 되면 평당 단가가 되었고, 평당 단가가 되면 구일오는 그것을 서류에 적어야 했다. 적고 싶지 않았다.
세면대 앞에 섰다. 거울 속의 왼쪽 얼굴이 주광색 아래에서 울퉁불퉁한 지형도처럼 드러났다. 화상 흉터의 표면적은 약 38제곱센티미터. 4년 동안 변하지 않은 숫자. 이사영은 이 흉터를 처음 보았을 때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피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보고 있었다. 보고 있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정확한 반응이었다는 것을 구일오는 나중에야 알았다. 알았을 때 이미 이사영의 손가락이 구일오의 턱선을 지나가고 있었고, 구일오는 그 손가락을 잡지도, 피하지도 못했다. 구일오는 수돗물로 얼굴을 씻었다. 1월의 수돗물은 차가웠다. 흉터 위로 물이 흘러내릴 때 감각이 없었다. 땀샘이 죽은 피부는 차가움도 느끼지 못했다. 이사영의 손가락이 닿았을 때는 느꼈다. 온도가 아니라 압력을. 그 차이를 구일오는 아직 측정하지 못했다.
옷장을 열었다. 셔츠 네 벌이 같은 간격으로 걸려 있었다. 전부 흰색. 구일오는 가장 왼쪽 셔츠를 꺼냈다. 단추를 채우는 동안 손가락이 세 번째 단추에서 멈추었다. 이사영이 이 단추를 풀었던 적이 있었다. 1월 8일. 이사영의 집 침대 위에서. 이사영의 손가락은 단추 구멍보다 작았고, 그래서 한 번에 빠지지 않아 두 번 시도했다. 두 번째 시도할 때 이사영이 웃었다. 그 웃음의 주파수를 구일오는 기억하고 있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기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단추를 끝까지 채웠다. 소매를 걷었다. 가죽 자켓을 집어 들었다. 안감에 이사영이 꿰맨 검은 실이 있었다. 검은 안감에 검은 실. 보이지 않았다. 손가락 끝으로만 느낄 수 있었다. 구일오는 안감 위를 한 번 쓸었다. 실밥의 간격은 균일했다. 이사영의 바느질은 정확했다. 정확한 것이 이사영답지 않았고, 이사영답지 않은 것이 이사영다웠다.
귤.
구일오가 말했다. 냉장고를 열었다. 귤 세 개가 비닐봉지 안에 있었다. 어제 퇴근길에 산 것이었다. 하나를 꺼내 주머니에 넣었다. 나머지 두 개는 냉장고에 남겨두었다. 내일과 모레 것이었다. 서랍을 열었다. 여섯 통의 편지 위에 이사영의 편지가 놓여 있었다. 일곱 번째 편지, 오늘 쓸 편지의 봉투는 아직 비어 있었다. 구일오는 비어 있는 봉투를 자켓 안주머니에 넣었다. 안감의 실밥 위에 봉투가 놓였다. 이사영이 꿰맨 실과 이사영에게 보낼 편지가 같은 주머니 안에서 닿고 있었다. 그 접촉점의 의미를 구일오는 측정하지 않았다. 측정하면 무너질 것 같았다. 무너지는 것의 면적을 계산할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무너진 뒤에 이사영에게 편지를 쓸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다녀올게.
구일오가 현관문 앞에서 말했다. 수조 안의 토마토가 수면 위로 입을 벌렸다. 버섯은 자갈 사이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구일오는 문을 열고 복도로 나섰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열한 통의 편지가 서랍 안에 있었다. 여섯 통은 구일오의 글씨, 다섯 통은 이사영의 글씨. 이사영의 편지는 항상 아침에 도착했다. 1층 우편함 안에, 전날 밤에는 없던 흰 봉투가 놓여 있었다. 우편 집배원의 배달 시간은 오전 8시였고, 이사영의 편지는 오전 5시 47분에 구일오가 우편함을 열었을 때 이미 거기 있었다. 소인이 없었다. 우표도 없었다. 누가 넣었는지 알 수 없었다. 구일오는 알 수 없다는 사실을 더 이상 측정하려 들지 않았다. 측정하면 이사영의 편지가 도착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것은 미신이었다. 구일오는 미신을 믿지 않았다. 믿지 않았지만 우편함을 열기 전에 3초 동안 숨을 멈추는 습관이 생겼다. 3초 동안 흰 봉투가 보이지 않을 가능성을 견뎠다. 그리고 봉투가 있었다. 매일.
여섯 번째 편지. 이사영의 글씨는 여전히 떨림이 없었다. 살아있을 때의 이사영 글씨에는 끝획이 살짝 올라가는 버릇이 있었다. 죽은 이사영의 글씨에도 그 버릇이 남아 있었다. 구일오는 그것을 증거라고 부르지 않았다. 증거라고 부르면 법적 효력을 따져야 했고, 법적 효력을 따지면 이사영의 편지가 서류가 되었다. 서류가 되면 구일오는 그것을 처리해야 했다. 처리하고 싶지 않았다.
---
이사영의 여섯 번째 편지:
구일오에게.
오늘 꿈을 꿨어. 꿈이라고 하기엔 좀 이상한데, 여기선 잠을 자는 건지 깨어 있는 건지 잘 모르겠거든. 그냥 눈을 감으면 당신이 샌드위치 씹다가 멈추는 장면이 보여. 왜 멈추는 건지 알아. 토마토가 없는 게 아니라 내가 없어서 멈추는 거잖아. 그거 알면서도 나는 여기서 웃고 있어. 웃기지? 미안해서 웃는 건지, 당신이 보고 싶어서 웃는 건지 잘 모르겠어.
토마토는 밥 잘 먹어? 버섯은 아직도 자갈 사이에 숨어 있어? 토마토한테 말 걸 때 내 이름 부르지 마. 금붕어가 헷갈려. 농담이야. 불러도 돼. 사실 불러줘. 당신 목소리로 내 이름이 불리면 여기까지 들려. 진짜야. 여기가 어딘지 설명하기 어려운데, 소리는 들려. 당신이 현관문 닫는 소리, 수돗물 트는 소리, 그리고 가끔 아무 말도 안 하고 소파에 앉아 있을 때 당신 숨소리. 숨소리가 제일 크게 들려.
양말 신어. 발 시려운 거 알아.
이사영.
---
구일오는 편지를 세 번 읽었다. 세 번째 읽을 때 '양말 신어'에서 턱 근육이 경련했다. 경련의 지속 시간은 1.2초. 이전 편지들에서의 경련 평균은 0.8초였다. 증가율 50퍼센트. 구일오는 그 숫자를 수첩에 적지 않았다. 적으면 이사영의 문장이 데이터가 되었다. 데이터가 되면 구일오는 그것을 분석해야 했다. 분석하면 이사영의 말이 사라졌다. 말이 사라지면 이사영이 사라졌다. 이사영은 이미 사라졌다. 그런데 편지는 왔다. 구일오는 편지를 서랍에 넣었다. 이사영의 편지 위에. 항상 맨 위에.
만년필을 집었다. 검은 잉크. 이사영과 같은 색이었다. 구일오가 먼저 이 색을 쓴 것인지, 이사영이 구일오의 만년필을 가져간 것인지, 아니면 죽은 사람에게는 검은색 잉크밖에 허용되지 않는 것인지. 구일오는 알지 못했다. 알지 못하는 것이 늘어나고 있었다. 이사영을 만나기 전에는 모르는 것이 없었다. 모든 것을 숫자로 환원할 수 있었다. 이사영이 죽고 나서, 숫자로 환원할 수 없는 것들이 매일 한 개씩 생겼다. 오늘로 열한 개째.
---
구일오의 여섯 번째 편지:
이사영에게.
양말을 신었습니다. 왼쪽에 구멍이 났는데 당신이 꿰매줄 사람이 없어서 그냥 신었습니다. 구멍 난 양말을 신는 것은 당신이 살아있을 때도 하지 않았던 일입니다. 당신이 죽고 나서 처음 하는 일이 구멍 난 양말을 신는 것이라는 사실이 우습습니다. 토마토가 밥을 먹었습니다. 오후 6시 14분. 수면 위로 올라와 사료를 세 번 물고 한 번 뱉었습니다. 뱉은 사료는 12초 뒤에 다시 먹었습니다. 당신이 토마토라는 이름을 붙였을 때 나는 금붕어에게 이름이 필요한 이유를 몰랐습니다. 지금은 압니다. 이름이 있으면 사료를 뱉는 것도 기록할 수 있습니다. 기록하면 내일 당신에게 쓸 수 있습니다. 쓸 수 있으면 당신이 읽을 수 있습니다. 당신이 읽을 수 있는지는 모릅니다. 그런데 당신은 양말 구멍을 알고 있었습니다. 알고 있었으니까 읽고 있는 겁니다. 읽고 있으니까 씁니다.
버섯은 오늘 자갈 위로 올라왔습니다. 3센티미터. 어제보다 1센티미터 더 나왔습니다. 당신이 버섯이라고 이름 붙인 이유를 물었을 때 당신은 '버섯 싫어하니까'라고 했습니다. 싫어하는 것의 이름을 붙이는 논리를 나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열두 개째입니다.
구일오.
---
만년필 끝이 마침표를 찍고 멈추었다. 잉크가 종이 위에서 0.3초 동안 번졌다. 구일오는 번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사영의 편지에서는 잉크가 번지지 않았다. 죽은 사람의 잉크는 마르는 시간이 필요 없는 것인지, 아니면 이사영이 천천히 써서 한 글자씩 마를 시간을 준 것인지. 구일오는 알지 못했다. 열세 번째.
편지를 세 번 접었다. 이사영이 보낸 편지와 같은 방식이었다. 처음에는 의도하지 않았다. 두 번째 편지부터 손이 저절로 세 번 접었다. 봉투에 넣었다. 봉투 앞면에 '이사영'이라고 적었다. 적을 때 만년필의 압력이 평소보다 0.2밀리미터 더 깊었다. '영' 자의 마지막 획이 살짝 올라갔다. 이사영의 글씨 버릇이 구일오의 손에 옮은 것이었다. 구일오는 그것을 알아차렸다. 알아차리고도 고치지 않았다.
이사영.
구일오가 말했다. 수조 옆에 앉아서. 토마토가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버섯은 자갈 위 3센티미터 지점에서 꼬리지느러미를 느리게 흔들었다. 구일오의 목소리가 수조 유리에 부딪혀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 이사영은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현관문 닫는 소리, 수돗물 트는 소리, 숨소리. 그러면 이것도 들리는 것인지. 이사영이라는 세 글자가 사이잉푼의 낡은 아파트 벽을 통과해서, 이사영이 있는 곳까지 닿는 것인지.
내일 아침에 우편함 열겠습니다.
구일오가 수조에게 말했다. 토마토에게도 아니고, 버섯에게도 아니고, 수조에게. 수조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는 것이 정확한 반응이었다. 이사영도 처음에 그랬다. 흉터를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많은 말이었다는 것을 구일오는 너무 늦게 알았다. 알았을 때 이사영은 이미 편지로만 말하고 있었다. 구일오는 봉투를 서랍에 넣지 않았다. 내일 아침 5시 47분에 우편함에 넣을 것이었다. 이사영의 편지가 도착하는 시간에. 서로의 편지가 우편함 안에서 스칠 수 있도록. 스치는 것은 닿는 것이 아니었다. 닿는 것은 이사영이 살아있을 때 허락된 것이었다. 스치는 것은 죽은 뒤에도 가능한 것이었다. 구일오는 그 차이를 측정하지 않았다. 측정하면 울 것 같았다. 구일오는 4년 동안 울지 않았다. 시너가 얼굴을 태울 때도 울지 않았다. 이사영의 편지 앞에서 울 것 같다는 사실이 38제곱센티미터의 흉터보다 아팠다. 아픈 것의 단위를 구일오는 아직 만들지 못했다.
소파에 누웠다. 봉투를 가슴 위에 올려놓았다. 천장의 균열은 일곱 개. 가장 긴 균열, 14센티미터. 구일오는 눈을 감았다. 이사영이 말했다, 숨소리가 제일 크게 들린다고. 구일오는 숨을 쉬었다. 평소보다 깊게. 들리라고. 우편함 앞에서 3초를 세었다. 하나. 둘. 셋. 손가락 끝이 금속 뚜껑에 닿기 전에 폐 안의 공기가 전부 빠져나갔다. 힝와 빌딩 1층 복도는 새벽 5시 47분에 아무도 없었다. 형광등 하나가 끊어질 듯 깜빡였고, 우편함 열두 개가 벽에 줄지어 박혀 있었다. 7B. 녹이 슨 번호판. 구일오의 손가락이 뚜껑을 열었다. 흰 봉투가 있었다. 소인 없음. 우표 없음. 이사영의 글씨로 '구일오에게'라고 적혀 있었다. '에'자의 끝획이 살짝 올라가 있었다. 구일오는 자신의 봉투를 우편함 안에 넣었다. 이사영의 봉투를 꺼내면서 자신의 봉투를 밀어넣는 동작이 0.4초 안에 이루어졌다. 스치는 것. 종이와 종이가. 그것으로 충분했다.
계단을 오르지 않았다. 1층 복도 끝, 비상구 앞 콘크리트 바닥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자켓 안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냈다. 세 번 접힌 종이. 펼치는 동안 손가락 끝에서 종이의 결이 느껴졌다. 이사영이 만진 종이. 이사영의 손가락이 이 섬유 위를 지나갔다. 구일오는 그것을 촉각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촉각이라고 부르면 이사영의 손가락 온도를 떠올려야 했다. 온도를 떠올리면 차가운 것과 따뜻한 것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선택하고 싶지 않았다.
---
이사영의 일곱 번째 편지:
구일오에게.
양말 꿰매는 거 어렵지 않아. 바늘에 실 끼우고 구멍 가장자리를 따라 촘촘히 왔다갔다 하면 돼. 당신 재킷 안감 수선해줬을 때 가르쳐줬잖아. 검은 안감에 검은 실. 기억나? 안 나면 안 나는 대로 괜찮아. 구멍 난 채로 신어도 괜찮아. 당신 발이 시리지만 않으면.
오늘 당신 숨소리가 평소보다 깊었어. 들으면서 생각했어, 이 사람이 나한테 들으라고 숨을 쉬고 있구나. 그거 알아? 당신이 나한테 뭔가를 하려고 할 때 항상 숫자를 세거든. 0.2밀리미터, 1.2초, 3센티미터. 그런데 숨 쉬는 건 숫자로 안 세더라. 숫자 없이 하는 건 당신한테 제일 어려운 건데. 그걸 나한테 하고 있었어.
고마워.
추신. 귤 먹어. 냉장고에 두 개 남았잖아. 하나는 내일, 하나는 모레. 그 다음은 당신이 사야 해. 사러 갈 때 완차이 골목 말고 센트럴 쪽 과일 가판대로 가. 완차이 아저씨는 덜 익은 걸 섞어 넣거든.
이사영.
---
구일오의 턱 근육이 경련했다. 1.4초. 증가율이 줄지 않았다. 그는 편지를 접지 않고 무릎 위에 펼쳐 두었다. 비상구 철문 틈으로 새벽 공기가 들어왔다. 1월의 홍콩은 습했고, 그 습기가 종이 위에 내려앉기 전에 구일오가 편지를 자켓 안쪽으로 넣었다. 이사영이 꿰맨 검은 안감에 이사영의 편지가 닿았다. 실과 잉크가 같은 공간 안에 있었다. 구일오는 그 접촉점의 면적을 계산하지 않았다. 열네 번째.
사이잉푼의 아파트로 돌아왔을 때 시계는 6시 12분이었다. 냉장고를 열었다. 귤 두 개. 이사영이 말한 대로였다. 구일오는 하나를 꺼내 껍질을 벗기기 시작했다. 껍질이 한 조각씩 떨어질 때마다 비누향 같은 것이 아닌, 시큼하고 달큰한 귤 냄새가 올라왔다. 이사영에게서는 귤 향이 났었다. 그것은 기억이었다. 기억은 측정할 수 없었다. 측정할 수 없는 것이 열다섯 번째.
완차이 말고 센트럴.
구일오가 귤 한 쪽을 입에 넣으며 말했다. 아무도 없는 부엌에서. 수조 안에서 토마토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입을 한 번 벌렸다가 닫았다. 버섯은 자갈 위 3.5센티미터. 어제보다 0.5센티미터 더. 구일오는 그것을 오늘 밤 쓸 일곱 번째 편지의 두 번째 문단에 적을 것이었다.
수조의 조명이 거실 유일한 빛이었다. 주광색 형광등은 꺼져 있었다. 구일오가 언제 끈 것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아마 편지를 펼치기 전이었을 것이다. 이사영의 일곱 번째 편지는 무릎 위에 있었고, 구일오는 그것을 네 번째 읽고 있었다. 세 번이 아니라 네 번. 규칙이 깨진 것은 '당신 발이 시리지만 않으면'이라는 문장 때문이었다. 그 문장에서 손가락이 멈추었고, 멈춘 손가락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 네 번째 읽었을 때 구일오는 알았다.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이사영의 글씨가 가르쳐주었다. 일곱 번째 편지의 '추신' 아래, '이사영'이라는 서명의 마지막 획. 올라가지 않았다. 이사영의 글씨는 항상 끝획이 올라갔다. 위를 향해. 살아있는 사람처럼. 이 편지의 마지막 획은 수평으로 끝나 있었다. 멈춘 것이었다.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다는 뜻이었다.
토마토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입을 두 번 벌렸다 닫았다. 사료를 찾는 동작이었지만 사료는 이미 6시 14분에 주었다. 버섯은 자갈 위 4센티미터. 어제보다 0.5센티미터 더. 구일오는 그것을 기록해야 했다. 편지에 적어야 했다. 만년필을 집어들었을 때 손가락 끝이 떨렸다. 떨림의 진폭은 측정하지 않았다. 측정하면 숫자가 되고, 숫자가 되면 견딜 수 있고, 견딜 수 있으면 이 편지를 쓸 수 없었다. 구일오는 처음으로 숫자 없이 쓰기로 했다. 이사영이 말했다. 숫자 없이 하는 것이 당신한테 제일 어려운 건데. 그걸 나한테 하고 있었어. 구일오는 그것을 마지막에 하기로 했다.
만년필 끝이 종이에 닿았다. 검은 잉크. 이사영의 만년필과 같은 색.
---
이사영에게.
양말은 안 꿰맸습니다. 바늘에 실을 끼우는 것까지는 했습니다. 구멍 가장자리를 따라 촘촘히, 라고 당신이 말한 대로 하려고 했습니다. 검은 안감에 검은 실. 기억합니다. 당신 손가락이 바늘을 잡는 각도, 실을 당기는 힘, 매듭을 짓는 속도. 전부 기억합니다. 기억하는데 손이 같은 걸 못 합니다. 당신 손이 아니니까.
귤은 먹었습니다. 센트럴 과일 가판대에서 여섯 개 샀습니다. 완차이 아저씨한테 안 갔습니다. 당신이 그러지 말라고 했으니까. 당신이 하지 말라고 한 것은 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이 하라고 한 것은 하겠습니다. 양말 빼고.
토마토가 오늘 사료를 네 번 물고 한 번도 안 뱉었습니다. 처음입니다. 버섯은 자갈 위로 4센티미터 나왔습니다. 내일은 4.5센티미터일 겁니다. 이것을 당신에게 쓸 수 없게 되면 나는 누구에게 쓸 수 있습니까. 아무에게도 쓸 수 없습니다. 당신 전에도 쓴 적이 없었습니다.
나는 당신을 집에 데려오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고 썼습니다. 여섯 번. 일곱 번째에는 다른 것을 씁니다. 나는 당신을 보내지 않은 것을 후회합니다. 셩완 싱와 빌딩 7층 B호. 등기 이전을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당신을 거기서 꺼내겠다고 했습니다. 꺼내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거기 있는 동안 나는 서류를 처리하고, 숫자를 세고, 편지를 쓰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필요했던 것은 편지가 아니었습니다.
이 편지는 우편함에 넣지 않겠습니다. 당신의 편지가 더 오지 않는 우편함에 넣어도 스칠 수 없습니다. 스칠 수 없는 곳에 넣는 것은 버리는 것입니다. 나는 당신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숫자를 쓰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하나만 씁니다. 내가 당신 이름을 부른 횟수를 세지 않은 날은 0일입니다. 매일 셌습니다. 오늘까지.
구일오.
---
마침표를 찍었다. 잉크가 번졌다. 0.3초. 숫자가 저절로 나왔다. 구일오는 그것을 지우지 않았다. 편지를 세 번 접었다. 이사영이 접던 방식. 아래에서 위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다시 한 번 아래에서 위로. 세 번째 접힘에서 종이의 모서리가 정확히 맞지 않았다. 0.7밀리미터. 숫자가 또 나왔다. 구일오는 그것을 고치지 않았다. 이사영의 편지도 완벽하게 맞은 적이 없었다. 항상 약간 어긋나 있었다. 그 어긋남이 이사영의 손가락이었다. 봉투에 넣었다. 봉투 앞면에 만년필 끝을 댔다. '이사영에게'라고 쓰려던 손이 멈추었다. '에게'를 쓰면 보내야 했다. 보낼 곳이 없었다. 구일오는 '이사영'이라고만 썼다. 석 자. 획 하나하나가 종이 위에 스며들 때 손가락 끝에서 잉크의 점도가 느껴졌다. 체액보다 묽고, 물보다 진한 것. 측정하지 않았다.
봉투를 서랍에 넣었다. 이사영의 편지 일곱 통이 있었다. 구일오의 편지 일곱 통이 그 위에 쌓였다. 열네 통. 서랍 안에서 종이와 종이가 맞닿아 있었다. 이사영의 잉크와 구일오의 잉크가 봉투 사이로 스며들어 서로 번질 일은 없었다. 봉투가 막고 있었다. 그래도 같은 서랍 안에 있었다. 구일오는 서랍을 닫으며 손가락 끝으로 나무의 결을 훑었다. 이사영이 이 서랍을 연 적은 없었다. 이사영이 이 집에 온 적은 없었다. 데려오지 못했다. 데려오겠다고 말하지도 못했다. 구일오의 턱 근육이 경련했다. 이번에는 시간을 세지 않았다.
토마토.
구일오가 수조 앞에 앉았다. 맨발이 타일 바닥에 닿았고, 차가움이 발바닥에서 복숭아뼈까지 올라왔다. 양말을 신지 않았다. 구멍 난 양말은 현관 옆에 벗어둔 채였다. 꿰매지 못한 양말. 토마토가 유리벽 쪽으로 헤엄쳐 왔다. 구일오의 손가락이 유리 위에 닿았고, 토마토의 입이 유리 반대편에서 한 번 벌어졌다 닫혔다. 0.3센티미터의 유리. 그것이 손가락과 물고기 사이의 거리였다. 이사영이 이 물고기에게 이름을 붙여주었다. 토마토. 이사영이 싫어하는 것을 좋아하는 물고기의 이름으로 붙인 것이었다. 이사영은 그렇게 웃었다. 그 웃음의 각도를 구일오는 측정하지 못했었다. 측정할 수 없는 것이 늘어만 갔다.
버섯은 4센티미터.
구일오가 말했다. 아무도 듣지 않는 거실에서. 아니, 토마토가 들었다. 버섯은 자갈 뒤에 숨어 있었다. 4센티미터. 내일은 4.5. 모레는 5. 그 다음은. 구일오는 그 다음을 쓸 편지가 없었다. 이사영의 여덟 번째 편지는 오지 않을 것이었다. 내일 새벽 5시 47분에 싱와 빌딩 우편함 앞에 서지 않을 것이었다. 서도 흰 봉투는 없을 것이었다. '에'자의 끝획이 올라간 글씨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었다. 구일오의 손이 수조 위 가장자리를 잡았다. 물이 찰랑거렸다. 토마토가 놀라 바닥으로 내려갔다. 구일오는 손을 거두었다. 물고기를 놀라게 하면 안 되었다. 이사영이 이름을 붙여준 물고기를.
내일은 귤 사러 가야지.
센트럴 과일 가판대. 완차이 말고. 이사영이 그랬으니까. 구일오는 일어서서 냉장고를 열었다. 귤 한 개. 마지막 하나. 이사영이 말한 '모레' 분이었다. 그 다음은 당신이 사야 해, 라고 이사영이 썼다. 구일오는 사야 했다. 사서, 먹고, 껍질을 버리고, 손가락에 남은 시큼한 냄새를 맡아야 했다. 그 냄새가 이사영의 냄새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 냉장고 문을 닫았다. 형광등을 켜지 않았다. 수조의 푸른 빛만이 셔츠의 흰색을 물들이고 있었다. 구일오는 소파에 앉지 않고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등이 소파 옆면에 기댔다. 차갑지 않았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사영의 체온이 아닌 것은 전부 같은 온도였다. 구일오의 입술이 움직였다. 소리가 나지 않았다.
- 이전글일주일 간의 편지(Claude Opus 4.6) 26.02.20
- 다음글이프온리 26.02.18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