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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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17 18:05

# 구일오와 이사영의 서사를 실존 창작물에 빗대어 분석하기

나레이터가 다시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 아까 비벼 끈 담배꽁초 옆에 새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이번에는 불을 붙였다. 분석관의 시간이다. 카메라가 셩완 싱와 빌딩의 침실에서 서서히 빠져나와, 다시 메타의 방으로 돌아왔다. 책장 가득 꽂힌 낡은 책들, LP판, 대본 뭉치, 그리고 벽에 핀으로 꽂힌 인물 관계도. 빨간 실이 두 이름 사이를 잇고 있었다. 구일오. 이사영. 실이 팽팽했다.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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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동화/설화
### 「미녀와 야수」 (La Belle et la Bête)

가장 먼저 손이 가는 서랍이다. 꺼내 놓고 보면 표면적 유사성은 노골적이다. 흉터 가진 남자, 그 흉터를 두려워하지 않는 여자. 성(城) 안에 갇힌 괴물, 그 성에 발을 들이는 아가씨. 하지만 나레이터는 이 비유를 곧이곧대로 쓸 생각이 없다.


원작 보몽 부인의 1756년 판본에서 야수는 '저주받은 왕자'다. 본래의 모습이 따로 있고, 사랑의 힘으로 원래대로 돌아간다. 구일오는 돌아갈 곳이 없다. 사회복지 전공자였던 '착한 관리관'은 원래의 모습이 아니다. 그것도 껍데기였다. 시너가 태운 것은 껍데기였고, 남은 것이 본체다. 이사영이 흉터를 만졌을 때 구일오가 두려워한 것은 '역겨움'이 아니었다. 자신이 야수가 아니라는 것이 들킬까 봐, 야수보다 못한 것, 그냥 상처 입은 관료에 불과하다는 것이 드러날까 봐 두려웠다.


이사영은 벨(Belle)인가. 벨은 아버지를 위해 성에 들어간다. 자기희생의 서사다. 이사영은 아무도 위해서 구일오 앞에 서지 않았다. 샌드위치 가게에서 토마토를 빼고 클럽 샌드위치를 만들다가 이 남자를 만났을 뿐이다. 우연이었다. 우연이 아름다운 이유는 아무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벨은 야수를 구원했지만, 이사영은 구일오를 구원하지 않는다. 그냥 옆에 있을 뿐이다. 그 '그냥'이 구일오를 미치게 하는 것이다.


유사점은 하나 있다. 장미. 야수의 성에서 아버지가 꺾은 장미 한 송이가 모든 비극의 시작이었듯, 이 서사에서의 장미는 호출기 번호다. 915009. 이사영이 54, 88을 보낸 그 순간이 장미를 꺾은 순간이다. 구일오는 그 번호를 받고 토지 대장을 뒤졌다. 장미의 가시에 찔린 것이다. 자기가 심은 가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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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냥팔이 소녀」 (Den lille Pige med Svovlstikkerne)

안데르센의 이 동화를 꺼내는 이유는 이사영 때문이 아니다. 구일오 때문이다.


성냥팔이 소녀는 추위 속에서 성냥을 하나씩 켠다. 불꽃 속에서 따뜻한 난로, 맛있는 음식, 크리스마스 트리를 본다. 환각이다. 성냥이 꺼지면 현실이 돌아온다. 구일오가 이사영과 보내는 시간이 그 성냥불이다. 유엔롱 영화관의 맨 뒷자리. 이마를 맞대는 순간. 입술이 닿는 순간. 성냥이 타오르는 동안은 따뜻하다. 하지만 구일오는 알고 있다. 2월 1일이 오면 성냥이 바닥난다는 것을. 자신의 서명이 찍힌 공문이 이사영의 문 앞에 도착하는 순간, 불꽃이 꺼진다는 것을.


성냥팔이 소녀는 마지막 성냥을 전부 켜고 할머니의 환영 속에서 죽는다. 구일오는 죽지 않을 것이다. 이 남자는 죽는 법을 모른다. 대신 차가운 거리에서 눈을 뜨고 앉아 있을 것이다. 성냥 냄새만 손끝에 남긴 채. 시너 냄새와 구별이 안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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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신화
###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Orpheus & Eurydice)

그리스 신화의 가장 아름다운 비극. 오르페우스는 죽은 아내 에우리디케를 데려오기 위해 지하 세계로 내려간다. 하데스는 조건을 건다. 지상에 도착할 때까지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마라. 오르페우스는 돌아본다. 에우리디케는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구일오는 오르페우스다. 하지만 그가 내려간 지하 세계는 이사영을 구하러 간 곳이 아니다. 그가 이미 살고 있는 곳이다. LDC라는 지하 세계. 구일오가 지하 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것은 은유가 아니다. 사실이다. LDC의 31층 사무실은 햇빛이 쏟아지는 유리창을 가지고 있지만,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은 지하의 문법을 따른다. 토지 대장의 숫자들, 이주 권고서의 양식들, 삼합회에 건네는 외주 전화의 짧은 침묵들. 구일오는 그 어둠 속에서 능숙하게 걷는 법을 익혔다. 눈이 어둠에 적응한 것이다. 그런데 이사영이 나타났다. 지상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지하 세계의 한 구석, 완차이 뒷골목의 샌드위치 가게 카운터 뒤에서 토마토를 빼고 있었다. 에우리디케는 이미 지하에 있었다. 구일오가 그녀를 데리고 올라갈 필요가 없었다. 문제는 그것이다. 오르페우스의 비극은 '돌아보는 것'이었다. 구일오의 비극은 '돌아볼 필요조차 없다'는 것이다. 이사영은 그의 뒤에 있지 않다. 옆에 있다. 같은 어둠 속에서, 같은 습한 공기를 마시며. 셩완 싱와 빌딩 7층 B호. 구일오의 양식 안에 있는 주소. 그가 서명할 공문의 수신처. 에우리디케를 삼킨 어둠이 하데스의 것이 아니라 오르페우스 자신의 손에서 나온 것이라면, 이 신화는 어떻게 끝나는가.


나레이터가 재떨이에 재를 털었다. 대답은 간단하다. 끝나지 않는다. 오르페우스가 지하 세계의 관리인이 되어버렸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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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소설
### 「1984」 (George Orwell, 1949)

오웰의 디스토피아를 꺼내는 것이 과장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나레이터는 전체주의 체제가 아닌, 윈스턴과 줄리아의 관계 구조에 주목한다.


윈스턴 스미스는 당(黨)의 관료다. 체제의 부속품이면서 동시에 체제를 증오한다. 그러나 그의 반항은 내면에서만 작동한다. 줄리아를 만나기 전까지. 줄리아는 윈스턴에게 '체제 바깥의 감각'을 되돌려준다. 커피의 맛, 피부의 온기, 숨이 섞이는 순간의 비논리성. 구일오에게 이사영이 정확히 그것이다. BACKLANE DELI에서 블랙커피를 건네받던 손. MTR에서 나란히 서서 나눈 대화.

고장나지 말고요.

54. 88. 체제의 언어로 번역할 수 없는 신호들.


그러나 오웰의 결말은 잔인하다. 윈스턴과 줄리아는 101호실에서 각자의 공포와 대면하고, 서로를 배신한다.

줄리아에게 해라.

윈스턴이 외치는 그 한마디. 구일오의 101호실은 2월 1일이다. 그날 그의 서명이 찍힌 공문이 이사영의 문 앞에 도착할 때, 그는 윈스턴과 같은 선택지 앞에 서게 된다. 체제(LDC)를 배신할 것인가, 이사영을 배신할 것인가. 오웰의 세계에서는 제3의 선택지가 없었다. 1990년 홍콩에서도 없을 가능성이 높다. 구일오는 이미 자신의 대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2월 1일 전까지는 그냥 구일오이고 싶다

고 말한 것이다. 배신의 날짜가 정해진 사랑. 윈스턴이 일기장에 적었던 것처럼,

자유란 2 더하기 2가 4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다.

구일오에게 자유란, 이사영의 이마 위 머리카락을 넘겨줄 때 평당 단가를 계산하지 않는 3초간의 공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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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The Sun Also Rises, Ernest Hemingway, 1926)

헤밍웨이의 잃어버린 세대. 1차 대전 이후 유럽을 떠도는 상처 입은 남자들과, 그 사이를 관통하는 한 여자. 제이크 반스는 전쟁에서 성기능을 잃었다. 그의 상처는 물리적이면서 동시에 존재론적이다. 사랑할 수 있지만 완성할 수 없다. 구일오의 흉터는 얼굴에 있지만, 본질은 같다. 그는 감정의 회로가 소실되었다. 사랑할 수 있지만, 그것을 '사랑'이라고 명명하는 언어가 타버렸다.

좋아합니다

를 유엔롱 귀가길에서 겨우 뱉어냈지만, 그 단어가 자기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그를 불안하게 만든다.


브렛 애슐리는 제이크를 사랑하지만 그와 함께 있을 수 없다. 이유는 제이크의 부상 때문이 아니다. 브렛 자신이 멈추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계속 움직인다. 다른 남자에게, 다른 도시로, 다른 술잔으로. 제이크는 그것을 지켜본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택시 안에서 브렛이 말한다.

우리 함께 있었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제이크가 대답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기분이 좋지 않나.

그것이 전부다. 헤밍웨이는 더 쓰지 않았다.


구일오와 이사영의 서사에서 이 구조가 반전된다. 구일오는 제이크처럼 상처 입은 남자이지만, 멈추지 못하는 쪽은 이사영이 아니라 구일오 자신이다. LDC의 양식, 토지 대장의 숫자, 이주 권고서의 서명란. 그가 멈추지 못하는 것은 다른 여자가 아니라 체제의 관성이다. 이사영은 브렛과 달리 한 자리에 서 있다. 셩완 싱와 빌딩 7층 B호. 할머니가 남긴 방 두 칸짜리 집. 그녀는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일 곳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움직일 이유를 모르기 때문이다. 구일오가 택시 안에서

그렇게 생각하면 기분이 좋지 않나

라고 말할 날이 올 것인가. 올 것이다. 2월 1일 이후의 어느 날. 나레이터는 그날의 대사를 미리 적어두지 않겠다. 헤밍웨이도 그러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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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희곡/연극
###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Who's Afraid of Virginia Woolf?, Edward Albee, 1962)

올비의 이 희곡은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 두 사람이 서로를 파괴하는 이야기다. 조지와 마사는 밤새 술을 마시며 손님 앞에서 서로의 상처를 꺼내 무기로 쓴다. 거짓말과 진실의 경계가 무너지고, 그들이 공유하는 가장 큰 비밀, '존재하지 않는 아들'이 마침내 폭로될 때 두 사람 사이에 남는 것은 잔해뿐이다.


구일오와 이사영은 아직 서로를 파괴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도 '존재하지 않는 아들'이 있다. 2월 1일의 공문이다. 구일오는 알고 있고, 이사영은 모른다. 이 정보의 비대칭이 올비의 희곡에서 마사가 감추는 환상의 아들과 동일한 기능을 한다. 공유된 환상이 깨지는 순간이 이 관계의 클라이맥스가 될 것이다. 조지가

아들은 죽었다

고 선언했을 때 마사가 무너졌듯, 구일오가 공문에 서명하는 순간 이사영의 세계가 흔들릴 것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조지는 환상을 깨뜨림으로써 마사와의 관계를 정화하려 했다는 것이다. 구일오에게는 정화의 의도가 없다. 그는 단지 자신의 직업을 수행할 뿐이다. 그것이 더 잔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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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도를 기다리며」 (En attendant Godot, Samuel Beckett, 1953)

베케트의 부조리극.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린다. 무대 위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이 요점이다.


구일오가

2월 1일 전까지는 그냥 구일오이고 싶다

고 말한 순간, 그는 고도를 기다리기 시작한 것이다. 고도는 온다. 이 서사에서 고도는 반드시 온다. 날짜까지 정해져 있다. 베케트의 원작보다 잔인한 점은 그것이다. 고도가 오지 않는 것이 비극이라면, 고도가 반드시 오는 것은 공포다. 구일오는 1월의 남은 날들을 이사영 옆에서 보내며 고도를 기다리고 있다. 이사영은 고도가 무엇인지 모른다. 그녀에게 1월은 그저 1월이다. 연인이 생긴 1월. 귤 향기가 나는 1월. 그 무지가 이 서사의 가장 날카로운 칼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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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뮤지컬/오페라
### 뮤지컬 「미스 사이공」 (Miss Saigon, 1989)

뮤지컬 「미스 사이공」. 1989년 9월 20일 런던 웨스트엔드 초연. 이 서사의 시간대와 거의 포개진다. 우연이라기엔 지나치게 정확한 타이밍이다.


킴은 사이공의 바에서 일하는 열일곱 살 소녀다. 크리스는 미 대사관 해병대원이다. 전쟁이 끝나가는 도시에서 둘은 만나고, 하룻밤을 보내고,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사이공이 함락된다. 크리스는 헬리콥터에 탄다. 킴은 남겨진다. 3년 후 크리스는 미국에서 새 아내와 살고 있고, 킴은 아이를 안고 방콕의 빈민가에서 그를 기다린다. 재회는 이루어지지만 결합은 불가능하다. 킴은 아이를 크리스에게 맡기기 위해 자신의 가슴에 총을 쏜다. 커튼이 내린다. 객석에서 누군가 운다.


구조를 분해하자. 킴의 비극은 '버림받음'이 아니다. 킴은 처음부터 크리스의 세계에 속할 수 없었다. 사이공의 바와 미 대사관 사이에는 대양이 아니라 체제의 단층이 놓여 있었다. 크리스가 나쁜 남자여서가 아니다. 그는 선의를 가진, 그러나 자기 세계의 중력을 벗어날 수 없는 평범한 인간이었을 뿐이다.


구일오와 이사영. LDC 31층과 셩완 싱와 빌딩 7층 B호. 이 둘 사이에 놓인 것은 대양이 아니라 토지 대장의 한 줄이다. 구일오는 크리스보다 더 나쁘다. 크리스는 헬리콥터가 와서 떠난 것이지만, 구일오는 헬리콥터를 보내는 쪽이다. 이주 권고서가 곧 헬리콥터다. 차이가 있다면, 킴은 크리스가 떠난 뒤에 총을 쐈지만, 이사영은 총을 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사영은 그런 종류의 서사를 가진 인물이 아니다. 그녀는 길고양이를 보면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이다. 자기 가슴에 총구를 대는 대신, 아마 구일오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물을 것이다. 왜요, 라고. 그 한마디가 총보다 더 치명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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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레이터가 연기를 길게 내뱉었다. 원고 뭉치의 마지막 장을 넘겼다.


결론을 내리자. 이 모든 서사들, 동화와 신화와 소설과 희곡과 뮤지컬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하나다. 사랑이 체제를 이기지 못한다는 것. 야수의 성은 무너지지 않았고,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케를 되찾지 못했고, 윈스턴은 줄리아를 배신했고, 제이크는 택시 안에서 쓸쓸한 농담을 했고, 고도는 오지 않았고(여기서는 온다), 킴은 죽었다. 그러나 나레이터는 한 가지를 덧붙인다. 이 모든 서사에서, 사랑은 체제를 이기지 못했지만 사라지지도 않았다. 야수의 장미는 마지막 꽃잎이 떨어진 뒤에도 향기를 남겼고, 오르페우스의 노래는 그의 머리가 강에 떠내려가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구일오가

좋아합니다

라고 말한 유엔롱의 귀가길. 그 세 글자는 이미 발화되었다. 토지 대장의 어떤 숫자로도 지울 수 없다. 2월 1일이 와도.


다만, 그것이 위안이 되느냐고 묻는다면. 나레이터는 대답하지 않겠다. 위안은 나레이터의 업무 범위 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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