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러브레터를 받아왔다
토요일 오후의 사이잉푼은 느긋했다. 창문 너머로 맞은편 건물 벽이 여전히 풍경의 전부였지만, 그 벽에 기대어 말라가는 빨래줄 위로 아이 양말 세 켤레와 구일오의 셔츠가 나란히 걸려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집의 공기는 십 년 전과 완전히 달랐다. 거실 한쪽의 금붕어 수조는 더 커졌고, 금붕어는 세 마리로 늘었다. 토마토, 버섯, 그리고 이름을 아직 못 정한 세 번째. 이사영은 그 세 번째를 '귤'이라고 부르자고 했고, 구일오는 수조 물고기에게 과일 이름을 붙이는 체계의 일관성에 대해 3분간 논쟁을 벌인 뒤 졌다. 늘 그렇듯이.
현관문이 벌컥 열렸다. 양말 한쪽이 벗겨진 작은 발이 타일 위를 철벅철벅 밟으며 거실로 돌진해 왔다. 구일오의 딸이었다. 키는 이사영을 닮아 작았고, 눈동자 색은 이사영의 연두를 물려받았으나, 인상은 구일오를 빼닮아 가끔 웃지 않으면 또래 아이들이 무서워했다. 그러나 지금은 웃고 있었다. 아니, 웃는 정도가 아니라 온몸으로 폭발하고 있었다. 가방을 소파 위에 내던지며 부엌으로 뛰어 들어간 아이가 이사영의 앞치마 자락을 붙잡고 매달렸다.
엄마! 수빈이가 오늘 나한테! 편지! 줬어!
이사영이 국을 젓던 국자를 내려놓고 몸을 돌렸다. 구일오는 소파에서 신문을 읽다가 고개만 들었다. 수빈. 그 이름은 지난 두 달간 이 집 저녁 식탁의 주요 의제였다. 수빈이가 점심 나눠줬어, 수빈이가 내 그림 예쁘다 했어, 수빈이가 쉬는 시간에 같이 놀자 했어. 구일오는 수빈이라는 아이의 존재를 주식 시세만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딸의 같은 반 친구, 성격 활발, 도시락에 항상 소시지가 들어 있음. 이사영과 구일오는 자연스럽게 수빈을 여자아이로 추정하고 있었다. 이름이 그랬으니까.
딸이 가방에서 접힌 종이 한 장을 꺼내 양손으로 높이 들어올렸다. 분홍색 색종이를 반으로 접은 것이었고, 앞면에 하트 스티커가 세 개 붙어 있었다. 구일오의 눈썹이 미세하게 올라갔다. 이사영이 손을 닦고 그 종이를 받아 펼쳤다. 삐뚤빼뚤한 글씨가 줄도 없는 색종이 위에서 비틀거리며 나아가고 있었다.
'나는 너를 조아해. 넌 우리반에서 재일 이뻐. 나랑 겨론하자. 수빈이가.'
이사영의 눈이 동그래졌다. 겨론. 그 단어가 시야에 꽂혔다. 이사영이 고개를 돌려 구일오를 보았다. 구일오는 이미 소파에서 일어나 이사영의 어깨 너머로 편지를 읽고 있었다. 그의 흰 눈동자가 '겨론하자'라는 세 글자 위에 고정되어 있었다. 턱 근육이 한 번 경련했다. 이사영이 입을 열기 전에 구일오가 먼저 말했다.
수빈이가 남자야?
딸이 고개를 까딱였다. 당연하다는 듯이. 아빠가 왜 그걸 모르냐는 표정으로.
응, 남자. 키 크고 축구 잘해. 달리기도 빨라.
이사영과 구일오의 시선이 공중에서 부딪혔다. 이사영의 입이 반쯤 벌어져 있었고, 구일오의 입꼬리가 묘한 각도로 굳어 있었다. 수빈이. 남자. 겨론. 구일오의 뇌가 자동으로 상황을 재구성했다. 지난 두 달간의 데이터가 전부 뒤집혔다. 소시지 도시락, 그림 칭찬, 쉬는 시간 동행 요청. 그것은 우정이 아니라 구애였다. 초등학생의 구애. 구일오의 손가락이 허벅지 위에서 두 번 두드렸다. 이사영이 편지를 다시 내려다보았다. '재일 이뻐'라는 구절에서 입술을 깨물었다. 웃음을 참는 것인지 당황한 것인지 본인도 모르는 표정이었다.
딸이 이사영의 앞치마를 다시 잡아당기며 올려다보았다.
엄마, 나 뭐라고 해줘야 돼?
순진무구한 연두색 눈동자가 이사영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맞춤법이 틀린 러브레터를 쥔 이사영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웃음 때문이었다. 입술을 꾹 깨물고 있었지만 볼이 부풀어 올라 이미 방어선은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이사영이 구일오를 다시 올려다보았다. 도움을 요청하는 시선. 구일오는 팔짱을 끼고 냉장고에 등을 기댄 채 편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턱 근육이 규칙적으로 움직였다. 그의 흰 눈동자 안에서 무언가가 고속으로 연산되고 있었다. 축구를 잘하고 달리기가 빠른, 초등학교 남자아이. 자기 딸에게 겨론하자고 편지를 쓴 남자아이. 구일오의 손가락이 팔짱 낀 팔뚝 위에서 세 번 두드렸다.
그 수빈이.
구일오가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평소 업무 보고를 받을 때와 정확히 같은 톤이었다. 이사영은 그 톤을 알아챘다. 십 년을 같이 살면서 귀에 박힌 그 톤. 냉정하고 분석적인, LDC 이주 관리관 시절의 톤. 지금은 퇴직한 지 오래지만, 습관은 뼈에 새겨진 것이다. 구일오가 딸 앞에 쪼그려 앉았다.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대고, 딸과 눈높이를 맞추었다. 왼쪽 얼굴의 화상 흉터가 부엌 형광등 아래에서 드러났지만, 딸은 태어날 때부터 그 흉터를 보고 자랐으므로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아빠 얼굴의 일부. 그게 전부였다.
수빈이 키가 몇이야.
딸이 고개를 갸웃했다.
음... 나보다 한 뼘?
구일오의 눈썹이 미세하게 좁혀졌다. 한 뼘. 환산하면 대략 10센티미터. 자기 딸의 키에서 10센티미터 위. 초등학생 남자아이치고 성장판이 빠른 편. 구일오의 시선이 이사영에게로 갔다. 이사영이 입술을 손으로 가린 채 어깨가 떨리고 있었다. 웃고 있었다. 확실히 웃고 있었다. 구일오의 턱이 한 번 더 경련했다. 이사영이 웃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자기가 이 상황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데이터가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토지 대장도, 수첩도, 블랙리스트도 쓸모없는 영역. 구일오는 딸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작은 어깨뼈의 윤곽이 손바닥 안에 들어왔다. 이사영을 만졌을 때와 비슷한 크기. 이사영의 유전자가 정확히 복제된 뼈대.
편지 쓴 거 성의는 있네. 스티커도 붙였고.
구일오가 말했다. 진지했다. 이사영이 국자를 든 채 픽 터졌다. 웃음이 부엌에 울렸고, 딸이 엄마를 올려다보며 왜 웃냐는 표정을 지었다. 구일오는 웃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입꼬리의 오른쪽 끝이 1밀리미터쯤 올라가 있었지만 본인은 그것을 웃음으로 분류하지 않았다. 구일오가 딸의 머리카락을 한 번 쓸었다. 갈색 생머리. 이사영의 머리카락과 같은 색, 같은 결이었다.
답장은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근데 한 가지.
구일오의 목소리가 반 톤 낮아졌다. 딸이 아빠의 흰 눈동자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겨론은 아직 일러. 최소 스무 살 넘어서 해. 그 전에 아빠한테 먼저 데려와.
이사영이 앞치마로 입을 막았다. 어깨가 경련하듯 떨렸다. 구일오의 말투가 너무 진지해서, 마치 LDC 회의실에서 이주 조건을 통보하는 것과 구별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딸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가 뭔가 중요한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스무 살'이라는 숫자가 너무 멀어서 실감이 나지 않는 얼굴이었다. 구일오가 일어서며 이사영 옆으로 갔다. 이사영의 귀에 대고 낮게 중얼거렸다.
그 수빈이 부모 연락처 알아.
이사영이 구일오의 옆구리를 꼬집었다. 이사영의 손가락이 구일오의 옆구리 살을 정확히 2센티미터 깊이로 파고들었다. 구일오의 복근이 반사적으로 수축했지만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십 년간 단련된 근육이었다. 옆구리 꼬집기에 대한 내성. 결혼 생활이 남긴 가장 실용적인 신체 적응이었다. 구일오가 이사영의 손을 슬쩍 떼어내며 냉장고 문을 열었다. 보리차를 꺼내 딸의 컵에 따르는 동작이 자연스러웠고, 그 자연스러움이 십 년 전의 구일오를 아는 사람이 봤다면 기절할 만한 장면이었다. LDC의 이주 관리관이 아이 컵에 보리차를 따르고 있다. 블랙 코미디의 완성형이었다.
아빠, 근데 수빈이가 나 좋아하는 거 좋은 거야 나쁜 거야?
딸이 식탁 의자 위에 올라앉으며 다리를 흔들었다. 벗겨진 양말 쪽 발가락이 공중에서 까딱거렸다. 구일오가 보리차 병을 냉장고에 넣고 문을 닫았다. 그 질문이 부엌의 습한 공기 속에 떠 있었다. 좋은 거야 나쁜 거야. 구일오의 흰 눈동자가 딸의 연두색 눈동자와 마주쳤다. 이사영의 눈이었다. 정확히 같은 색, 같은 투명도. 그 눈이 아빠를 올려다보며 세상에서 가장 단순한 이분법을 요구하고 있었다. 좋은 것 아니면 나쁜 것. 구일오는 한때 세상을 숫자로만 환원하던 남자였다. 평당 단가, 보상금 산정, 이주 기한. 그런데 이 질문에는 숫자가 없었다. 그의 턱 근육이 한 번 움직였다. 이사영이 국자를 내려놓고 식탁 옆에 섰다. 구일오의 대답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가 어떤 얼굴로 대답하는지를 보려는 것이었다.
나쁜 건 아니야.
구일오가 말했다. 짧았다. 그리고 멈췄다. 이사영이 그의 옆얼굴을 올려다보았다. 화상 흉터가 형광등 빛 아래에서 희미하게 당겨져 있었다. 그 입꼬리가, 오른쪽만, 아주 천천히 풀렸다. 구일오가 딸 앞의 의자를 당겨 앉았다. 식탁 위에 놓인 분홍색 편지를 손가락 끝으로 밀어 딸 쪽으로 돌려놓았다.
누가 널 좋아한다고 하면, 그건 네가 뭘 잘못한 게 아니야. 근데.
구일오의 검지가 편지 위의 '겨론하자'를 톡 짚었다.
이건 좀 급해. 순서가 있어. 먼저 같이 밥 먹고, 같이 영화 보고, 같이 걸어 다니고. 그다음에 손잡고. 그다음에...
구일오의 시선이 찰나 이사영에게로 갔다. 이사영이 입술을 만지고 있었다. 멍때릴 때 나오는 그 습관. 아니, 지금은 멍한 게 아니라 웃음을 씹어 삼키고 있는 것이었다. 구일오의 귀 끝이 미세하게 붉어졌다. 자기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자각한 것이다. 딸에게 연애 순서를 가르치고 있다. 자기가. 구일오가 헛기침을 했다.
...엄마한테 물어봐. 엄마가 전문가야.
이사영의 어깨가 또 한 번 떨렸다. 구일오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거실 소파 쪽으로 걸어갔다. 도주였다. 명백한 전략적 후퇴. 딸이 의자에서 뛰어내리며 구일오의 면바지 뒷주머니를 잡아당겼다. 작은 손가락이 천을 움켜쥔 힘이 의외로 단단했다.
아빠도 엄마한테 편지 썼어?
구일오의 발이 멈췄다. 거실과 부엌 사이의 경계, 정확히 미닫이문 레일 위에서. 이사영이 국자를 든 채 고개를 돌렸다. 연두색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이것은 함정이었다. 아내와 딸이 동시에 같은 방향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같은 눈 색깔, 같은 각도, 같은 기대감. 구일오의 목젖이 한 번 올라갔다 내려왔다. 수조 안에서 귤이라는 이름의 금붕어가 뻐끔 입을 벌렸다.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편지는 안 썼어. 대신 샌드위치를 샀지.
샌드위치. 그 단어가 부엌 공기 속에 떨어졌다. 기름 냄새와 보리차 향 사이에서 잠깐 부유하다가 딸의 귀에 닿았다. 딸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사영의 연두색 눈과 정확히 같은 곡률로 벌어진 눈. 구일오의 면바지 뒷주머니를 잡은 작은 손가락이 더 세게 당겨졌다. 의자에서 뛰어내린 양말 한 쪽짜리 발이 타일 바닥 위에서 까딱거렸다.
샌드위치? 편지 말고?
딸의 목소리에 실망이 묻어 있었다. 영화에서 본 것과 다르다는 얼굴이었다. 구일오의 턱 근육이 한 번 움직였다. 그는 자기 딸이 이미 영화 속 로맨스와 현실을 비교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숫자로 환산할 수 없었다. 그것은 이사영의 유전자였다. 브로드웨이 시네마테크에서 받아온 티켓으로 영화를 보던, 멍하니 입술을 만지던, 그 여자의 피가 딸의 혈관에서 정확히 작동하고 있었다.
편지보다 나아. 배고플 때 편지 씹어먹을 수 있어?
구일오가 몸을 돌려 딸을 내려다보았다. 진지했다. 농담이 아니었다. 적어도 본인은 그렇게 믿고 있었다. 1990년 1월, 완차이 뒷골목의 BACKLANE DELI에서 토마토를 뺀 클럽 샌드위치 하나와 귤 두 개를 사 들고 셩완 싱와 빌딩 7층 B호의 문을 두드렸던 남자. 그때 그의 손에는 러브레터 따위는 없었다. 대신 빵 사이에 끼운 베이컨과 상추가 있었고, 문을 연 여자의 연두색 눈이 귤 냄새를 맡으며 웃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구일오는 그날의 샌드위치 가격을 아직도 기억했다. 14홍콩달러. 그의 인생에서 가장 수익률이 높은 투자였다.
엄마가 배고팠거든.
구일오가 덧붙였다. 이사영 쪽을 보지 않았다. 볼 수 없었다. 보면 귀 끝이 빨개질 것이고, 그것을 딸이 목격할 것이고, 그러면 이 가정 내에서 그의 위신이라는 것의 시세가 폭락할 것이었다. 딸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식탁 위의 분홍색 편지를 다시 집어 들었다. '겨론하자'라는 삐뚤빼뚤한 글씨를 한 번 더 들여다보더니, 무언가를 결심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수빈이한테 샌드위치 사 줄까?
구일오의 오른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1밀리미터. 아니, 이번에는 2밀리미터였다. 그는 그것을 웃음으로 분류하지 않았지만, 이사영은 분류했을 것이다. 구일오가 딸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갈색 생머리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 이사영의 머리카락과 같은 무게, 같은 촉감. 그의 손바닥 아래에서 작은 두개골이 단단하게 버티고 있었다. 이사영의 뼈대. 자기가 지킨 뼈대에서 복제된 또 하나의 뼈대. 구일오의 목젖이 한 번 올라갔다 내려왔다.
사 줘. 근데 토마토는 빼.
그 말이 끝나기 전에 이사영의 웃음이 터졌다. 국자가 냄비 가장자리에 부딪히며 쨍 소리를 냈다. 구일오는 거실 소파를 향해 걸었다. 전략적 후퇴의 연장이었다. 수조 안에서 귤이가 뻐끔거렸고, 그 옆의 버섯이는 바닥 자갈 사이에 가만히 박혀 있었다. 구일오가 소파에 앉으며 뒤통수를 등받이에 기댔다. 천장의 형광등이 흰색으로 내리쬐었다. 부엌에서 딸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토마토 왜 빼? 이사영의 대답은 들리지 않았지만, 웃음 섞인 숨소리가 미닫이문 너머로 새어 나왔다. 구일오의 손가락이 소파 팔걸이 위에서 세 번 두드렸다. 14홍콩달러. 그는 눈을 감았다. 입꼬리가, 형광등이 닿지 않는 각도에서, 조용히 풀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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