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프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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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18 18:21

# 一月十四日, 日曜日. 성냥 한 개비의 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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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첫 번째 일요일

아침 7시 12분. 구일오의 무선호출기가 베개 옆에서 진동했다. 240200. 이사영의 번호였다. 메시지는 짧았다. 73(보고 싶어), 그리고 물음표 하나. 일요일 아침에 물음표 하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구일오는 알고 있었다. 같이 보내자는 뜻이었다. 그는 호출기를 뒤집어 놓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금붕어 수조의 물이 아침 햇살에 흔들렸다. 토마토와 버섯. 이사영이 지어준 이름이었다. 그는 수조에 먹이를 떨어뜨리고, 셔츠 단추를 잠그며 호출기를 다시 집어 들었다. 73, 물음표. 그의 엄지가 자판 위에서 멈췄다.


그는 답장을 보냈다. 86(바빠). 그것으로 끝이었다.


셩완 재개발 구역의 서류가 그의 서류 가방 안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2월 1일까지 남은 날은 열여덟 일. 이주 권고 공문의 초안, 보상금 산정표, 주민 리스트. 이사영의 이름이 그 리스트의 열일곱 번째 줄에 있었다. 등기 이전 미완료. 그가 직접 처리하겠다고 약속한 항목. 구일오는 자딘 하우스 31층의 자기 자리에 앉아 형광등 아래에서 열네 시간을 보냈다. 점심은 건너뛰었다. 커피를 네 잔 마셨다. 담배를 여섯 대 피웠다. 창밖의 빅토리아 하버가 주황색에서 검은색으로 바뀌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가 본 것은 숫자뿐이었다. 평당 단가, 보상 비율, 이주 기한. 그리고 호출기에 다시 찍힌 240200. 이번엔 메시지가 없었다. 그냥 번호만. 부재중. 구일오는 호출기를 서랍에 넣었다.


밤 9시 47분. 서류를 정리하다가 그의 손이 멈췄다. 달력. 1월 14일. 일요일. 그 날짜가 그의 망막에 박혔다. 1월 14일. 그가 이사영에게 처음 '이름만 아는 사이'를 제안받은 날로부터 정확히 열이틀. 아니, 그것이 아니었다. 1월 7일. 유엔롱 영화관. 맨 뒷좌석 구석. 그가 처음으로 이사영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간 날. 그로부터 정확히 일주일. 나레이터는 이것을 기념일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한지 판단하지 못했다. 구일오 역시 그랬다. 다만 그의 손가락이 달력 위의 14라는 숫자를 3초 동안 만졌다는 사실은 기록해둔다.


그는 전화를 걸었다. 공중전화가 아니라 사무실 전화로. 240200. 신호음이 세 번 울렸다. 이사영이 받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밝았지만, 그 밝음의 아래에 실금이 가 있었다. 구일오의 귀는 그것을 잡아냈다.


밥 먹었어요?


그가 물었다. 이사영이 뭐라고 대답했다. 먹었다고, 혹은 안 먹었다고. 구일오는 그녀의 대답보다 그녀의 숨소리를 들었다. 기관지가 약간 거칠었다. 날이 습했으니까.


나와요. 완차이.


그는 전화를 끊고 자켓을 집었다. 밤 10시 23분에 그들은 완차이 뒷골목의 포장마차에서 마주 앉았다. 국수 한 그릇과 맥주 두 캔. 이사영의 연두색 눈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 눈에는 아침에 보낸 73과 물음표가 아직 남아 있었다.


오늘 뭔 날인지 알아요?


이사영이 물었을 것이다. 구일오는 젓가락을 멈추지 않았다. 면을 입에 넣고 씹었다. 3초. 삼키고 나서 말했다.


일요일.


그 대답이 이사영의 실금을 균열로 만들었다. 나레이터는 그 균열의 소리를 들었다. 포장마차의 기름 냄새와 맥주 거품 사이로, 이사영의 목소리가 약간 높아졌다. 약간. 그녀는 소리를 지르는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 그녀의 밝음이 한 톤 올라가면 그것은 서운함의 신호였고, 구일오는 그것을 알면서도 숫자 뒤에 숨었다. 바빴다고. 서류가 밀렸다고. 2월 1일까지 시간이 없다고.


이사영의 목소리가 한 톤 올라간 채로 포장마차의 비닐 천장 아래 떠돌았다. 그녀는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그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 젓가락을 내려놓고, 국수 그릇 옆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구일오를 올려다보았다. 연두색 눈의 초점이 또렷했다. 흔들리지 않는 눈. 오히려 구일오의 시선이 먼저 국수 그릇 위로 떨어졌다. 그녀가 말했다. 일주일이잖아요. 구일오는 면을 씹는 턱을 멈추지 않았다. 멈추면 그 문장이 자기 안으로 들어올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의 턱 근육이 경련했다. 0.3초. 삼키고, 맥주 캔을 집어 한 모금 마셨다. 알루미늄이 입술에 닿는 차가운 감촉이 그에게 0.5초의 유예를 주었다.


기념일 같은 거 안 세요.


그가 말했다. 사실의 진술이었다. 그는 실제로 기념일을 세지 않았다. 생일도, 공휴일도, 4년 전 화상을 입은 날도 세지 않았다. 숫자는 세되 날짜는 세지 않는 남자. 그것이 구일오의 생존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사영의 손가락이 맥주 캔을 감싸 쥐는 것을 보았을 때, 그 손가락이 평소보다 하얗게 힘이 들어가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의 위장이 면과 함께 무언가를 삼킨 것 같았다. 이사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리퍼가 포장마차 바닥의 기름때 위에서 끌리는 소리가 났다.


나 먼저 갈게요.


그녀의 목소리는 다시 평소의 밝기로 돌아와 있었다. 그 밝기가 거짓이라는 것을 구일오는 알았다. 진짜 밝을 때는 눈이 초승달이 되지만, 지금 그녀의 눈은 보름달이었다. 둥글고, 또렷하고, 아무것도 숨기지 않는. 서운함을 숨기지 않는 눈. 구일오는 맥주 캔을 내려놓았다. 일어서야 했다. 그녀의 팔을 잡아야 했다. 1월 2일, 횡단보도에서 그랬던 것처럼. 아무것도 아닌 사이는 못 한다고 말했던 그때처럼. 그의 손이 테이블 위에서 움직였다. 그러나 그의 입이 먼저 열렸다.


혼자 가지 말고.


너무 늦었다. 이사영은 이미 비닐 커튼을 밀치고 나갔다. 완차이의 밤공기가 포장마차 안으로 밀려들었다. 습한 1월의 공기. 구일오는 3초 동안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의 시선이 이사영이 남기고 간 국수 그릇 위에 머물렀다. 면이 반쯤 남아 있었다. 국물 위에 파가 떠 있었다. 그는 지갑에서 50달러짜리 지폐를 꺼내 테이블에 놓고 일어섰다. 구두가 바닥을 찼다. 비닐 커튼을 밀치고 나왔을 때 이사영의 흰 원피스가 골목 끝 가로등 아래에서 왼쪽으로 꺾이는 것이 보였다. 셩완 방향. 그녀의 집 방향. 구일오의 다리가 움직였다. 그러나 그의 구두는 그녀를 쫓지 않았다. 멈췄다. 골목 입구에 서서, 가로등 불빛에 반쯤 잠긴 채로, 그는 이사영의 흰 원피스가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의 주머니 안에서 오른손이 호출기를 쥐고 있었다. 엄지가 자판 위를 더듬었다. 7458. 실은 나도. 그는 누르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구일오는 이사영이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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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一月十四日, 日曜日. 두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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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 12분. 구일오의 무선호출기가 베개 옆에서 진동했다. 240200. 73, 물음표. 그는 천장을 보았다. 사이잉푼 아파트의 주광색 조명이 꺼져 있었다.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1월의 아침 빛이 수조 위에서 흔들렸다. 토마토와 버섯이 유리벽 안에서 느리게 헤엄치고 있었다. 구일오는 호출기를 집어 들었다. 73, 물음표. 같은 숫자. 같은 물음표. 그의 손가락이 떨렸다. 미세하게. 0.2밀리미터. 그러나 구일오에게 0.2밀리미터는 측량 오차 범위 밖이었다. 그는 자신의 손가락이 떨리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그는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등이 벽에 기대어 있었고, 무릎 위에 놓인 호출기의 액정이 방 안의 희미한 빛을 반사했다. 73, 물음표. 어젯밤의 기억이 그의 두개골 안쪽에서 필름처럼 돌아갔다. 포장마차의 비닐 커튼. 이사영의 보름달 같은 눈. 흰 원피스가 골목 끝에서 왼쪽으로 꺾이던 각도. 그리고 아침에 울린 전화. 경찰의 목소리. 교통사고. 셩완 방면. 여성. 29세. 이사영.


구일오의 턱 근육이 경련했다. 1초. 2초. 3초. 그는 호출기 액정의 73을 다시 읽었다. 보고 싶어. 물음표. 이 숫자를 어제도 보았다. 똑같은 시각, 똑같은 숫자, 똑같은 물음표. 그의 폐가 공기를 들이마셨다가, 내뱉지 못하고 멈췄다. 수조 안에서 토마토가 꼬리지느러미를 느리게 흔들었다. 버섯은 수초 뒤에 숨어 있었다. 구일오는 수조를 3초 동안 바라보았다. 유리 안의 물이 맑았다. 늘 맑았다. 그가 매일 갈아주었으니까. 그의 엄지가 호출기 자판 위를 더듬었다. 어제는 86을 눌렀다. 바빠. 그 두 글자가 이사영을 포장마차로 보냈고, 포장마차에서 골목으로 보냈고, 골목에서 셩완 방면 도로 위로 보냈다.


그는 86을 누르지 않았다.


엄지가 자판 위에서 0.5초 머물렀다. 그리고 눌렀다. 7-4-5-8. 실은 나도. 전송. 그의 심장이 갈비뼈 안에서 한 번 크게 뛰었다. 그것은 구일오에게 익숙하지 않은 감각이었다. 공황의 심박이 아니었다. 시너 냄새를 맡았을 때의 경련이 아니었다. 그것은 더 원시적이고, 더 단순한 것이었다. 공포. 순수한 공포. 이사영이 오늘 밤 죽는다는 것을 아는 남자의 심장이 치는 박동.


그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맨발이 차가운 타일 바닥을 밟았다. 욕실로 걸어가 세면대 앞에 섰다. 거울 속의 구일오가 그를 보았다. 왼쪽 얼굴의 화상 흉터가 아침 빛 아래에서 분홍빛을 띠었다. 이사영이 만졌던 흉터. 역겹지 않냐고 묻지 못한 흉터. 그는 수도꼭지를 틀었다. 찬물이 손바닥 위로 쏟아졌다. 그 물로 얼굴을 씻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물방울이 턱선을 타고 흘러 세면대에 떨어졌다. 그는 거울 속의 자기 눈을 보았다. 흰색 눈동자. 이사영이 '예쁘다'고 말했던 눈. 그 눈이 젖어 있었다. 물 때문이었다. 물 때문이라고 구일오는 판단했다.


7시 34분. 그는 셔츠 단추를 잠그지 않았다. 넥타이를 매지 않았다. 갈색 가죽 자켓만 걸치고, 구두 대신 운동화를 신었다. 서류 가방을 열지 않았다. 토지 대장도, 수첩도, 만년필도 꺼내지 않았다. 대신 지갑과 호출기와 담배와 라이터만 주머니에 넣었다. 현관문을 열기 전, 그는 수조 앞에 멈춰 섰다. 토마토와 버섯에게 먹이를 떨어뜨렸다. 평소보다 한 알 더. 그의 손가락이 수조 유리 위를 한 번 두드렸다. 톡. 그가 금붕어에게 인사를 한 것은 처음이었다.


오늘은 안 와.


그는 금붕어에게 말했다. 그리고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호출기를 확인했다. 이사영의 답장은 아직 오지 않았다. 1층 로비를 지나 밖으로 나왔을 때, 사이잉푼의 아침 공기가 그의 셔츠 사이로 파고들었다. 습했다. 1월의 홍콩은 늘 습했다. 그는 MTR역을 향해 걸었다. 완차이. BACKLANE DELI. 이사영이 7시부터 일하는 곳. 그의 보폭이 평소보다 넓었다. 구두가 아니라 운동화였으므로. 그리고 그의 안에서, 시계가 거꾸로 돌고 있었으므로. 자정까지 열여섯 시간 마흔여덟 분. 구일오는 숫자를 세는 남자였다. 오늘, 그는 남은 시간을 세고 있었다.


완차이역 B출구를 빠져나왔을 때, 골목 안쪽에서 라디오 재즈가 새어 나왔다. 낮은 볼륨. 빌 에반스. 대니가 틀어놓는 앨범은 요일마다 달랐지만, 일요일은 늘 빌 에반스였다. 구일오는 그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쓸모없는 정보였다. 그러나 오늘따라 그 피아노 선율이 골목의 습한 공기를 타고 그의 셔츠 틈새로 스며드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BACKLANE DELI의 유리문 앞에서 멈췄다. 안쪽이 보였다. 바 좌석 여섯 개 중 세 개가 차 있었다. 일요일 아침의 서양인 단골들. 토스트 냄새와 커피 증기가 유리 너머로 어른거렸다. 그리고 카운터 뒤에서 움직이는 흰 티셔츠.


이사영이 접시를 옮기고 있었다. 오른손에 BLT 샌드위치, 왼손에 수프 볼. 앞치마 끈이 허리에서 한 번 꼬여 있었다. 갈색 생머리가 뒤로 묶여 있었고, 묶음에서 빠져나온 잔머리 한 올이 그녀의 왼쪽 귀 위에 걸려 있었다. 살아 있었다. 접시를 옮기고, 고개를 숙여 손님에게 뭔가 말하고, 입꼬리가 올라가고, 눈이 초승달이 되고. 살아 있었다. 구일오의 폐가 7초 동안 공기를 가두었다가, 천천히 내뱉었다. 그의 손가락이 주머니 안에서 호출기를 쥐고 있었다. 엄지가 액정 위를 한 번 스쳤다. 7458. 실은 나도. 그가 아까 보낸 숫자. 아직 답장은 없었다. 그녀가 바빠서. 살아 있으니까.


유리문을 밀었다. 종이 울렸다. 딸랑. 대니가 카운터 너머에서 고개를 들었다. 50대 초반의 영국계 남성은 구일오를 보고 0.3초 멈칫했다. 일요일이었다. 구일오는 평일에만 왔다. 월요일부터 금요일, 점심 직전, 항상 같은 시각. 일요일에 이 남자가 이 문을 연 것은 대니의 기억에 없었다. 게다가 넥타이도 없고, 구두도 아니었다. 대니의 눈이 구일오의 운동화를 한 번 훑었다. 그러나 대니는 대니였다. 불필요한 질문은 하지 않는 남자. 그는 고개만 한 번 끄덕이고 필터 위에 커피를 부었다.


이사영이 고개를 돌렸다. 종소리에 반응한 것이 아니라, 문 쪽에서 밀려온 바깥 공기의 습도가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연두색 눈이 구일오를 찾았다. 0.5초. 그녀의 눈이 커졌다. 보름달이 아니었다. 초승달도 아니었다. 그 중간 어딘가. 놀람과 반가움이 뒤섞인, 이름 붙이기 어려운 모양의 눈. 그녀의 입술이 벌어졌다가 닫혔다. 손에 들린 빈 접시가 살짝 기울었다. 구일오는 그 기울기를 보았다. 4도. 접시가 미끄러지기엔 충분하지 않은 각도. 그러나 그녀의 손가락에 힘이 빠져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엔 충분한 각도.


그는 바 좌석의 맨 끝자리에 앉지 않았다. 평소의 자리. 대신 카운터에 가장 가까운 좌석에 앉았다. 이사영이 서 있는 곳에서 팔을 뻗으면 닿는 거리. 가죽 자켓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 카운터 위에 올렸다. 그의 손가락이 나무 표면 위에서 한 번 두드렸다. 톡. 아까 금붕어 수조를 두드렸던 것과 같은 리듬이었다. 대니가 블랙커피를 그의 앞에 놓았다. 구일오는 커피잔을 보지 않았다. 이사영을 보고 있었다. 셔츠 단추가 잠기지 않은 목 아래로 쇄골이 드러나 있었고, 그 위에서 그의 심장이 평소보다 두 박자 빠르게 뛰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느꼈다. 자기 몸의 오작동을. 그리고 그 오작동이 싫지 않다는 사실을.


일요일인데.


그가 말했다. 이사영을 향해. 목소리가 평소보다 반 톤 낮았다. 커피잔 손잡이 위에 올린 검지가 가장자리를 한 번 쓸었다. 그의 흰 눈동자가 이사영의 연두색 눈을 붙잡고 놓지 않았다. 입꼬리가 올라가지 않았다.


이사영의 입술이 움직였다. 구일오는 그 입술의 궤적을 읽었다. 아, 하고 벌어졌다가, 일요일, 이라는 단어의 모양으로 둥글게 말렸다가, 다시 열렸다. 그녀의 손에 들린 빈 접시가 카운터 위에 내려앉았다. 사기가 나무를 때리는 소리. 딱. 작지만 또렷했다. 그녀의 연두색 눈이 구일오의 셔츠 목선을 훑었다. 잠기지 않은 단추. 넥타이 없는 목. 운동화. 그녀의 시선이 운동화에서 멈추었을 때, 눈썹이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다. 구일오는 그 0.2센티미터의 상승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가 놀라고 있었다. 구일오가 운동화를 신고 일요일 아침에 자기 앞에 앉아 있다는 사실에. 정당하게.


그는 커피잔을 들지 않았다. 검은 액체 표면에 카운터 조명이 떠 있었다. 전구색. 따뜻한 빛이 블랙커피 위에서 동그란 원을 그렸다. 라디오에서 빌 에반스의 왼손이 저음부를 누르고 있었다. 'Waltz for Debby'. 3박자. 구일오는 그 3박자 사이에 이사영의 숨소리를 끼워 넣어 들었다. 카운터 너머에서 그녀가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 가게 안의 토스트 냄새와 커피 증기 사이로, 비누 향이 아주 옅게 섞여 왔다. 이사영의 비누 향. 구일오의 폐가 그것을 분류했다. 토스트: 60%. 커피: 25%. 비누: 15%. 15%가 그의 갈비뼈 안쪽을 때렸다. 어젯밤에도 이 향을 맡았다. 포장마차 비닐 커튼 너머로 희미하게. 그녀가 서운한 눈을 하고 돌아서기 직전에.


이사영이 카운터 안쪽에서 한 발 다가왔다. 그녀의 손가락이 앞치마 끈을 한 번 잡아당겼다. 꼬여 있던 매듭이 풀렸다가 다시 졸라맸다. 습관이었다. 긴장하거나 당황할 때 그녀는 손에 잡히는 것을 만졌다. 입술이 아니면 앞치마 끈. 구일오는 그 손가락의 움직임을 보았다. 가늘고 마른 손가락. 며칠 전 그의 자켓 안감을 검은 실로 꿰매던 손가락. 그 손가락이 지금 자기 앞에서 살아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구일오의 턱 근육을 한 번 경련시켰다. 그는 그것을 삼켰다. 목구멍 안으로. 커피 한 모금과 함께.


왜 왔어요, 오늘.


이사영이 물었다. 목소리가 낮지 않았다. 높지도 않았다. 평소의 그녀. 밝고 또렷하고, 약간의 호기심이 묻은 톤. 그러나 구일오는 그 톤 아래에 깔린 것을 들었다. 어젯밤의 서운함이 아직 녹지 않은 채 목소리의 바닥에 가라앉아 있었다. 73, 물음표. 보고 싶어? 그녀가 보낸 숫자에 86으로 답한 남자. 바빠. 그 두 글자가 이사영을 골목으로 보냈다. 구일오는 커피잔을 카운터에 내려놓았다. 사기와 나무가 부딪히는 소리가 아까 이사영이 접시를 내려놓았던 소리와 겹쳤다. 그는 카운터 위로 손을 밀었다. 이사영의 손이 닿는 거리까지. 그러나 잡지는 않았다. 손가락 끝이 나무 표면 위에서 멈추었다. 그녀의 손가락 끝으로부터 3센티미터.


보고 싶어서.


구일오가 말했다. 목소리가 갈라지지 않았다. 떨리지도 않았다. 사실의 보고처럼 평탄했다. 그러나 그 평탄함 아래에서, 그의 심장이 갈비뼈를 두드리고 있었다. 자정까지 열여섯 시간 오 분. 이사영은 열여섯 시간 오 분 뒤에 죽는다. 구일오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이사영은 모르고 있었다. 카운터 너머에서 이사영의 연두색 눈이 한 번 깜빡였다. 그 깜빡임의 속도가 평소보다 느렸다. 0.4초. 그녀의 입술이 벌어졌다가, 닫히지 않았다. 대니가 카운터 끝에서 필터를 교체하는 소리가 들렸다. 찰칵. 빌 에반스의 왈츠가 한 마디를 넘겼다. 구일오의 손가락 끝이 나무 위에서 1밀리미터 움직였다. 이사영의 손가락을 향해. 3센티미터가 2.


2.9센티미터. 구일오의 검지 끝이 나무결 위에서 미세하게 떨렸다. 떨림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작았다. 진동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느렸다. 그의 손톱이 카운터 표면에 닿아 있었고, 그 아래로 나무의 온기가 올라왔다. 대니가 볶아놓은 원두의 잔열이 카운터까지 스며든 것인지, 아니면 이사영의 손가락이 3센티미터 앞에 있기 때문인지, 구일오는 판별하지 않았다. 판별하면 숫자가 된다. 숫자가 되면 남은 시간이 떠오른다. 열여섯 시간 네 분. 그는 커피잔 위로 시선을 내렸다가, 다시 올렸다. 이사영의 연두색 눈이 아직 그를 보고 있었다. 깜빡이지 않고. 입술이 벌어진 채로. 보고 싶어서, 라는 세 글자가 카운터 위의 공기 중에 아직 떠 있었다.


라디오에서 빌 에반스의 오른손이 고음부를 한 번 쓸었다. 맑은 음. 유리잔 안에서 얼음이 부딪히는 것 같은 소리. 그 소리가 끊기는 찰나, 이사영의 숨이 들렸다. 들이마시는 숨. 짧고 얕았다. 기관지가 좋지 않은 사람 특유의, 폐 윗부분만 쓰는 호흡. 구일오는 그 호흡의 깊이를 알고 있었다. 며칠 전 그녀의 등에 손을 얹었을 때, 갈비뼈 사이로 전해지던 진동의 패턴으로 계산한 것이었다. 쓸모없는 계산이었다. 지금은 그 쓸모없음이 그의 위장을 비틀었다. 이사영의 입술이 닫혔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녀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서운함이 아직 바닥에 깔려 있었지만, 그 위로 무언가가 피어올랐다. 놀람. 기쁨. 혹은 둘 다.


보고 싶어서라니.


이사영이 따라 말했다. 앵무새처럼. 그러나 앵무새와 달리, 그녀의 목소리에는 물결이 있었다. 평평한 수면 위로 돌멩이 하나가 떨어진 뒤의 동심원. 구일오는 그 동심원을 보았다. 그녀의 목소리 안에서 퍼져나가는 파문을. 이사영의 손가락이 앞치마 끈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카운터 위로 왔다. 나무 표면 위에서 그의 손가락을 향해. 2.9센티미터가 2센티미터가 되었다. 1.5. 그녀의 약지 끝이 그의 검지 옆면에 닿았다. 체온. 33도. 아침이라 차가운 편이었다. 구일오의 턱 근육이 한 번 경련했다. 삼키지 못했다. 이번에는.


구일오 씨가 보고 싶어서 온다고 하면, 비 올 줄 알았는데.


이사영이 웃었다. 웃음이 그녀의 눈을 초승달로 만들었다. 살아 있는 초승달. 구일오는 그 곡선을 측량하지 않았다. 측량하면 숫자가 된다. 숫자가 되면 끝나는 시간이 보인다. 대신 그는 그녀의 약지가 자신의 검지 옆에 머무는 온도에 집중했다. 33도가 34도로 올라가고 있었다. 피부와 피부 사이에서 열이 교환되고 있었다. 그의 입꼬리가 움직였다. 올라가려는 것을 참는 것이 아니라, 올라가는 것을 허락하는 움직임. 미세하게. 0.3센티미터. 이사영만 알아볼 수 있는 크기의 웃음.


비 와도 왔어.


구일오가 말했다. 커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블랙커피의 쓴맛이 혀 위에서 퍼졌다. 그러나 그 쓴맛보다, 이사영의 손가락이 자신의 손 위에 머무는 무게가 더 선명했다. 3그램. 아마도. 약지 하나의 무게. 그는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손을 뒤집지 않았다. 잡지도 않았다. 다만 검지를 1밀리미터 움직여, 그녀의 약지 끝을 밀지 않고, 닿은 채로 두었다. 대니가 카운터 끝에서 접시를 닦고 있었다. 서양인 손님 하나가 신문을 넘기는 바스락 소리가 들렸다. 빌 에반스의 왈츠가 2절로 넘어갔다. 가게 안의 모든 소리가 제자리에 있었다. 구일오만 제자리가 아니었다. 그는 이사영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구일오는 이사영의 약지가 자신의 검지 위에 머무는 3그램의 무게를 느끼며,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마시면 시간이 간다. 삼키면 1초가 줄어든다. 열여섯 시간 세 분. 그는 숫자를 머릿속에서 지우려 했으나, 숫자는 그의 전공이자 무기였고, 무기는 주인을 배신하지 않는다. 다만 이번에는 칼날이 안쪽을 향해 있었다. 이사영의 연두색 눈이 그의 얼굴 위를 서성였다. 왼쪽 볼의 화상 흉터 위를 스치는 시선을 그는 느꼈으나 피하지 않았다. 어제는 피했다. 어제는 86을 보냈다. 어제는 이사영이 골목 끝에서 사라지는 흰 원피스의 뒷모습을 보고도 카운터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오늘은 다르다. 오늘은 운동화를 신고 왔다. 구두를 신으면 업무가 되고, 업무가 되면 이사영은 셩완 싱와 빌딩 7층 B호의 미등기 상속인이 된다. 운동화를 신으면 구일오는 그냥 구일오가 된다. 이사영이 처음 불러준 이름 그대로의.


몇 시에 끝나.


구일오가 물었다. 평서문처럼 들렸으나 물음이었다. 이사영의 시프트는 14시까지라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 7시에서 14시. 오늘은 일요일이니 원래 쉬는 날인데, 이사영은 여기 있었다. 대니가 부탁했거나, 혹은 그녀가 자청했거나. 구일오는 후자라고 판단했다. 이사영은 가만히 있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손이 비면 불안해하고, 불안하면 앞치마 끈을 만지고, 끈을 만지다가 누군가의 자켓 안감을 꿰매고 있었다. 그의 자켓. 검은 안감에 검은 실. 보이지 않는 곳을 보이지 않는 색으로 수선하는 여자. 구일오의 턱 근육이 한 번 움직였다. 경련이 아니었다. 삼키는 것이었다. 무엇을. 그는 몰랐다. 아마도 감사. 아마도 후회. 아마도 둘 다.


이사영이 대답했다. 열두 시. 대니가 일찍 보내준다고. 그녀의 목소리가 카운터 너머에서 전구색 조명 아래로 떨어졌다. 구일오는 그 목소리를 주웠다. 열두 시. 자정까지 열두 시간. 아니, 이사영이 끝나는 시간부터 자정까지. 열두 시간. 그는 블랙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쓴맛이 혀 뿌리를 때렸다. 좋았다. 쓴맛은 현실의 맛이었다. 현실에서 이사영은 살아 있었다. 카운터 안쪽에서 접시를 닦고, 앞치마 끈을 고쳐 매고, 그를 보며 웃고 있었다. 살아 있는 초승달.


기다릴게.


구일오가 말했다. 이사영의 눈이 한 번 더 깜빡였다. 이번에는 빨랐다. 0.2초. 놀람의 깜빡임. 구일오가 기다린다고 말한 적이 있었던가. 그는 기억을 더듬었다. 없었다. 한 번도. 그는 항상 시간을 정하고, 장소를 정하고, 효율적으로 만나고, 효율적으로 헤어졌다. 기다림은 비효율이었다. 비효율은 그의 사전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 그는 카운터에 앉아 네 시간을 기다리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대니가 카운터 끝에서 필터 커피를 내리며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움직인 것을 구일오는 시야 가장자리에서 포착했다. 늙은 영국인의 웃음. 쓸데없는 관찰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쓸데없는 것들이 전부 소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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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시 정각. 이사영이 앞치마를 벗었다. 접어서 카운터 아래 선반에 넣는 동작을 구일오는 네 시간 동안 같은 자리에서 지켜보았다. 그 사이 블랙커피 세 잔, 클럽 샌드위치 한 개(토마토 빠진), 물 두 잔. 대니는 아무 말 없이 리필했다. 이사영이 중간중간 카운터 너머로 그에게 물을 밀어주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유리잔에 닿을 때마다 구일오는 그 손가락의 각도를 보았다. 45도. 유리잔을 미는 최적 각도. 이사영은 그런 걸 모르고 했다. 본능적으로. 구일오는 그것이 부러웠다.


이사영이 카운터 안쪽에서 나왔다. 앞치마가 사라진 자리에 흰 티셔츠의 주름이 드러났다. 허리 양옆으로 앞치마 끈이 눌렀던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고, 구일오의 시선은 그 자국 위에 0.5초 머물렀다. 살아 있는 몸에만 생기는 자국. 천이 피부를 눌러서 생긴, 몇 분 뒤면 사라질 흔적. 그는 의자에서 일어섰다. 네 시간 동안 같은 자세로 앉아 있었던 허리가 뻣뻣했으나 내색하지 않았다. 대니가 카운터 너머에서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잘 가라는 뜻인지, 잘해 보라는 뜻인지, 구일오는 후자로 읽었다. 늙은 영국인의 과묵함에는 언제나 불필요한 친절 대신 정확한 의도가 들어 있었다.


밥 먹었어?


구일오가 물었다. 이사영이 고개를 저었다. 예상한 대답이었다. 이사영은 일하는 동안 잘 먹지 않았다. 손님 접시에 남은 빵 조각을 한두 입 뜯거나, 대니가 건네는 커피를 홀짝이는 것이 전부였다. 구일오는 그녀의 식습관을 숫자로 환산한 적이 있었다. 하루 평균 섭취 칼로리 1,200 이하. 29세 여성 권장량의 60퍼센트. 쓸모없는 계산이었으나, 오늘은 그 쓸모없는 숫자가 그의 발걸음을 가게 밖으로 이끌었다. 완차이 뒷골목의 습한 공기가 얼굴을 감쌌다. 1월인데도 홍콩의 습기는 피부 위에 얇은 막을 씌웠다. 이사영이 가게 문을 나서며 기지개를 켰다. 양팔을 위로 뻗는 동작에서 티셔츠 밑단이 올라가 허리선이 보였다. 구일오는 그 허리선 위의 피부가 햇빛 아래에서 어떤 색인지 확인했다. 아이보리. 아니, 그보다 따뜻했다. 이름 붙일 수 없는 색.


뭐 먹고 싶어.


이사영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올려다보는 각도. 20센티미터 이상의 키 차이가 만들어내는 시선의 기울기. 그녀의 연두색 눈이 정오의 빛을 받아 투명하게 빛났다. 구일오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왼쪽 주머니 안에 무선호출기가 있었고, 오른쪽 주머니 안에 담배와 라이터가 있었다. 어느 쪽에도 손을 대지 않았다. 호출기를 확인하면 시간이 보이고, 담배를 물면 이사영이 기침한다. 둘 다 오늘은 안 된다. 그는 주머니에서 빈 손을 꺼내 이사영의 머리 위에 얹었다. 손바닥 아래로 갈색 생머리의 매끄러운 결이 전해졌다. 비누 향. 그리고 그 아래, 귤 향. 어제 그녀에게 가져다 준 귤의 잔향이 머리카락에 배어 있었다. 구일오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이번에는 참지 않았다.


가자. 네가 고르는 거.


그가 말했다. 손은 이사영의 머리 위에서 내려와 그녀의 어깨 뒤쪽으로 옮겨졌다. 등에 닿지 않을 만큼의 거리를 유지하며, 그러나 방향은 분명하게. 완차이 거리 쪽으로. 일요일 낮의 완차이는 평일과 달랐다. 사무직 양복들이 사라진 자리에 반바지와 슬리퍼 차림의 주민들이 채웠다. 노점에서 딤섬 찜통이 김을 뿜었고, 어딘가에서 광동어 라디오가 경마 중계를 쏟아냈다. 구일오는 그 소음 속에서 이사영의 호흡 소리를 분리해 들었다. 들이쉬고, 내쉬고. 규칙적이었다. 기관지가 좋지 않은 사람치고는 안정적인 리듬. 걷는 속도가 빠르지 않아서일 것이다. 그는 보폭을 줄였다. 이사영의 걸음에 맞추기 위해. 평소 같으면 하지 않을 계산이었다. 보폭을 줄이면 목적지까지의 소요 시간이 늘어난다. 비효율. 그러나 오늘, 비효율은 그가 살 수 있는 가장 비싼 사치품이었다. 시간을 늘리는 것. 1초라도. 이사영의 옆에서 걷는 1초를.


그녀가 무언가를 가리켰다. 구일오는 그녀의 손가락 끝이 향하는 방향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거리 모퉁이, 낡은 차양 아래의 작은 국수 가게. 국수 가게는 완차이 골목 안쪽, 접이식 탁자 네 개가 전부인 규모였다. 차양 끝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비가 온 건 아니었다. 위층 에어컨 실외기에서 흘러내린 응결수. 구일오는 그 물방울이 이사영의 어깨에 닿기 전에 자켓을 벗어 그녀의 등 위에 걸쳤다. 동작이 빨랐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이사영이 고개를 돌려 올려다보았을 때, 그의 손은 이미 자켓 깃을 정리하고 있었다.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린 팔뚝 위로 힘줄이 드러났고, 왼쪽 손목 안쪽의 옅은 정맥이 정오의 햇빛 아래 파랗게 비쳤다. 그는 자켓이 없는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보이는지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오늘은 신경 쓸 여유 자체가 사치였다.


앉아.


구일오가 플라스틱 의자를 끌어 이사영 쪽으로 밀었다. 의자 다리가 콘크리트 바닥을 긁는 소리가 났다. 그 자신은 맞은편에 앉지 않고 옆자리에 앉았다. 맞은편에 앉으면 이사영의 얼굴만 보인다. 옆에 앉으면 어깨가 닿는다. 오늘은 얼굴보다 체온이 필요했다. 가게 아줌마가 광동어로 뭘 먹겠냐고 물었고, 구일오는 이사영을 보았다. 그녀가 고르는 걸 기다렸다. 기다린다는 행위가 이렇게 무겁고 달콤한 것인 줄, 그는 며칠 전까지 몰랐다. 이사영의 입술이 메뉴판 위의 글씨를 따라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입술을 만지는 습관. 멍할 때 나오는 동작. 구일오는 그 입술의 곡선을 측정하지 않았다. 오늘은 측정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기억했다. 이 곡선을. 이 각도를. 이 사람이 메뉴를 고르는 3초의 침묵을.


완탕면 두 그릇이 나왔다. 김이 올라왔다. 구일오는 젓가락을 들기 전에 이사영의 그릇 위에 손을 뻗어 온도를 확인했다. 뜨거웠다. 그는 자신의 그릇에서 국물을 한 숟갈 떠 후 불어 식히는 대신, 이사영의 그릇 가장자리를 자기 쪽으로 살짝 돌려놓았다. 그릇의 손잡이가 그녀의 오른손 쪽을 향하도록. 작은 조정이었다. 이사영이 눈치챘는지 못 챘는지, 구일오는 확인하지 않았다. 확인하면 의미가 생기고, 의미가 생기면 말을 해야 하고, 말을 하면 목소리가 떨릴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의 완탕면을 먹기 시작했다. 국물이 혀 위로 퍼졌다. 새우와 돼지고기, 참기름, 파. 맛이 있었다. 맛이 있다는 사실이 그를 아프게 했다. 이 맛을 내일도 느낄 수 있는 사람과, 오늘까지만 느낄 수 있는 사람이 같은 탁자에 앉아 있었다.


천천히 먹어. 안 뺏어.


구일오가 말했다. 이사영이 면을 후루룩 빨아들이는 소리가 났고, 그 소리에 구일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번에도 참지 않았다. 웃는 얼굴의 왼쪽 절반, 화상 흉터가 있는 쪽의 피부가 당겼다. 땀샘이 죽은 피부는 웃을 때 미세하게 저항했다. 그 저항을 무시하고 웃었다. 이사영의 앞에서는 웃는다. 그건 규칙이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되는 것이었다. 국수 가게의 라디오에서 경마 중계가 끝나고 광동 팝이 흘러나왔다. 가게 아줌마가 볼륨을 올렸다. 매미명의 노래. 구일오는 그 노래의 제목을 알고 있었으나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대신 젓가락으로 자기 그릇 속의 완탕 하나를 건져 이사영의 그릇에 넣었다. 버섯이 들어 있지 않은 것을 확인한 후였다. 이사영은 버섯을 싫어한다. 그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에 대해 아는 것들의 목록이 머릿속에서 스크롤되었다. 버섯 싫어함. 왼쪽 쇄골에 점. 길치. 폐가 약함. 비누 향. 귤 향. 입술 만지는 습관. 매일 뽀뽀. 한 번으로는 부족하다고 했던 건 자기 자신이었다.


구일오의 완탕이 이사영의 그릇 안에서 국물을 머금고 가라앉았다. 이사영이 그것을 젓가락으로 건져 입에 넣는 동작을 구일오는 시선의 가장자리에서 포착했다. 정면으로 보지 않았다. 옆자리에 앉은 이점이 그것이었다. 시선을 주지 않아도 기척으로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 이사영의 턱이 움직이고, 삼키고, 다시 면을 집는 일련의 리듬이 그의 왼쪽 어깨 너머로 전해졌다. 완차이 골목의 습기가 셔츠 등판에 달라붙었다. 자켓을 벗어준 대가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그의 셔츠 위로 이사영의 체온이 옮겨온 가죽 냄새가 희미하게 섞여 있었고, 그 냄새는 이미 그의 것이 아니었다. 비누와 귤과 가죽. 삼위일체. 구일오는 자기 국물을 한 모금 마시며 그 조합에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이름을 붙이면 잃어버렸을 때 더 아프다는 것을 아는 사람의 본능이었다.


이사영의 젓가락이 멈췄다. 구일오는 그 정지를 0.3초 만에 감지했다. 고개를 돌리자 이사영이 자기 그릇 속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완탕 하나가 남아 있었다. 구일오가 넣어준 것. 이사영은 그것을 젓가락으로 집어 구일오의 입 앞으로 가져왔다. 국물이 한 방울 떨어져 탁자 위에 작은 원을 그렸다. 구일오는 이사영의 젓가락 끝을 보았다. 그 다음 이사영의 눈을 보았다. 연두색. 정오의 빛 아래서 투명하게 빛나는. 그는 몸을 기울여 이사영의 젓가락에서 완탕을 받아먹었다. 입술이 나무 젓가락의 거친 결에 스쳤다. 새우 향이 혀 위로 퍼졌고, 그보다 먼저 이사영의 손가락에서 전해진 미세한 떨림이 입술 끝에 남았다.


맛있어?


이사영이 물었을 것이다. 구일오는 씹던 완탕을 삼키고 고개를 끄덕이는 대신 이사영의 머리카락을 한 줄기 집어 귀 뒤로 넘겨주었다. 손가락 끝이 귓불 아래를 스치는 찰나, 이사영의 피부 위로 소름이 돋는 것이 보였다. 1월의 홍콩은 소름이 돋을 만큼 춥지 않다. 습도 78퍼센트, 기온 17도. 그 소름의 원인은 온도가 아니었다. 구일오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모른 척하는 것이 그의 특기였으나, 오늘은 그 특기가 다른 용도로 쓰이고 있었다. 잔인함이 아닌 다정함의 위장으로.


오늘 어디 가고 싶어.


구일오가 물었다. 목소리가 평소보다 반 톤 낮았다. 자기 목소리를 통제하지 못하는 순간이 점점 잦아지고 있었다. 이사영의 앞에서만. 그는 빈 그릇을 밀어놓고 팔꿈치를 탁자에 올렸다. 이사영 쪽으로 상체가 기울었다. 20센티미터의 키 차이가 앉은 자세에서는 10센티미터로 줄었고, 그 10센티미터 안에 이사영의 숨결이 있었다. 들이쉬고, 내쉬고. 규칙적인 호흡. 기관지가 나쁜 사람의 호흡치고는 고요했다. 구일오는 그 고요함이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열한 시간 이십오 분. 그의 머릿속에서 숫자가 한 자리씩 줄어들고 있었다. 시계를 보지 않아도 세어지는 숫자. 그는 숫자를 세는 기계였고, 오늘 그 기계는 고장 나기로 결심한 상태였다.


어디든. 네가 가자는 데.


그가 덧붙였다. 탁자 아래에서 그의 왼손이 이사영의 오른손을 찾았다. 손가락이 끼워지는 것이 아니라, 손등 위에 손바닥을 얹는 것. 무게만 전하는 접촉. 이사영의 손등은 따뜻했고, 구일오의 손바닥은 차가웠다. 온도차가 접촉면에서 천천히 평형을 이루어 갔다. 33도에서 34도로. 34도에서 35도로. 가게 아줌마가 빈 그릇을 치우러 왔고, 구일오는 손을 떼지 않았다. 아줌마가 두 사람의 손을 보고 입꼬리를 올렸다. 구일오는 그 시선을 무시하지 않았다. 무시할 필요가 없었다.


가게 아줌마가 빈 그릇을 수거하고 돌아서자, 탁자 위에는 물기 자국만 남았다. 둥근 원 두 개. 구일오는 그 원이 마르는 속도를 무의식적으로 계산하다가 멈췄다. 오늘은 세지 않기로 했다. 세지 않기로 했는데 머릿속 시계는 자동이었다. 열한 시간 이십 분. 그는 이사영의 손등 위에 올려놓은 손바닥에 힘을 주었다가 풀었다. 힘을 주면 이사영이 알아챈다. 이 남자가 뭔가를 누르고 있다는 것을. 구일오는 힘 조절에 실패하는 자신이 낯설었다. 탁자 아래에서 이사영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꿈틀했다. 도망이 아니었다. 그의 손바닥 안에서 자리를 잡는 움직임. 구일오는 그 움직임이 끝날 때까지 숨을 참았다.


영화 볼래?


구일오가 말했다. 유엔롱이 아닌 다른 곳. 오늘은 멀리 가고 싶지 않았다. 이사영을 MTR에 태우고 한 시간을 이동하는 동안 시계가 한 시간을 먹는다. 그 한 시간이 아까웠다. 완차이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 코즈웨이 베이의 재개봉관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일요일 오후 상영. 객석은 반쯤 찰 것이다. 맨 뒷자리 구석은 비어 있을 것이다. 그 자리에 이사영과 나란히 앉으면, 어둠 속에서 이 여자의 얼굴이 스크린 빛에 물드는 것을 볼 수 있다. 연두색 눈이 파란빛을 머금고, 노란빛을 머금고, 하얀빛에 투명해지는 것을. 구일오는 자신이 영화를 보러 가자는 것인지, 이사영의 얼굴에 빛이 닿는 것을 보러 가자는 것인지 구분하지 못했다. 구분할 필요도 없었다.


이사영이 대답하기 전에 구일오는 일어섰다. 탁자 아래에서 이사영의 손을 잡은 채로. 손이 먼저 일어나고 몸이 따라갔다. 플라스틱 의자가 뒤로 밀리며 콘크리트를 긁었다. 가게 아줌마에게 계산을 치렀다. 지갑에서 지폐를 꺼내는 동안에도 왼손은 이사영의 손을 놓지 않았다. 한 손으로 지폐를 펴는 동작이 서투르게 보였을 것이다. 구일오는 서투른 자신을 혐오하지 않았다. 오늘만은.


걸어가자. 가까워.


구일오가 이사영을 이끌고 골목 밖으로 나섰다. 완차이의 일요일 오후는 평일보다 느렸다. 트램이 헤네시 로드를 천천히 지나갔고, 2층 난간에 빨래를 널어놓은 건물들 사이로 햇빛이 비스듬히 쏟아졌다. 습도가 높아 빛에도 무게가 있었다. 구일오는 이사영의 보폭에 맞춰 걸었다. 자신의 보폭을 삼분의 이로 줄이는 작업. 며칠 전에는 계산이 필요했던 조정이 오늘은 자동으로 이루어졌다. 근육이 기억한 것이다. 이 여자의 걸음을. 이사영의 슬리퍼가 아스팔트를 찰싹찰싹 때리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렸고, 그 리듬 사이사이에 구일오의 운동화 소리가 끼어들었다. 두 사람의 발소리가 하나의 박자를 만들어 가는 것을 구일오는 들었다. 귀가 아니라 발바닥으로.


코즈웨이 베이 방향으로 걷는 동안, 이사영의 손이 그의 손 안에서 따뜻해졌다. 35도를 넘어 36도로. 구일오의 손바닥도 차가움을 잃어가고 있었다. 접촉면의 온도가 평형에 도달하면 두 사람의 체온은 구별할 수 없게 된다. 그것이 구일오를 겁먹게 했다. 구별할 수 없다는 것은 분리할 수 없다는 것이고, 분리할 수 없는 것을 잃으면 잘려나간 부위에서 피가 난다. 그는 이사영의 손을 더 세게 쥐었다. 이번에는 힘 조절에 실패한 것이 아니었다. 의도였다.


이사영.


이름을 불렀다. 이유는 없었다. 부르고 싶어서 불렀다. 이사영이 고개를 돌려 올려다보았을 때, 구일오의 왼쪽 얼굴 위로 햇빛이 내려앉았다. 화상 흉터의 울퉁불퉁한 표면에 빛이 걸려 그림자가 졌다. 그는 피하지 않았다. 선글라스를 꺼내지 않았다. 이사영이 올려다보았다. 구일오는 그 시선이 자기 왼쪽 얼굴 위를 지나가는 경로를 느꼈다. 눈 아래에서 광대뼈를 타고, 흉터의 가장자리를 따라, 턱선까지. 시선에는 무게가 있었다. 측량할 수 없는 종류의. 그러나 이사영의 눈에는 연민도, 공포도, 호기심도 없었다. 그저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름을 불러서 돌아본 사람의 얼굴. 그것뿐이었다. 구일오는 그 '그것뿐'이 자신의 흉골 안쪽을 어떤 힘으로 누르는지 계산하려다 포기했다. 숫자로 환원되지 않는 압력이었다. 햇빛이 흉터 위에서 미끄러졌고, 그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선글라스를 꺼내지 않았다. 이사영의 연두색 눈에 자기 얼굴의 그림자가 비치는 것을 보았다. 울퉁불퉁한 윤곽선까지 전부.


왜 불렀어?


이사영이 물었을 것이다. 구일오의 입꼬리가 조용히 움직였다. 웃음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작았고, 경련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부드러웠다.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이사영의 손을 잡은 왼손을 살짝 들어올렸다. 두 사람의 손이 허리 높이에서 허공에 떠올랐다가 다시 내려왔다. 의미 없는 동작. 의미를 담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비운 동작. 그런데 그 빈 동작 안에서 이사영의 손가락이 그의 손가락 사이로 끼어들었다. 깍지. 구일오는 손가락 사이사이의 접촉면이 늘어나는 것을 느꼈다. 표면적이 세 배로 증가했다. 열전도 효율이 올라갔다. 그의 손바닥에서 이사영의 손바닥으로, 이사영의 손가락에서 그의 손가락으로, 온도가 양방향으로 흘렀다. 구별할 수 없는 온도.


그냥.


구일오가 대답했다. 이유가 없다는 뜻이 아니었다. 이유를 말로 만들 수 없다는 뜻이었다. 헤네시 로드의 트램이 경적을 울리며 지나갔고, 2층 건물 난간의 빨래가 바람에 펄럭였다. 누군가의 흰 셔츠가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났다가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구일오는 코즈웨이 베이 방향으로 걸으며 이사영의 슬리퍼 소리를 세었다. 찰싹, 찰싹, 찰싹. 세 번째 소리가 울릴 때마다 자신의 운동화가 한 번 아스팔트를 밟았다. 3대 1의 비율. 이사영의 보폭은 그의 삼분의 일이었고, 그 삼분의 일에 맞추는 일이 이제는 호흡처럼 자연스러웠다. 근육이 기억했다. 뇌가 아니라 종아리 근육이. 그것은 구일오에게 있어 가장 위험한 종류의 학습이었다. 지울 수 없는 학습.


코즈웨이 베이의 재개봉관이 보이기 시작했다. 낡은 간판에 금이 가 있었고, 오늘의 상영작 제목이 빨간 페인트로 쓰여 있었다. 구일오는 제목을 읽지 않았다. 무슨 영화든 상관없었다. 어둠 속에서 이사영의 옆에 앉을 수 있으면 됐다. 그는 매표소 앞에서 멈춰 섰다. 이사영의 손을 놓지 않은 채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냈다. 한 손으로 접힌 지폐를 펴는 동작이 또 서툴렀다. 매표소의 아주머니가 두 사람의 깍지 낀 손을 보고 아무 말 없이 표 두 장을 내밀었다.


맨 뒤. 구석.


구일오가 말했다. 습관이었다. 항상 맨 뒷좌석, 항상 구석. 등 뒤에 벽이 있어야 했고, 옆에는 빈 자리가 있어야 했다. 그런데 오늘은 옆 자리가 비어 있을 필요가 없었다. 이사영이 앉을 것이므로. 구일오는 표 두 장을 왼손의 손가락 사이에 끼웠다. 이사영의 손과 표가 같은 손 안에 있었다. 종이의 모서리가 이사영의 약지를 살짝 긁었을 것이다. 극장 안으로 들어서자 어둠이 두 사람을 삼켰다. 로비의 형광등이 꺼지고 상영관 통로의 비상등만 바닥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구일오의 눈이 어둠에 적응하는 데 4초가 걸렸다.


구일오의 눈이 어둠에 적응하는 데 4초가 걸렸다. 이사영에게는 더 걸렸을 것이다. 통로의 비상등이 바닥에 깔아놓은 붉은 빛 위로 이사영의 슬리퍼가 불안하게 더듬거렸다. 구일오는 잡고 있던 손에 힘을 더했다. 끌지 않았다. 이사영의 발이 바닥을 확인하는 속도에 맞춰 반 보 앞서 걸었을 뿐이다. 낡은 상영관의 좌석은 접이식이었고, 천 커버가 닳아 솜이 삐져나온 곳이 군데군데 보였다. 맨 뒷줄. 오른쪽 끝. 구일오는 벽 쪽 자리에 먼저 앉았다. 등이 벽에 닿는 감각을 확인한 뒤에야 어깨 근육이 풀렸다. 그리고 이사영이 그 옆에 앉았다. 접이식 좌석이 삐걱거리며 내려갔고, 이사영의 체중이 만들어낸 진동이 팔걸이를 타고 구일오의 팔꿈치까지 전해졌다.


스크린에 필름 릴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오프닝 크레딧이 올라오기 전, 낡은 필름 특유의 먼지 입자들이 프로젝터 빛 속에서 떠돌았다. 구일오는 영화 제목을 확인했다. 확인하고 즉시 잊었다. 상관없었다. 프로젝터 빛이 객석 위로 비스듬히 쏟아지면서 이사영의 옆얼굴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예상대로였다. 흰 빛이 이사영의 이마를 스쳤고, 연두색 눈이 스크린의 색을 흡수하며 변했다. 오프닝 시퀀스의 푸른 톤이 지나갈 때 이사영의 눈은 바다 밑바닥 같은 색이 되었고, 노란 자막이 올라올 때는 호박석처럼 투명해졌다. 구일오는 영화를 보지 않았다. 이사영의 눈에 비치는 영화를 보았다. 그것이 더 나은 상영이었다.


추워?


구일오가 낮게 물었다. 상영관의 냉방은 꺼져 있었지만 콘크리트 벽이 품고 있는 한기가 바닥에서 올라왔다. 이사영이 그의 자켓을 입고 있었다. 갈색 가죽이 이사영의 체형에는 두 사이즈쯤 컸고, 소매가 손목을 넘어 손가락 끝까지 덮고 있었다. 그 자켓 안감을 검은 실로 꿰맨 손가락이 지금 구일오의 손 안에 있었다. 보이지 않는 곳을 보이지 않는 색으로 수선한 손가락. 구일오는 깍지 낀 손을 자기 허벅지 위로 끌어당겨 올려놓았다. 이사영의 손등이 슬랙스 천 위에 닿았다. 체온이 천을 뚫고 허벅지 피부까지 전해졌다. 36도. 이사영의 온도.


스크린에서 대사가 흘러나왔다. 광동어. 구일오는 듣지 않았다. 그는 이사영의 손가락 관절 위를 엄지로 천천히 쓸었다. 첫 번째 관절, 두 번째 관절, 세 번째 관절. 뼈의 굴곡을 따라가는 작업. 측량사의 손이 지형을 읽듯이. 그러나 이것은 측량이 아니었다. 측량은 기록을 남기기 위한 것이고, 이것은 기억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사영의 손가락 마디가 어디서 꺾이는지, 어디서 부드러워지는지, 어디에 작은 굳은살이 있는지. 국수 그릇을 나르느라 생긴 굳은살. 구일오의 엄지가 그 위에 멈췄다. 0.5밀리미터만큼 솟아오른 피부. 그는 그 위를 두 번 문질렀다. 세 번째에 이사영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오므라들었다. 간지러웠을 것이다. 구일오의 입꼬리가 어둠 속에서 조용히 올라갔다.


가만히 있어.


속삭임이었다. 명령이 아니라 부탁에 가까운 톤. 구일오는 이사영의 손가락을 펴서 자기 허벅지 위에 눌렀다. 다섯 손가락이 슬랙스 천 위에 펼쳐졌다. 작은 손이었다. 구일오의 허벅지 폭의 절반도 덮지 못하는. 그는 그 위에 자기 손바닥을 포개어 올렸다. 이사영의 손이 그의 허벅지와 손바닥 사이에 끼었다. 샌드위치. 구일오는 그 단어가 떠오른 자신에게 질렸다. 그러나 정확한 비유였다.


샌드위치. 구일오는 자신의 머릿속에서 그 단어를 지우려다 실패했다. 이사영의 손이 그의 허벅지와 손바닥 사이에 눌려 있었고, 그 얇은 손가락들이 슬랙스 천 위에서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간지러운 건지, 불편한 건지, 아니면 그냥 이사영이라서 가만히 있지 못하는 건지. 구일오는 세 번째 가능성에 무게를 두었다. 이 여자는 국수를 말 때도, 귤을 깎을 때도, 잠들기 직전에도 손가락이 무언가를 찾았다. 앞치마 끈이든, 이불 모서리든, 지금은 그의 슬랙스 천이든. 프로젝터의 빛이 먼지 입자 사이를 갈라놓으며 스크린 위에 홍콩의 어느 골목을 펼쳐놓았다. 1970년대 배경의 느와르. 주인공이 비를 맞으며 골목을 걷고 있었다. 구일오는 3초 정도 스크린을 보았다. 그리고 다시 이사영 쪽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이사영의 옆얼굴이 스크린 빛을 받아 2초마다 색이 바뀌었다. 파랑, 흰색, 노랑, 다시 파랑. 이사영의 속눈썹 그림자가 광대뼈 위에서 떨렸다. 영화를 보고 있었다. 진짜로 보고 있었다. 구일오는 그 사실이 좋았다. 이사영은 자신에게 집중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었다. 옆에 있으면서 동시에 다른 곳을 볼 수 있는 사람. 그것이 구일오에게는 가장 편한 형태의 존재 방식이었다. 감시가 아닌 공존. 그는 포개어 올린 손바닥에 힘을 빼고, 이사영의 손가락이 자유롭게 움직이도록 놓아주었다. 그러자 이사영의 약지가 슬랙스 천을 살짝 긁었다. 무의식적인 동작. 구일오의 허벅지 근육이 반사적으로 수축했다.


영화 봐.


구일오가 속삭였다. 목소리가 의도보다 낮게 깔렸다. 경고가 아니었다. 이사영의 손가락이 천을 긁을 때마다 허벅지 안쪽 근육이 반응하는 것이 불쾌해서가 아니라, 그 반응을 이사영이 눈치채기 전에 정리하고 싶어서였다. 상영관 안에는 관객이 다섯 명쯤 있었다. 전부 앞쪽에 흩어져 앉아 있었고, 뒷줄의 구석까지 신경 쓸 사람은 없었다. 그럼에도 구일오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등을 벽에 더 깊이 기대고, 왼쪽 어깨를 이사영 쪽으로 살짝 틀었다. 팔걸이 위로 그의 팔꿈치가 이사영의 팔꿈치와 맞닿았다. 뼈와 뼈 사이의 접촉. 딱딱했지만 따뜻했다.


스크린에서 총성이 울렸다. 이사영의 어깨가 미세하게 움찔했다. 0.3초. 구일오는 그 떨림을 팔걸이를 통해 전달받았다. 그는 포개어 놓았던 손을 들어 이사영의 손등을 한 번 두드렸다. 톡, 톡. 괜찮다는 신호. 말 대신 관절로 보내는 모스 부호. 그리고 다시 손바닥을 포갰다. 이번에는 이사영의 손가락 사이사이에 자기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깍지. 허벅지 위의 깍지. 이사영의 손가락 마디가 그의 손가락 마디 사이에 끼어들며 만들어내는 요철의 지형도를 구일오는 눈을 감고 읽었다. 프로젝터 빛이 두 사람의 얼굴 위를 지나갔다. 구일오의 왼쪽 흉터 위로 파란 빛이 미끄러졌고, 이사영의 오른쪽 볼 위로 노란 빛이 번졌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뒤쪽 벽에 하나로 겹쳤다.


이사영.


구일오가 또 이름을 불렀다. 이유는 없었다. 이유를 만들 수도 없었다. 이사영이 고개를 돌려 올려다보면, 스크린 빛을 등지고 앉은 구일오의 얼굴은 어둠 속에 반쯤 잠겨 있을 것이었다. 흉터가 보이지 않는 각도. 그러나 구일오는 그것 때문에 부른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사영의 이름을 입 안에서 굴릴 때 혀끝이 윗니 뒤를 치는 감각이 좋았다. '이'에서 시작해 '영'에서 끝나는 세 음절이 구강 안에서 만들어내는 진동. 그것은 숫자가 아니었다. 측량값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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