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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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01 21:32

포장마차의 빨간 천막 아래로 빗물이 줄줄 흘렀다. 1월의 홍콩 밤공기는 축축하고 차가웠지만, 구일오의 얼굴은 달아올라 있었다. 맥주병이 네 개, 다섯 개, 여섯 개. 테이블 위에서 빈 병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구일오는 일곱 번째 병의 목을 쥔 채 이사영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내일이면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될 얼굴. 구일오의 왼쪽 흉터 위로 포장마차의 전구빛이 번졌다. 술이 올라 붉어진 피부와 땀샘이 죽은 화상 조직의 경계가 선명했다. 구일오는 병을 입에 대고 길게 들이켰다. 목젖이 움직이고, 빈 병이 탁, 테이블 위에 놓였다.


……내일 드레스 입으면 예쁘겠다.


구일오의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술 때문이 아니었다. 입꼬리가 올라갔지만 눈은 웃지 않았다. 이사영의 얼굴을 보다가 시선을 돌려 포장마차 밖 빗줄기를 바라보았다. 골목의 네온사인이 빗물에 녹아 바닥 위로 번졌다. 구일오의 손가락이 빈 병의 라벨을 벗기기 시작했다. 종이가 젖어 쉽게 찢어졌다. 한 조각, 두 조각. 손톱 밑에 종이 찌꺼기가 끼었다. 구일오는 그걸 보면서 입을 열었다.


나 어릴 때 바보였어. 진짜로.


손가락이 멈추지 않았다. 라벨 종이를 다 뜯고 나서 병 표면의 물방울을 엄지로 쓸었다. 구일오의 시선이 테이블 위의 물기 자국을 따라 느릿하게 움직였다. 입술이 벌어졌다가 닫혔다. 다시 벌어졌다.


결혼하자고 했잖아, 그때. 놀이터에서. 네가 미끄럼틀 꼭대기에 앉아 있고 나는 밑에서 올려다보고 있었어. 해가 네 뒤에 있어서 얼굴이 안 보였는데, 그래도 웃고 있다는 건 알았어. 네가 '응' 했을 때 나는 진심이었어. 여덟 살이 뭘 알겠냐고, 그건 그냥 애들 장난이었다고, 스물아홉 먹어서도 그렇게 생각해 봤어. 근데 안 돼.


구일오의 손이 병을 놓았다. 손바닥을 테이블 위에 펴고 물기 위에 올렸다. 차가웠다. 구일오의 목이 꿀꺽 움직였다.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술 때문이기도 했고, 아니기도 했다. 고개를 돌려 이사영을 보았다. 똑바로. 흉터째. 숨기지 않고.


안 돼, 이사영. 스물아홉이 돼도 마흔이 돼도 장난이 안 돼. 나는 계속 진심이었어.


구일오의 입꼬리가 떨렸다. 웃으려는 건지 무너지려는 건지 본인도 몰랐다. 손가락이 테이블 위의 물기를 의미 없이 그었다. 선 하나, 또 하나. 글자가 되지 못하는 선들이 물 위에 잠깐 남았다가 사라졌다. 구일오는 숨을 들이쉬었다. 포장마차의 기름 냄새와 빗물 냄새와 맥주 냄새가 폐를 채웠다. 내뱉었다. 길게.


……축하해. 진심으로.


그 세 글자를 입 밖으로 꺼내는 데 31년이 걸렸다. 구일오의 손이 테이블 아래로 내려가 주먹을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팠다. 이사영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 구일오는 여덟 번째 맥주병을 집어 들었다. 병뚜껑을 라이터로 따는 손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병목에 입술을 대기 전, 구일오의 시선이 이사영의 왼쪽 쇄골 아래 작은 점 위에서 멈췄다. 1초. 2초. 그리고 고개를 돌려 맥주를 삼켰다. 빗소리가 천막 위에서 세차게 울렸다. 구일오의 눈가가 젖어 있었지만, 비가 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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