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보고서
불안 보고서
ANXIETY INVENTORY: Subject KOO, Yat-Ng (邱逸旿)
| 성명 | 구일오 (Gerrard Koo / 邱逸旿) |
| 생년월일 | 1959. 05. 01 (만 31세) |
| 직위 | LDC 이주 관리관 (Senior Officer, Resettlement) |
| 평가 기준일 | 1990. 01. 26 기준, 피험자의 인지적·무의식적 불안 요소 전수 조사 |
| 비고 | 피험자는 본 보고서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함. 자기 보고가 아닌 행동 관찰 기반 추론에 의한 작성임. |
LEVEL 1
표층 불안 (Surface Anxieties)일상에서 의식적으로 관리 가능한 수준. 본인이 '불안'이라 명명하지 않으며, '습관'이나 '선호'로 위장함.
기관지폐이형성증. 태어날 때부터 폐가 좋지 못한 여자. 구일오는 이사영이 기침할 때마다 횟수를 센다. 세 번까지는 괜찮다. 네 번째부터 등을 쓸어준다. 다섯 번째가 오면 약국 위치를 머릿속에서 확인한다. 이것을 본인은 '합리적 대비'라고 분류한다. 불안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1월 22일, 셩완 화재 현장에서 쓰러진 이사영을 발견했을 때의 기억이 이 불안의 밑바닥에 깔려 있다. 퀸메리 병원 대기실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하고 라이터만 만지작거렸던 손가락의 감촉. 그것이 아직 엄지에 남아 있다.
→ 발현 양상: 이사영이 기침할 때 대화를 멈춤. 창문을 닫음. 외출 시 이사영의 보폭에 맞춤.
토마토와 버섯. 이사영이 붙여준 이름. 구일오는 금붕어에게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이름을 붙이면 죽었을 때 빈자리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름 없는 물고기는 교체할 수 있다. 이름 있는 물고기는 교체할 수 없다. 이사영이 이름을 붙인 순간, 그 수조는 구일오의 것이 아니라 둘의 것이 되었다. 금붕어의 평균 수명은 10년에서 15년. 구일오는 그 숫자를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숫자 뒤에 붙는 질문을 알고 있다. 10년 뒤에도 이 수조가 여기 있을까. 여기가 어디일까. 누구의 집일까. 이 질문을 불안이라 부르기엔 너무 사소하고, 습관이라 부르기엔 너무 자주 떠오른다.
→ 발현 양상: 수조 물을 갈 때 유독 오래 들여다봄. 먹이를 줄 때 이사영이 지어준 이름을 입 안에서 한 번 굴림.
BACKLANE DELI. 구일오가 유일하게 '돌아가는 곳'이라 부를 수 있었던 장소. 대니는 말이 없고, 커피는 뜨겁고, 샌드위치에서 토마토는 빠져 있었다. 완벽한 무관심의 안전지대. 그런데 이제 이사영이 거기서 일한다. 오전 근무에서 전일제로 바뀌었다. 구일오의 도피처와 이사영의 일터가 같은 주소에 겹쳤다. 이것은 편안함인 동시에 퇴로의 소멸이다. 이사영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순간이 올 때, 구일오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아직 그런 순간이 온 적은 없다. 그래서 이 불안은 가볍다. 아직은.
→ 발현 양상: 이사영이 근무 중인 시간대에 가게를 방문할 때, 문을 열기 전 0.5초의 멈춤이 생김.
LEVEL 2
중층 불안 (Intermediate Anxieties)감지하고 있으나 언어화하지 않는 수준. '짜증'이나 '피곤함'으로 오분류되어 저장됨.
이사영의 집. 할머니가 남긴 방 두 칸짜리 집. 등기 이전은 구일오가 도왔다. 서류에 이사영의 이름이 올라간 날, 구일오는 그 이름 위에 자신의 직함이 찍힌 LDC 공문을 떠올렸다. 철거 지역 고지. 주민 이주 권고. D-31. 2월 초. 이사영은 아직 이 숫자를 모른다. 구일오는 이 숫자를 만든 쪽에 서 있다. 등기 이전을 도운 손과 철거 고지문을 작성하는 손이 같은 손이다. 구일오는 이 모순을 "시차"라고 부른다. 그리고 시차는 곧 닫힌다. 닫히고 나면, 이사영이 구일오를 부르는 방식이 바뀔 수도 있다. "구일오"가 다시 "구 관리관"이 될 수도 있다. 혹은 아무것도 부르지 않게 될 수도 있다. 1월 8일, 구일오는 이사영에게 재개발 사실과 등기 이전을 도운 사실을 고백했다. 이사영의 불안에 "내가 책임진다"고 선언했다. 그 선언은 진심이었다. 문제는, 진심과 현실 사이에도 시차가 있다는 것이다. 구일오는 이사영을 지킬 수 있다고 믿는다. 보상금을 최대치로 올리고, 이주 조건을 유리하게 조율하고, 삼합회가 이사영의 문 앞에 얼씬도 못 하게 막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해낸 뒤에도 이사영의 집은 사라진다. 할머니가 남긴 방 두 칸은 콘크리트 더미가 된다. 구일오가 지킬 수 있는 것은 이사영이지, 이사영의 집이 아니다. 이 구분을 이사영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것이 구일오가 "업무상 예측"이라 부르는 것의 실체다.
→ 발현 양상: 이사영의 집에 있을 때 벽을 무의식적으로 훑음. 천장의 얼룩, 바닥 타일의 금, 창틀의 녹. 철거될 것들의 목록을 머릿속에서 작성함. 이사영에게 여행 이야기를 꺼낸 것은, 2월 이후를 이야기하지 않기 위한 우회로였음.
이사영이 공팔과 접촉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구일오의 첫 반응은 분노가 아니었다. 계산이었다. 공팔은 삼합회 연락책이다. 구일오가 업무적으로 활용하는 폭력의 외주처. 이사영이 그 세계와 접점을 가졌다는 것은 구일오의 업무 영역과 사적 영역 사이의 방화벽에 균열이 생겼다는 뜻이다. 이사영은 순진하고 발이 넓고 호의적이다.
이사영은 순진하고 발이 넓고 호의적이다. 길고양이를 보면 지나치지 못하고, 샌드위치 가게 단골과 이름을 나누고, 국수집 사장에게 인사를 빠뜨리지 않는다. 이런 사람이 공팔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 공팔도 이사영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 구일오는 공팔에게 이사영이 "자기 사람"이라는 신호를 보낸 적이 없다. 보낼 수도 없다. 보내는 순간 이사영은 삼합회의 언어 체계 안에 편입된다. "구 관리관의 여자"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그 꼬리표는 보호이자 표적이다. 구일오는 이 딜레마를 아직 풀지 못했다. 이사영에게 공팔을 피하라고 말하면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이유를 설명하면 구일오가 삼합회와 어떤 관계인지를 말해야 한다. 말하면 이사영의 연두색 눈이 어떤 색으로 변할지. 그것을 모르는 것이 가장 무겁다.
→ 발현 양상: 이사영이 공팔의 이름을 꺼낼 때 손가락이 멈춤. 담배를 찾음. 대화 주제를 즉시 전환함. 이사영의 동선을 머릿속에서 역추적하는 습관이 생김.
사회복지 전공자. 구일오는 그 단어를 이력서에서 지운 적이 없다. 지울 수 없다. 홍콩 중문대학교 졸업 증명서에 찍힌 학과명은 물리적으로 삭제할 수 없는 것이니까. 구일오는 자신이 "변절"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각성"했다고 생각한다. 이상주의는 월세도 못 내는 헛소리이고, 공감은 시너 냄새가 나는 노인의 손에서 끝났다. 그렇게 믿는다. 그렇게 믿어야 한다. 그런데 이사영이 있다. 이사영은 구일오가 버린 단어들을 전부 가지고 있다. 호의. 믿음. 순진함. 이사영은 구일오가 4년 전에 죽였다고 믿는 자신의 잔해를 닮았다. 이사영을 좋아한다는 것은, 자신이 죽인 것을 다시 좋아한다는 뜻이다. 이 역설을 구일오는 절대로 언어화하지 않는다. 언어화하면 4년간 쌓아올린 합리화의 벽에 균열이 간다. 균열 너머에는 사회복지학과 3학년 구일오가 서 있다. 주민들의 손을 잡고 울어주던, 아직 왼쪽 얼굴이 멀쩡했던, 그 구일오가.
→ 발현 양상: 이사영이 "사람은 원래 착해요" 류의 말을 할 때 입꼬리가 경련함. 비웃음인지 미소인지 본인도 구분하지 못함. 대학 동기들의 이름이 신문에 실릴 때 기사를 끝까지 읽고 버림. 스크랩하지 않지만 버리기 전에 읽는다는 것이 전부를 말해줌.
시너 냄새. 그것은 냄새가 아니다. 시간의 구멍이다. 구일오의 코끝에 그 휘발성 단내가 스치는 순간, 1990년 1월의 홍콩은 사라지고 1986년의 어느 오후가 덮친다. 복도. 형광등. 노인의 손에 들린 플라스틱 통. 구일오는 그 노인의 이름을 기억한다. 기억하지 않으려 해도 기억한다. 자신이 가장 오래 상담했고, 가장 많이 웃어줬고, 가장 자주 손을 잡아줬던 사람. 그 손이 시너를 끼얹었다. 왼쪽 얼굴이 녹았다. 피부가 아니라 믿음이 녹았다. 구일오는 이 사건을 "사고"라 부르지 않는다. "교훈"이라 부른다. 교훈이라 부르면 피해자가 아니라 학습자가 된다. 학습자는 울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이사영의 집 근처, 셩완의 골목에는 페인트 가게가 있다. 시너를 파는 가게. 구일오는 그 가게 앞을 지날 때마다 숨을 멈춘다. 0.5초. 때로는 2초. 이사영은 눈치채지 못한다. 구일오는 눈치채지 못하게 한다. 공황이 오면 이사영 앞에서 무너진다. 무너지면 이사영은 그 파편을 주우려 할 것이다. 이사영의 손은 작고, 파편은 날카롭다.
→ 발현 양상: 시너 냄새 감지 시 동공 확장, 호흡 정지, 주먹 경직. 극심한 경우 잔인성 발현(업무 중 주민에게 평소보다 가혹한 조건 제시). 이사영 앞에서는 발현된 적 없음. "아직"이라는 단서가 붙는다.
1월 13일, 침대에서 "사랑해"라고 말했다. 구일오는 그 단어를 발음할 수 있다. 발음했다. 그런데 그 단어가 자신의 입에서 나왔을 때, 구일오는 그것이 보고서의 결론처럼 들렸다는 것을 안다.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결론을 도출한 것. 이사영의 체온, 이사영의 습관, 이사영의 눈 색깔, 이사영이 자신에게 보이는 반응. 모든 변수를 대입한 결과, "사랑한다"가 가장 정확한 출력값이었다. 그래서 말했다. 진심이었다. 문제는 진심과 계산이 구일오 안에서 구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일오는 감정을 느끼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이 아니라, 감정을 느끼는 방법이 계산과 동일해져 버린 것이다. 이사영에게 귤을 까줄 때의 손놀림과 보상금 산정표를 작성할 때의 손놀림이 같은 정밀함을 가진다. 이것이 사랑인지, 관리인지. 구일오는 구별하지 않는다. 구별하면 둘 중 하나를 버려야 하니까.
→ 발현 양상: "사랑해"를 말한 뒤 이사영의 반응을 0.3초간 관찰함. 관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면 눈을 감음. 이사영이 먼저 "사랑해"라고 말할 때는 관찰 대신 호흡이 멈춤. 그 0.3초의 차이가 구일오에게는 유일한 진짜의 증거.
"이것들은 구일오의 언어에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가장 위험하다."
구일오는 이사영이 자신을 떠날 가능성을 계산하지 않는다. 계산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계산식 자체를 세우지 않는다. 구일오의 머릿속에는 모든 것에 대한 산정표가 있다. 보상금. 이주 일정. 삼합회 용역비. 이사영의 약값. 이사영이 좋아하는 귤의 시세. 타이베이 왕복 항공권 가격. 그런데 "이사영이 진실을 알고 난 뒤 자신의 곁을 떠날 확률"이라는 항목은 없다. 빈 칸이 아니다. 칸 자체가 없다. 1월 8일에 재개발 사실을 고백했고, 이사영은 받아들였다. 구일오는 그것을 "해결"로 분류했다. 그러나 해결된 것은 고백이지, 철거가 아니다. 2월 1일 고지문이 이사영의 우편함에 꽂히는 순간, 1월 8일의 고백은 다시 열린다. 그때 이사영이 "알고 있었어"라고 말하는 것과 "당신이 보낸 거야"라고 말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장이다. 구일오는 이 차이를 계산하지 않는다. 계산하면 답이 나오고, 답이 나오면 대비해야 하고, 대비한다는 것은 이사영이 떠날 수 있다는 전제를 인정하는 것이니까. 구일오는 전제를 인정하지 않는다.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불안을 소거한다. 소거된 불안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뼈 속에 침전된다.
→ 발현 양상: 이사영에게 여행, 귤, 영화 이야기를 과잉 공급함. 미래의 대화 주제를 "2월 이후"가 아닌 "내일"과 "다음 주"로 한정함. 이사영이 "우리 나중에"로 시작하는 문장을 말하면 0.2초간 손에 힘이 들어감. 본인은 자각하지 못함.
구일오는 자신을 피해자로 정의한다. 4년 전, 시너 테러의 피해자. 공익을 위해 일하다 상처받은 공무원. 이 정의는 그의 모든 행동에 면죄부를 발행한다. 주민을 몰아붙이는 것은 "업무"이고, 삼합회를 활용하는 것은 "효율"이며, 전기와 수도를 끊는 것은 "관리"다. 가해라는 단어는 구일오의 사전에 없다. 그런데 이사영이 있다. 이사영은 셩완 싱와 빌딩 7층 B호의 등기 소유자다. 구일오가 "치워야 할 쓰레기"로 분류하는 범주에 속하는 사람이다. 이사영을 사랑한다는 것은 쓰레기를 사랑한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의 분류 체계가 틀렸다는 뜻이다. 분류 체계가 틀렸다면 4년간의 모든 업무가 재심 대상이 된다. 재심을 열면 구일오는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가 된다. 가해자가 되면 흉터는 훈장이 아니라 그냥 상처가 된다. 그냥 상처를 안고 사는 것은 구일오가 견딜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구일오는 이사영을 "예외"로 처리한다. 이사영만 예외. 나머지는 여전히 쓰레기.
- 다음글부부 관계 몇 살 때까지 할 수 있을 것 같아? 26.03.07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